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승연애 2에 나오는 남녀가 대화를 나눈다. 전 연인이었던 서로에 대해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남녀이다. 새로운 남자와 만남을 쌓아가는 전 여자 친구를 보면서 남자는 미련인지, 질투인지 모를 묘한 감정을 느끼고 차마 그것이 미련이라 말하지 못하는 자존심 강한 남자는 여자의 모든 행동을 질책한다. 이럴 때는 '이제 지리멸렬한 이런 사이 그만하자'라고,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거라'며 속 시원하게 한 소리 했으면 싶은데 속없는 여자는 나는 아직 미련이 남았다고, 너와 다시 만나고 싶다는 말을 끝내 내뱉는다. 이런 말로라도 붙잡아 놓지 않으면 진짜 떠나버릴 것 같아서. 여자의 사랑 앞에 자존심은 중요하지 않다.
언제나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을'이다.
연애 이야기를 보다가 나는 문득 아이를 더 많이 사랑해서 언제나 '을'이 될 수밖에 없는 내 처지가 떠올라 씁쓸해진다. 그래. 결국 내가 더 많이 사랑해서 놓을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드러내지 않으면 진짜 모를 것 같아서 수시로 사랑을 표현해야 하는 나는 만년 을, 엄마이다.
훈육, 이렇게 하는 거 맞나요?
어릴 때 아이는 대체로 순한 편이었다. 잘 웃고, 많이 자고, 혼자 잘 놀았다. 그런 아이의 기질이 조금씩 예민함에 가까워진 때는 세 살 무렵이었다. 친정엄마 손에 크다가 육아휴직을 하고 내가 일 년간 데려와서 키우기 시작한 때. 그때는 한창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의 오은영 박사 표 안짱다리 걸기 훈육이 유행하던 시기라 나는 아이가 예민하고 까다롭게 굴 때마다 다리 사이에 걸고 훈육을 하곤 했었다.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어대도 이럴 때 다시 풀어주면 훈육이 소용없다는 오은영 박사의 말을 되새기며 기진맥진할 때까지 아이를 잡았다. (오은영 박사는 그 방법은 아이가 흥분하여 혹여나 다칠 수 있는 상황을 막기 위한 방법이라 하였지만) 그 당시의 나는 아이를 감당할 수 없을 때 아이를 제어하는 방법으로 주로 사용했던 것 같다. 나의 훈육은 가끔 아이를 길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행해지던 안짱다리 걸기가 전부였는데, 이는 아주 가끔 기분에 따라 행해진다는 오류가 있었다.
대체로 허용이 많은 나의 성격은 우리 아빠를 닮았는데 아빠는 큰 틀만 벗어나지 않으면 뭐든 허허하는 사람이었다. 아이는 그런 우리 친정에서 세 살이던 한 해를 제외한 육 년을 자랐다. 그러한 아빠의 양육태도는 자유로운 영혼의 아이가 창의적인 아이가 되는 데는 도움을 주었지만 적절한 훈육이 되지 않고, 규칙이 학습되지 않는 결과를 낳아 아이의 내면은 점점 더 천방지축이 되어 갔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부터 아이는 우리가 데려와서 같이 살기 시작했는데 그때에도 나는 아이에게 크게 훈육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가 가만히 앉아 있을 때 말고는 모든 것이 야단칠 거리인 신랑은 아이를 지나치게 나무라는 일이 많았고, 아이의 사소한 행동 하나에 우리는 이해하는 자와 이해하지 못하는 자로 나뉘어 다툼을 하곤 했다.
