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자아가 하루를 함께 보낸다

결국 다, 나 자신이다

by 레지널드

아침에 눈을 떠 일어나서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사람은 얼마나 많은 감정을 느낄까.


나는 그래도 기상하는 순간만큼은 기분 좋게 눈을 뜬다.

평일에는 '오늘은 어떤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열심히 일해보자',

'오늘도 글 쓰자. 시간 되면 두 개도 써보자'라는

마음가짐으로 벌떡 일어난다.

주말은 뭐 말할 필요 없이 행복하게 눈을 뜬다.


아침 글을 쓰면서는 '뭐라도 한다'는 뿌듯함을 느끼고

샤워를 하면서는 상쾌함을 느낀다.

뉴스를 틀어놓고 먹는 아침식사 또한 내 기분을 즐겁게 한다.

출근길도 재밌다. 걸어서 출근을 하는 난,

계절의 변화를 즐기며 걷는다.

아차산을 바라보면서 좋은 기운도 얻어간다.

그리고 조그마한 과일가게, 생선가게를 지나칠 때는

마음가짐을 단단하게 한다.

내가 그곳을 지날 때 시각이 대략 8시 30분인데

그 시각에 이미 손님들로 가득하다.

상품의 특성상 전날 미리 꺼내서 준비하면

분명히 손님들이 알 것이다.

고로 그날 판매할 상품들을 그날 아침 준비해야 하는데,

가게의 사장과 직원들은 얼마나 빨리 아침을 맞이했을까.

열심히 사는 우리네 주변 사람을 보면서

내 안의 근면, 성실을 일깨운다.


출근 후, 직원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가족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존재들이다.

그런 사람들 중에서 단 한 명도

이상한 사람이 없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업무가 시작됐다.

내가 하는 일의 특성상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접한다.

당연한 내 일을 하는데도 나에게 감사하다, 수고하세요 라는

말을 건네는 사람들에게는 나 또한 가슴속에서

깊은 고마움이 올라온다.

네다섯 살 정도로 되어 보이는 꼬마가 와서 말을 걸면

너무 귀여워 미소가 흘러나오고,

팔순이 넘고 아흔을 넘기신 분이 정정한 자세로 걸어와

말을 걸 땐 존경스러움이 느껴진다.


아침에 일어나서 지금까지 느껴온 감정들만 있다면

얼마나 세상은 행복하고 살기 좋은 곳일까?


하지만 그러지 못하다는 걸 나도 알고 여러분들도 아신다.

이런 감정을 하루 종일 유지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컴플레인을 하는 고객들의 말을 들으면서

'그래, 일리 있어. 저 사람 입장에서는 저렇게 느낄 수 있어'

라면서 나 자신을 다독인다. 대부분이 여기서 잘 끝난다.

그러면 나도 잠깐은 기분 상했지만 얼른 평정심을 되찾는다.

하지만 간혹 가다가 정말 많이 화를 내는

사람들을 접할 땐 난감하다.

'그래 일리 있어'에서

'아니 근데 이게 이렇게 화낼 일인가'로 진화되고

나중에는 '아 진짜. 이거 우리 잘못 아닌데 왜 저러는 거야'로

발전되면서 나 또한 슬슬 화가 난다.

그래도 절대 그 사람 앞에선 화를 안 낸다.

난 돈 받고 일하는 프로니까 그래선 안된다.

상황은 종료되었지만 내 마음속에선 아직 물이 끓고 있다.


누군가가 건드리면 그 물이 쏟아질 것 같다.

생각 같아서는 내 손으로 그 물을 뒤엎어버리고 싶다.

그 뜨거운 물을 쏟아버리면 어떻게 되는지 다 안다.

나도 다치고 내 주변사람들도 문제가 심각해진다는 것을.

다 알면서도 주체할 수가 없다. 그렇게 나 자신과의 싸움을 한다.

꾹 참고 긍정적인 생각, 행복한 상상을 그린다.

조금씩 물의 온도가 낮아지고, 잠시 후엔 물이 고요해진다.


화를 한번 참음으로써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구했다.


퇴근길, 낮에 있었던 일들은

하나의 에피소드로 저장하고 신나게 걸어간다.

저녁을 먹으며 아내와 오늘 있었던 일을 공유하고,

책이나 영화를 보며 행복함을 느끼고

오늘 하루를 잘 보냈다는 만족감을 느끼며 이불을 덮는다.


하루동안 나는 수많은 감정을 느꼈다.

기쁨, 설렘, 흥분, 분노, 이성, 사랑 등등

그 모든 감정들이 나의 하루를 완성시켜 준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많은 날들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고

앞으로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 만들어주는 것이다.


어느 하나의 감정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심지어 나쁜 감정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쁜 감정, 예를 들면 말초적인 쾌락이나 분노등

멀리하고픈 감정등이 있어야 내가 그걸

밀어내는 연습도 하고 그러면서 나의 내공이 쌓이기 때문이다.

그런 내공이 쌓일수록 사랑, 행복 같은

좋은 감정들을 오랫동안 즐기며 살 수 있다.


화내는 나, 기뻐하는 나, 슬퍼하는 나,

모두 결국 나 자신이기에 다 사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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