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 이를 소개합니다

by 박기숙


드디어 백만 이가 어둑해질 무렵 우리 집 마당으로 들어왔다.


아들은 7년 전 결혼하였고 서울에서 백만 이와 함께 아들 내외가 환갑 맞이하는 엄마를 위해 출동했다. 처음 본 백만 이는 어둠 탓일까 생각보다 건강해 보였고, 심장 소리도 양호하다. 마당에 서 있는 백만 이를 예리한 눈으로 한 바퀴 빙 돌아본다. 다친 곳 여기저기를 살폈다.


이쯤에서 다들 손주라 여길 것이다. 하지만 백만 이는 몇 해 전 아들 선배로부터 받은 중 소형 중고차다.


백만 원 주고받은 자동차라 해서 백만이라는 이름이 주어졌다. 참 고마운 선배다. 장롱면허를 가진 아들 내외는 복잡한 서울 시내를 맘껏 백만 이를 부려먹었다. 그 결과는 참혹하다. 앞쪽 보조석 문은 잘 열리지 않는다. 창문도 가끔 올라가지 않아 추운 날 그냥 달리기도 했단다.

겉모습은 구겨진 쿠킹포일 같다. 서툰 운전 솜씨는 백만 이를 상처투성이로 만들었다. 성한 곳이 없어 보이는 차를 아들 며느리는 멀리서 보면 그래도 괜찮다고 해사한 얼굴로 웃고 있다.

아들은 몇 개월 전 잘 다니던 직장을 스스로 그만두었다. 하고 싶은 앱 개발을 해야 한다는 거창한 이유로. 하지만 내심 걱정스러웠다. 겨우 마련한 집 대출금도 있고 서울 생활비도 만만치 않은데. 예상대로 석 달 후 쪼들리는 눈치였다.

이럴 때 부모로서 뭐라도 해 주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한편으로는 냉정하게 인생의 파도를 넘는 법도 알아야 한다는 마음이 공존했다.


보릿고개를 지나고 있던 한 해의 끝자락에 아들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부산에 있는 모 대학에 강의 자리가 났는데 두 달 동안 부산에 가게 되었다고 들뜬 목소리로 소식을 전했다. 알바라도 해서 보릿고개를 넘어야겠다고. 속으론 그냥 직장에 들어갔으면 했지만 결혼한 자식 알아서 잘할 것이라 응원만 했다.


이제 두 달 동안 머물 숙소를 정했고 강의 전날 부산으로 간단한 짐을 싣고 백만 이가 출동해야 했다. 생전 처음 장거리 운전이 시작된 날 온 가족은 긴장했다.


중간중간 잘 가고 있냐고, 괜찮냐고, 어디쯤 왔냐고 하면서 실시간 보고가 이어졌다. 서울에서 부산 숙소까지는 잘 도착했다. 4시간 거리를 8시간 안전 운전했으니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기특한 아들 내외와 백만이.


능력 안 되어도, 좋은 것, 하고 싶은 것 우선으로 사는 이 세대에 우리가 보기에 민망한 중고차를 웃으며 타는 아들 며느리가 사랑스럽다.

살다 보면 타인의 시선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너무 의식할 것도 아니지만 백만 이를 가지고 학생들 있는 학교까지는 도저히 용기가 안 났을까. 아들은 지하철만 이용했다 한다.


날도 추운데 백만 이를 두고 학교로 간다고 며느리가 한소리 하는 걸 봐서는 우리 며느리 베짱이 대단하다.

아들 며느리를 나무늘보 부부라 놀리기도 한다. 속도보다 중요한 인생의 방향이 맞고 믿음이 있다면 꾸준한 거북이의 승리에 미리 응원한다.


여행 즐기듯 보낸 두 달간의 부산 살이 끝내고 무사히 서울까지 귀가한 아들 내외와 수고한 백만이 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올해는 그만 백만 이를 쉬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


*백만이 사진은 도저히 올릴 용기가 없네요ㅡ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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