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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방여자 Oct 21. 2022

업무를 가르쳐주지 않는 곳

# 업무 파악은 셀프


업무 파악은 셀프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든 일은 언제나 새로운 일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당장 들이닥치는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짧은 시간 안에 고급 수준으로 익혀서 바로 실무에 적용하여야 한다. 여러 직렬 중 세무, 사회복지, 토목, 건축, 지적 등의 직렬은 물론 그렇지 않다. 이러한 직렬은 보통의 경우 고유의 업무를 공직 생활 전반에 걸쳐 수행하기에 나날이 전문화되고 체계화된다.(물론 동시에 나날이 느슨해지고, 해이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행정직의 경우는 광범위한 행정 업무 중 어떤 분야를 만나게 될지 알 수 없으므로 항상 불안이 저변에 깔려있다. 나는 일을 빠르게 습득하고 적응하는 편이라기보다는 처음 학습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대신 한 번 익힌 일에는 그래도 깊이가 있는 편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공무의 일은 내가 일을 습득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누군가가 체계적으로 업무를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인사발령이 나면 발령일 전 반나절, 또는 발령일 당일 반나절 정도가 업무를 넘기는 최소한의 시간이다. 모든 담당자가 내 업무를 넘기는 동시에 새로 배치받은 부서의 다른 업무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 그야말로 '내 코가 석자'다. 내가 받을 업무 걱정에 직전 업무는 발령과 동시에 잊고 싶어 지기 마련이다.


반나절의 시간 동안 보조의자를 놓고 나란히 앉아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용어를 받아 적으며 앞으로 헤쳐나갈 앞날에 대해 고뇌하고 있는 찰나 업무 인계가 끝난다. 또한 이런 업무에는 대개 해결되지 못한 큰 건이 하나둘 섞여있기 마련인데 아무래도 인사철을 앞두고는 일을 소극적으로 처리하다 다음 담당자에게 미루는 경우가 생기곤 한다. '그렇게 중요한 일을 왜 진작에 하지 않으셨......' 따위가 목까지 차오르지만 그런 상황에서는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폭탄 넘기기 같이 인사철을 기다렸다가 서로서로 폭탄을 넘기는 것이다. 누가 더 터지기 직전인가 뭐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나마 전임자가 업무 인계서라도 꼼꼼하게 작성했다면 다행이다. (나는 다행히도 일이 너무 하기 싫고, 이 업무를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업무 인계서를 쓰며 이 업무를 훌훌 털 날을 기대하는 바람직한 습관이 있다.) 대체로 인사발령이 난 사실을 알고 부랴부랴 적거나 전임자 또는 전전임자에게서 받았던 인계서의 내용을 조금만 수정하여 넘기는 경우가 보통이므로 업무를 제대로 받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사실은 내가 신규이던 시절부터 2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다.

이러한 방식의 업무 인수인계가 계속되고 있음에도 문제없이 행정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어쩜 우린 진짜 능력자 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신규 때 처음 맡았던 업무는 사회단체 관리와 국토공원화 사업 따위였다. 전임자가 기능직으로 연세가 있으신 분이라 아무래도 주먹구구식으로 일을 처리했었고, 사무일보다는 현장일을 많이 하셨었다. 그러다 보니 시스템 사용부터 차근차근히 알려줄 상황이 되지 못했다.


그 당시 면사무소 총무팀 차석은 대개 7급 고참으로 중요한 회계업무를 맡았다. 그런데 그 차석은 같은 팀도 아닌 나를 유독 미워했었다. 내가 평소 그렇게 미움받는 인간류는 아닌데 희한하게 나에게만 공격적이었다. 지출서류를 제때 넘기지 못해도, 우리 팀장님이 자리에 없어도, 우리 차석이 자료를 제대로 내지 못해도 나에게 화를 내곤 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냥 우리 팀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신규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우리 팀장에게 화가 나고, 차석도 제 몫을 못하니 답답했던 것인데 그 화를 만만한 나한테 푸는 것이었다. 그 마음 아래엔 일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나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더없는 스트레스였다.


아무튼 그 시절은 아무도 알려주는 사람은 없는데, 일이 어긋나면 혼은 났다. 그렇게 혼이 나면서 일을 배웠다. 한 번 혼날 때 하나의 일을. 알려주지 않아도 척척 해내지 못해서, 처음 일도 처음이 아닌 것처럼 해내지 못해서 매일 혼이 났다.




내가 7급이 되어 회계업무를 맡게 된 시점, 신규가 발령을 받아 왔다. 나는 정신없이 바쁘고 또 바빴다. 내 일이 바빠 신규 직원 따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쟤를 언제 키워서 사람을 만드나' 싶은 생각에 가르치기보다는 '급한 일은 그냥 내가 해버리지 뭐'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방황하는 신규가 보였지만 '눈치껏 좀 하면 안 되나, 어찌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가르쳐주랴' 이런 생각을 하며 잔뜩 화가 난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옛날 그 총무팀 차석의 마음이 지금 내 마음이었으리라.

오랫동안 원망만 했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 아주 조금 이해가 되었다.


나도 처음에는 신규였었지만 결국 공직생활에 순응한 인간이 되고 말았다. 이제는 오히려 변화되지 않고 안주할 수 있는 이 환경에 아주 적응을 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공직사회는 크게 변하지 않았고, 그때의 신규들이 나이가 들어 그 구태의연한 관습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신규들은 처음 일을 처음이 아닌 것처럼 해내지 못해서 힘들어하고 있다. 모두가 알지만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곳이 이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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