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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ture Writers

by 웅티 Sep 29. 2022

공기업 포기한 백수의 이모티콘 승인 도전기_2

애매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가능성이 있는 사람'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건 무지 달콤한 일 같다. 내 인생에선 대체로 목표를 이룰 것만 같은 그 막연한 '가능성'이 날 움직이게 하는 힘이었다. '훗날 공기업에 다닐 수 있겠지'라는 막연한 생각과 좋은 학교를 졸업한 나의 ^똑똑함^을 바탕으로 나는 계속해서 가능성이라는 달콤한 생각을 머리 위에 띄우고 다녔었다.


난 언제나 애매했다. 성적에 맞춰 대학에 붙으니 그냥 다녔다. 대학교도 그냥 무난 무난하게 다니고 졸업했다. 학점도 애매했고 다니면서 특출 난 활동을 하지도 않았고 죽어라 취업준비를 하지도 않았다. 애매하게 살다 보니 그냥 타이틀이 얻고 싶어서 도전한 공기업에 1년 반을 써버리고 포기했다. 애매한 사람의 말로였다. '가능성'이라는 건 아무 목표에나 갖다 붙여서는 안 되는 거였다.


그럼 어떤 목표에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까? 내 생각엔 적어도 '좋아하는' 것이나 '잘하는 것'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면 노력할 수 있는 힘이 배로 생길 것이고, 잘한다면 그 노력이 효과적일 것이다. 그런데 나에겐 그것이 그림 그리는 거였다. 근데 난 이미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그럼 난 뭘 해야 하지?



그래. 이모티콘 작가 한 번 도전해보자.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예대를 나온 게 아니니 디자인의 기초를 알 리가 없었다. 인체의 비율, 조명, 구도.. 이런 것들을 마스터해본 적도 없다. 디자이너가 되려고 한 들 너무나 무모한 길이었다. 난 단지 그림 그리는 것 좋아하는 문과생일 뿐이었다. 그럼 내가 최대한으로 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니 그래도 마케팅을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콘텐츠 마케팅 커리어를 쌓아보자. 그리고 부업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이모티콘 작가에 도전해보는 거다. 결정을 했다.








자, 32개의 이미지를 그려보자.



이모티콘은 보통 포토샵이나 일러스트 툴을 가지고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러스트는 브러시 선을 수정할 수 있기에 깔끔하게 선을 딸 수는 있지만 세밀하고 미묘한 느낌을 살리긴 어렵고, 포토샵은 직접 드로잉 방식이라 편하고 수려하게 그릴 수 있지만 그만큼 결과물은 실력에 좌지우지된다.


난 b급 감성의 묘한 표정으로 리액션을 하는 캐릭터를 그리고자 했기에 포토샵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건 참 힘든 길이었다. b급 감성을 살리고 싶다 보니, 브러시도 깔끔하기보단 투박한 그림판 느낌이길 바랐다. 그래서 하드 연필 브러시로 선을 따고 몇 번 복사하여 또렷하게 두꺼워질 수 있게 했다.



설정샷

너무 둥근 느낌이 나기 보단 쭈글쭈글한 선일 수 있도록 원을 그리고 그리고 또 그렸다. 매 장마다 캐릭터가 일관성이 있되 손그림 느낌이 나게 조금씩 왜곡되듯 다른 느낌을 살리려고 노력했다. 그림 자체를 딱 보자마자 '웃긴 느낌'이 들 때까지 되돌리고 그리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32장을 그리며 알게 된 점이 있다. 같은 캐릭터를 그리면 그릴수록 실력이 늘어난다는 것이었다. 마치 어떤 웹툰이든지 초기 그림체와 후기 그림체가 다른 것과 같았다. 나도 내숭이 캐릭터를 계속 그리면서 투박한 초반 그림보다 32번째 그림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잘 그리고 있음을 느꼈다. 하지만 이모티콘은 그래서는 안되었다. 확실한 통일성이 필요했다.


이미 완성된 그림도 카카오톡 이모티콘 뷰어를 사용하여 얼굴 대비 눈 크기는 비슷한지, 몸 비율은 비슷한지, 귀의 크기와 위치는 어떠한지를 계속해서 비교하며 수정, 또 수정을 거쳤다.





그런 게 있다. 계속 접하고 접하고 접하다 보면, 익숙해지다 보니 점점 대단하지 않게 된다. 나의 내숭이도 그랬다. 처음엔 기발하고 웃기다고 생각했던 콘셉트와 모양새가 보면 볼수록 '이거 승인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한 번 마음먹고 아이디어 생기면 바로 작업에 돌입해서 한 큐에 끝내버려야 한다고.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사실 이 작업은 일주일 넘게 진행이 되었는데, 나중 갈수록 그냥 인기 많은 무난하고 귀엽고 둥글둥글한 캐릭터를 그릴 걸 그랬단 생각이 몇 번 들었다.


그림을 32장을 그린다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하필 난 첫 시작을 인체 비율이 사람 같은 이상한 원숭이로 결정을 했기 때문에 32장 채우기는 마라톤같이 힘들었다. 머릿속으로 그리는 형태를 그림으로써 표현하기 위해선 피사체가 필요했다. 난 스스로 피사체가 되었다. 원하는 포즈를 내가 직접 취해 사진을 찍고 그것을 옆에다 두고 그렸다. 머릿속에 이론과 지식이 있는 건 아니지만, 따라 그리는 것 하나는 자신 있었다.



한 장 한 장 완성해나갈 때마다 돌아갈 수 없는 길임을 직감했다. 이미 정해진 콘셉트도 캐릭터도 시안도 되돌릴 수 없었다. 물론 내 캐릭터를 맘에 안 들어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두려운 건, 노력을 들인 것에 냉정한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이라는 것을 이내 깨달았다.





카카오톡에 제안한 32개의 내숭이 이미지


끝끝내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32장의 캐릭터를 모두 그려냈다. 물론, 그림만 그리면 되는 과정은 아니었다. 각 플랫폼에 맞춘 규격으로 크기를 변환해야 했고, 일일이 제출해야 했다. 하나의 이미지당 태그를 여러 개 달아야 했기 때문에 라인과 모히톡은 특히나 더 까다로웠다. 그렇게 제출 자체도 며칠은 걸렸다. (난 왜 한 방에 안되고 꾸물꾸물 거리는 습관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



후련하기도 했지만, 이젠 진짜 결과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는 생각에 왠지 설레기도 하고 걱정도 된다. 탈락과 실패의 고배는 다양하게 여러 번 마셔왔지만, 그래도 처음 그림 그려본다고 도전한 게 수포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는 욕심이 들긴 든다. 근데, 이거 좀 재밌다. 힘들긴 한데 재미가 있었다. 계속 도전해보고 싶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난 다음 편으로써 글을 이어나가려고 한다. 애매하게 발만 담그지 말고 될 때까지 해보는 거다. 다음 제안은 움직이는 이모티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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