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
아카시아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눈부시다!
나는 학교 뒷산 벤치에 홀로 누워있다. 토요일 오후다. 친구들은 하나둘 집으로 갔다. 혼자 깊은 생각에 잠겨 노래를 불러보기도 한다.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요, 그 잔잔한 고향 바다~”
노산 이은상 선생님의 ‘가고파’를 힘차게 애절하게 불러본다.
“어릴 제 같이 놀던 그 동무들 그리워라. 어디 간들 잊으리요. 그 뛰놀던 고향 동무~”
우리 가족은 내가 중학교 때 거제를 떠나 마산으로 이사를 왔다. 중3 시절에 아버지 선박회사가 부도를 맞았다. 결국 상업고등학교에 입학을 해야했다. 나의 모교는 ’마산여상’이다.
어릴 적부터 노래 부르기를 좋아한 나는 합창단에 들어갔다. 수업 후 음악실에 모여 매일 합창연습을 했다. 그때 많은 가곡을 배웠고, 소프라노 파트에서 열심히 연습했다.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알토가 각 파트 연습이 끝나면 합창을 한다. 음악실 앞 단아한 국화마저 흥겹게 노래하는 듯했다. 학교에서 가꾸는 국화 화분들은 특별했다. 청소 시간마다 매일 물을 주면서 빗자루로 남은 물을 쓸어 내기도 했다. 그 국화가 멋들어지게 필 때 ‘가곡의 밤’이 시작되었다.
매년 10월이면 마산에서는 이은상 선생님의 ‘노산 가곡의 밤’ 음악회가 열렸다. 우리 학교 합창단과 테너 엄정행 선생님과 함께 불렀던 ‘가고파’는 잊을 수 없는 좋은 추억이다. 그 당시 휠체어에 앉아서 우리 합창을 지켜보신 노산 이은상 선생님도 나의 인생에 영광으로 다가왔다. 생각해보니 그해에 선생님은 돌아가신 것 같다. ‘봄 처녀’, ‘고향 생각’, ‘그 집 앞’ 등 잘 알려진 아름다운 우리 가곡을 많이 만들어 주신 분이다.
고2가 되어서는 깊은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성악가가 되고 싶은데 나는 상업고등학교에 다닌다는 이유다. 선생님과 상담을 해봤지만 별 도리는 없었다. 토요일마다 학교 뒷산에 올라 노래를 맘껏 불렀다. 제법 성악가 흉내도 내면서…. 벤치에 누워서 나뭇잎 사이로 파고드는 햇살과 눈이 마주치면 눈물이 났다. 눈물이 왜 났는지는 모르겠다. 쭈르륵…, 소리 없는 눈물은 마침내 서글픔이 되어 흐느끼기도 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용기를 내어 꿈에 도전해보고 싶다. 그래도 그 뒷산 나뭇잎 사이로 눈부신 햇살을 마주하던 시간은 정말 행복했다. 아마도 꿈이 있어서일 것이다. 꿈이 있다는 것은 생명이다. 살아가는 힘이며, 삶의 이유이기도 하다.
마침 지금 비가 내린다. 왜 그랬을까. 그땐 내리는 빗줄기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했고, 괜한 슬픔에 이유 없이 서글퍼지기도 했다. 무엇이 그토록 염세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무거웠을까. 그 시절 나에게 살짝 사랑스런 미소를 보낸다.
내 삶을 돌아보니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이 많았다. 그때가 화양연화이었다 해도 될것이다ㆍ학교 뒷산, 국화, 벤치, 하늘, 노래, 햇살, 친구, 합창이 있던 그 시간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이번 주에도 교회 찬양대에서 찬양을 한다. 무려 40년 동안이다. 계속 노래를 하고 있으니 결국 내 꿈은 이루어진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