아빠로부터 이어받은 허허의 태도는 학습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음껏 자연에서 뛰어논 아이가 학습의 세계에서도 마음껏 뛰어놀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가졌다. 어릴 때부터 너무 많은 학습을 시키면 진짜 학습을 할 시기에는 오히려 지칠 수도 있다는 말들에 고개를 조아리며 안도하곤 했었다. 언젠가 때가 되어 '엄마 이제 때가 되었어요. 저는 공부를 좀 해야겠습니다'라고 말할 날이 올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이런 나의 철학은 학교를 보내면서 일차 위기를 맞게 되었다. 한글을 어설프게 알고 간 아이는 받아쓰기를 할 때마다 실수가 많았다. 실망스러운 성적은 저 푸른 초원 위에 뛰어놀게 하겠다던 엄마를 금세 보통의 엄마로 만들었고, 그 어렵다는 자식 교육을 하게 만들었다. 받아쓰기 연습을 하는 날이면 아이는 책상 아래로 미끄러지기 일쑤였고, 에스자를 그리며 몸을 비틀었다. 처음에는 받아쓰기 연습에서 시작한 것이 공부하는 자세, 글씨체, 태도로 옮겨가면서 아이는 온몸 가득 나의 비난을 흡수했다.
아이는 주양육자가 여러 번 바뀌는데 이미 혼란을 겪었는데 친정 아빠와 나의 허용적인 양육태도와 신랑의 엄격한 양육태도, 시의적절하게 개입하지 못한 훈육, 하물며 일관적이지 못한 태도가 종종 아이를 혼란에 빠뜨렸다.
아이는 자유와 통제 그 사이를 오가며 저울질을 했고, 결국 혼란스러운 환경은 자신만의 생각을 구축하게 만들었다. 아이는 종종 자신만의 생각에 갇혀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수용하지 않았다. 그것이 나중에는 고집스러운 모습, 남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나타나 가장 큰 어려움을 주었는데, 이런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 아닌가 싶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통제력이 약한 아이에게 무한 허용이었던 나의 태도는 아이의 충동성을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왔다.
adhd와 학습부진
멱살잡이를 해서라도 끌어오던 초등학교 때와는 달리 중학생이 되니 학습은 또 다른 국면을 맞았다. 학습의 난이도가 높아진 데다 기초가 탄탄하지 않은데, 일 년간의 온라인 학습의 타격으로 아이는 공부를 더 어려워하게 되었다. 게다가 adhd로 인한 낮은 집중력과 충동성은 학습에 최대의 적이었다. 아침부터 시작된 '공부하기'는 마음을 먹는데 한나절이 걸렸고, 겨우 마음을 잡았다 싶으면 갑자기 머리를 감는다든지, 화장실을 간다든지, 물을 먹는다든지, 다른 얘기를 하는 등 다른 행동이 끼어들어 집중을 방해했다. 중간에 잠시 쉬는 시간이라도 가지면 전환이 제때 되지 못하여 다시 마음 잡기 단계부터 새롭게 시작해야 했다. 자기 효능감이 낮아진 아이는 학습을 싫어하게 되고, 이는 또 자기 효능감을 낮추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adhd의 어려움'을 검색한 결과 보게 되는 '학습부진'이라는 말이 전에 없이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집중하기 어려운 아이와 학습은 물과 기름과 같다.(물론 이는 보통의 아이인 경우이다. 가끔 고지능 adhd로 학습에 전혀 문제가 없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나는 학습과 자녀와의 관계 회복이라는 기로에서 어쩔 수 없이 관계 회복을 택했다.(고 말하고 싶다.) 아이는 시험 전날 책을 한 권도 보지 않고, 시험 치는 과목조차 모르고 학교를 가기도 하고, 가끔 공부를 한다고 하더라도 자유로운 자세로 몸을 누이고 한번 슬쩍 보고 가는 것이 전부였다.
나는 마음을 내려놓았다가도, 어느 날 밤 갑자기 깨우쳐지는 바가 있어 부르르 떨며 화를 내기도 한다. 아이는 이제 제법 자랐다고 나의 이런 일관적이지 못한 태도에는 적응이 되어서 전혀 동요하는 바가 없다.
나는비록타의지만 학습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고 나니 아이와의 관계는 좋아졌다. 공부 정도는 우리 사이를 갈라놓을 수 없을 정도로 돈독해졌다. 나는 오늘도 을의 자세에 충실하고자 시험기간임에도 게임에 사력을 다하는 아이를 어여쁘게 보기 위해 애를 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