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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방여자 Oct 20. 2022

운명이라 착각했다  

#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낭만에 대하여

내가 대학생활을 흐지부지 보내게 된 데는 옛날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의 책임이 크다. 그 드라마 속 대학생들은 책 몇 권을 고상하게 옆구리에 끼고 캠퍼스를 누비며, 때론 잔디밭에 둘러앉아 그냥 우정과 사랑을 나누기만 하면 되었다. 가까이에서 대학생을 본 적이 없던 내게 대학생의 모습은 드라마 속 김찬우와 전도연이 전부였다. 대학은 진정 그런 '낭만'만 있는 곳이라 착각했다.


그런 까닭에 너무 대책 없이 순진했던 나는 대학 첫 시험엔 공부도 하지 않고 시험을 쳤다. 왠지 낭만과 시험공부는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대학 공부는 고등학교 때 같은 단순한 암기가 아닌 학문적 고찰을 요할 것 같았으니까.


시험에 실패를 경험하고도 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단지 시험을 앞두고 벼락치기 정도는 하는 요령만 생겼을 뿐. 새로운 친구들과 새로운 곳을 여행하고, 알코올과 친목을 다지고, 동아리에도 기웃대다가, 한 달에 두어 번은 두꺼운 전공 서적을 끼고 잔디밭에 앉아 그래도 어딘가 남아있을 낭만을 부르짖으며 그저 시간을 보냈다.


대학 2학년 때 즈음 IMF가 시작되었다. 당시 복학한 남자 선배들과 나이가 있는 여자 선배들은 보다 일찍 현실을 직시하고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곤 했었다. 하지만 '우리들의 천국' 책임 운운하기에는 너무 많은 현실을 알게 된 후에도 나는 여전히 날라리 대학생, 그 신분이 주는 안락함에 안주했었다.


그렇게 속절없이 4년은 흘러 나는 졸업을 맞이했고 그다음 날부터 이름하야 백수가 되었다. 드라마에 나오던 츄리닝 바람에 밥만 축내던 그 눈치 구더기, '백수'가 된 것이다. 가족 중 그 누구도 대놓고 나에게 눈치를 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나 스스로 눈치를 봤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늦게까지 누워있기가 너무 미안한 날에는 할 일이 없어도 그냥 대학교 언저리를 배회하곤 했었다.  


그날도 학교에 들렀다가 나오는 길이었는데 날씨가 요상해지더니 갑자기 모래 먼지가 일며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할 정도로 바람이 불어닥쳤고, 주변에 가벼운 것들이 다 날아다녔다. 그때 마침 운명처럼 서점 앞에 놓여있던 전단지가 내 얼굴을 향해 날아든 것이다. 종이 쪼가리 너마저도 백수라고 나를 무시하냐는 심정으로 전단지를 떼어내다가 무심코 보게 된 것이다.


'공무원 시험 대비반 개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입니다.'


공무원 시험 대비 학원 광고였다.


당시 공무원 이란 직업은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던 시기였다. IMF 여파로 평생직장이라는 것만으로도 큰 메리트가 되던 시기였다. 하지만 신규 모집 인원이 많지 않았고, 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 였기에 누구도 감히 해볼 엄두를 내지 않던 분위기였다. 한 몇 년 공무원 시험만 준비하다가 젊은 시절 다 보내고 할 줄 아는 것 하나 없는 사회 낙오자가 되어 기나긴 백수의 길을 걷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나라고 뭐가 다르겠나, 4년 내내 놀기만 하다가 무슨 재주로 남들 안 되는 공무원이 되겠나 싶은 마음에 전단지를 바닥에 버리려던 순간, 불현듯 이것은 운명적인 신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될 사람이 정해져 있나? 나라고 안될 이유가 뭐람? 지금처럼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하고 후회라도 하는 것이 낫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게다가 하늘이 계시라도 내리듯 나를 향해 '공무원'이라 적힌 전단지를 날려보내지 않았냔 말이다. 눈앞에 대고 보란 듯이.


평소 없던 긍정 에너지가 때마침 솟구친 것이다. 될 사람은 세상의 모든 기운이 돕는다고 했던가? 나는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운을 놓칠세라 잔뜩 움켜쥐었다.


'나는 그것이 운명적 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시작하는 합격수기를 쓸 날을 고대하며 공무원 대비 학원에 등록을 하고, 2개월 종합반을 수강했다. 그때에는 인강이 유행하던 시기도 아니라 학원 수업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했다. 물론 노량진으로 짐 싸서 올라가 유명한 강사의 강의를 들으며 작정하고 공부하던 수험생들도 있었으나 그 정도로 요란하게 공부할 처지는 아니었다. 2개월 종합반을 수강하며 시험의 흐름을 파악하고 중요 부분을 체크한 후 나머지 시간은 집에서 독학을 하였다.


좋게 포장하자면 자기 주도 학습이지만 실상은 그냥 요령 없는 공부였다. 그럼에도 내 생애 가장 전투적인 나날을 보냈다. 간간이 들리던 친구들의 취업 소식은 더없는 자극제가 되었고, 무슨 오기인지 주변과 연락도 다 끊은 채 시험 하나만 바라보고 달렸다.


공무원, 그 찬란한 미래


독하게 마음먹은 보람이 있었는지 나는 9급 지방직 공무원 시험에 합격을 하였고, 한동안 우리 부모님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아빠는 지인들과 대화를 하시다 마치 방금 생각났다는 듯이 문맥의 흐름과 관계없는 딸아이의 합격 소식을 전하곤 하셨고, 시험 치는 당일 삼천배는 고사하고 여행 가는 관광버스 안에서 세차게 손을 흔들며 나의 행운을 기원하던 엄마도 오래간만에 주름이 펴지는 웃음을 웃으셨다.


마치 운명인 것만 같았던, 그 어려운 공무원이 드디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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