내일(매년 3월 넷째 주 금요일)은 서해수호의 날이다.
우리나라의 서해안을 지키다 순직한
군인들을 추모하고
안보의식을 고취시키고자 제정한 날이다.
모든 국민들이 그러하듯 나 또한
순직장병 및 현역 군인들에게 늘 감사한 마음이다.
월드컵의 열기로 뜨거웠던 2002년 6월,
터키와의 3,4위전이 열리기로 예정된 그날 낮,
뉴스에서는 서해에서 우리 해군과 북한군과의
교전이 있었다고 긴급 타진했다.
초등학생이던 나에게 그게 뭐가 중요했겠나.
그냥 저녁에 치러질 축구경기에만 몰두할 뿐이지.
월드컵이 끝나고 나니 이 뉴스가
본격적으로 나왔고 나도 그제야 심각성을 깨달았다.
그때 담임선생님께서 분노하며 하셨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잔치 끝나자마자 초상 치렀다"
그땐 몰랐는데 지금 와서 보니 비극도 그런 비극이 없다.
분단 중이고 대치중이라고 하더라도 저들은 너무했다.
시간은 흘러 20대가 되었다.
3월의 어느 금요일,
그날도 나는 친구들이랑 놀고 있었다.
자취하는 친구네 집에서 밤새 술 마시고
아침에 눈을 떴는데 우리나라의 군함이
침몰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원인을 놓고 여러 추측이 오가고
국제기구에서 공식적으로 밝힌 바, 북한의 소행이었다.
사망한 병사들의 연령을 보니 다
나같이 뜨거운 피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보다 형님인 분들도 많았는데
그래봤자 24세 이하들이었다.
30대 중반인 지금에서야 돌이켜보니
그들도 그냥 군복 입은 '애들'이었다.
군대 갈 시기가 돼서 그랬는지
정말 분했고 가슴 아팠다.
또 그해 11월, 연평도에
군사시설이 아닌 민간인 지역에 포탄이 떨어졌다.
그건 학교에서 실시간 뉴스로 지켜봤다.
주먹이 쥐어졌다. 전쟁 중에도
민간인들이 사는 곳에는 공격하지 않는 게 관례다.
그 일이 있기 얼마 전 이미 입대신청을 마쳤던 나는,
빨리 군대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연평도 포격 때 사망한
군인두명중 한 명은 나보다 어렸다.
이번에도 그렇게 꽃 피우지도 못한
젊은 생명이 지고 말았다.
나는 천안함 피격사건 1주기 즈음인
2011년 3월 입대했다.
전공이 보건계열이라 의무병으로 군생활을 했는데
의무병들은 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마친 뒤
대전의 국군의무학교에서 의무기초교육을 받는다.
의무학교에 있는 흉상하나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흉상의 주인공은 2002년 발생한
제2 연평해전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고
오랜 기간 병원에서 사투하다
눈을 감은 박동혁 병장이었다.
박동혁 병장은 나와 같은 의무병이었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끝까지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그는
본인이 다친 줄도 몰랐을 것이다.
그의 흉상을 보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제2 연평해전 때는 월드컵을,
천안함 피격 때는 술자리를,
연평도 포격 때는 캠퍼스 라이프를 즐기고 있었던
나는 따지고 보면 그들에게 엄청난 빚을 진 셈이다.
그들의 노고가 아니었다면 그날의
내 평화, 즐거움은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들이 마찬가지고
모든 국민들이 이에 감사함을 가져야 한다.
군생활하면서 수많은 군가를 수없이 불렀다.
그 많은 군가 중에서 내가 좋아했던
'진짜 사나이'에는 그런 가사가 나온다.
"부모형제,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
그렇다, 나도 그들을 믿었기에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고
다른 사람들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 우리 국군을 믿고 생활하겠거니
생각하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는 어제도 사랑하는 이들과 저녁식사를 했고
내일에 대한 기대를 품으며 잠자리에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지구 어딘가에선
끊임없이 총성이 이어지고
자다가 습격당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잠 못 드는 이들이 있다.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정말 행복한 것이다.
그 행복을 있게 한 모든 국군장병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함을 표하며
저런 비극에 가족을 잃은 유족들에게도
글로 나마 위로를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