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생긴 일
새벽 2시 30분 알람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20년 지기 또래 친구들과 일본 오키나와 여행 날이다. 새벽 3시에 만난 우린 비몽사몽이다. 전날 늦은 퇴근을 한 선 이는 한잠도 못 잤다면서도 우리들의 아침으로 군고구마, 사과, 계란도 삶아왔다. 기대와 설렘은 우릴 수다스럽게 했다.
5시경에 김해공항에 도착했고 곧바로 수하물을 맡기고 패키지여행 상품이라 인솔 가이드님을 만났다.
가이드와 같은 항공편이 아니라서 30분의 차이로 우리 비행기가 먼저 도착하게 된다. 도착 후 약속된 장소에서 다른 일행들과 함께 만나기로 했다. 약속된 장소는 출국심사를 마치고 나와 왼쪽에서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나와서 왼쪽!
드디어 오키나와 나하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심사 후 우린 캐리어를 찾아 약속 장소에 이르렀다. 나와서 보니 기다리라는 왼쪽에 사람들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에스컬레이터 가운데는 수많은 양란꽃 화분이 형형색색 환영하듯 피어있었다. 우린 아무 생각 없이 같이 올라가고 말았다.
약속 장소를 이탈해 2층으로 올라간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아찔한 순간이다.
방향을 보니 버스, 택시등을 이용하는 길임이 분명해서 편의점에서 음료와 간식도 사 먹고 2층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 후 가이드로부터 연락이 왔다. 입국심사가 늦어지니 주변 구경하고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것이다. 난 여유롭게 괜찮다고 기다리고 있다고 답했다.
아무 걱정 없는 해맑은 우리들의 얼굴엔 기다림도 마냥 좋다.
조금 후 보이스톡이 왔다.
“지금 어디 계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격앙되었고, 아주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쳐댔다.
“거기 어딥니까?” “어디 계신 겁니까?”
당황한 나는 에스컬레이터 타고 올라왔고 2층이며, 편의점도 보인다 했다.
그녀는 몹시 당황해하며 이렇게 외치고 있다.
“여기 공항이 얼마나 넓은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어떡합니까?”를 반복했다. 얼마나 아찔한 순간이었는지 지금도 가슴이 꿍꽝거린다. 폰 화면 가득한 그녀의 입은 같은 말만 큰소리로 되풀이 중이다.
나는 분명 에스컬레이터라 했는데 그녀는 계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우리가 3층 이상으로 올라갔다고 여긴듯했다.
엘리베이터 아니고 에스컬레이터 타고 한층 올라왔다는 말을 큰소리로 나는 외쳤다.
“엘리베이터 아니고 에스컬레이터요!”
그녀가 잠시 숨을 돌렸는지 내 말을 알아차렸고 그럼 내려오면 일행이 기다린다며 내려오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우린 허둥지둥 다시 왔던 방향으로 되돌아갔다.
그렇게 예쁘게 피어있는 양란이 즐비한 비슷한 에스컬레이터가 나왔다. 친구들은 그냥 그 자리에 있으라 하고 혼자 내려갔다. 하지만 내려가 보니 우리가 나왔던 그곳이 아니었다.
그 순간 앞이 캄캄하면서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분명 여기 화장실이 있고, 의자도 있어야 하는데 다른 곳이었다. 지나가는 현지인 어르신께 짧은 일어로 손짓 발짓 소용없다. 순간 내려왔던 곳으로 올려다보니 어떻게 된 걸까? 내 눈엔 에스컬레이터 양쪽이 다 내려만 오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내려오는 속도보다 더 빨리 뛰어서 친구들 있는 곳으로 가야 할까?
사람이 정신 줄을 놓거나 몹시 당황한다면 사물이 똑바로 안 보이는 것이다.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한쪽은 내려오고 한쪽은 올라간다.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분명히 우리가 있는 곳으로 나와야 버스를 탈 것 같았다. 만약 못 만난다면 택시를 타고 숙소로 바로 갈 생각도 했다.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으니 잠시 후 일행들이 우리 있는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기다려준 일행들에게 죄송하다고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숙이며 우리의 첫 일정이 시작되었다.
그녀가 한마디 한다. “여기 와 봤어요?”
그녀도, 나도 잠시 숨을 돌렸다면 어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