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몇 년째 초딩을 키우는 것인가

# 나비효과

by 골방여자


용돈 3만 원


최근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대학병원 검사를 예약했다. 9시쯤 집에서 출발할 계획을 하고 아이에게는 전날부터 여러 번 당부를 했다. 엄마가 병원을 가야 하니 “일찍” 챙겨서 학교를 가야 한다고. 가기 싫은 마음이 몇 곱절 더한 월요일이지만 엄마가 아파서 병원을 간다고 하면 측은한 마음이라도 들지 않을까 하여 '엄마가 아프다'는 말에 여러 번 힘을 주었다.


11시 즈음 검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이는 아침에 나가던 때 보던 모습 그대로 뒹굴고 있다. 여전히 머리도 감고, 밥도 다 먹었고, 교복만 입고 나가기만 하면 되는 상태로. 문을 박차고 나가는 타임에서 주저앉고 마는 아이이다. (혹여나 불안장애와 같이 마음이 힘들어서 “못”나가는 것인지, 그냥 힘든 상황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에 “안” 나가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답을 찾지 못했다. 아이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표현하기 힘들어하고, 나 역시 내 마음이 아닌지라 짐작만 할 뿐이다. 엄마의 생일날 선물 대신 이른 등교를 선물하는 걸 보면 이것은 단순히 의지의 문제인 것 같다가도 어떤 날은 도무지 마음이 일으켜지지 않는 것같이 누워 있으면 내가 오해를 했나 미안해지기도 한다.)


평소에는 아이를 깨우면서 집안 정리를 하는 편인데 오늘은 다녀와서 정리를 할 요량으로 먼저 집을 나섰다. 돌아와서 보니 오늘따라 집이 엉망이다. 얼른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정리를 하려는 찰나 초인종이 울린다. '주 예수를 믿으세요'라고 한다면 아무도 없는 척 조용히 있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인기척 없이 다가갔는데 생각지도 못한 시부모님 모습이 화면을 꽉 채운다. 문을 열려고 나가는 짧은 순간, 개어지지 않은 이불과 그릇이 가득 담긴 개수대, 나뒹구는 머리카락이 머릿속을 스친다. 항상 그렇다. 평소 그렇게 정돈을 해놓을 때는 아무도 찾는 이 없더니 오늘같이 어쩌다 청소를 놓친 날 예기치 않은 방문을 맞게 된다. 그것도 레벨 최상 시부모님의 방문이다!!


아마도 반찬거리를 챙겨서 왔다고 아래에서 전화를 했는데 내가 진동소리를 못 듣는 바람에 여차 여차 올라오신 것 같았다. 커피를 한 잔 내어드리고 마주 앉았는데 눈앞에 낙엽 비스무리한 것이 형체를 보존하고 놓여있다. 나는 얼른 주워서 동글동글 말아 흔적을 없애면서 마치 평소에도 청소를 하지 않는 모양새의 며느리가 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방안에 숨죽이고 있는 아이의 존재를 밝혀야 하나 잠시 고민을 하다 홈밍아웃(?)을 했다. 시어머니는 마음은 불편할지 언정 어이없는 웃음으로 받아주셨고, 할머니와 같이 나가자며 용돈 3만 원을 아이의 손에 쥐어 주셨다. 평소 할머니, 할아버지를 다소 어렵게 생각하는 편이라 마음이 불편해서인지, 용돈에 마음이 움직여서인지 아이는 서둘러 교복을 입고 가방을 메고 방을 나온다.


엄마의 약점


학교를 제시간에 등교하지 못한 날은 컴퓨터가 금지된다. 아이는 매번 다짐을 앞세워 위기를 모면했지만 약속을 어기기가 일쑤이다 보니 이제 다짐할 거리도 바닥이 났다. 당장 게임을 하고 싶은 마음에 마음이 급했던지 자진하여 할머니께 받았던 용돈 3만 원을 담보로 맡기고 내일 9시까지 등교하지 못하면 이를 받지 않겠다며, 나를 믿어달라며 호언장담을 한다. (이 당시의 마음은 물론 진심 그 자체였다.)


아침이 되어 어제 담보로 잡은 현금이 수중에 있기에 어느 정도 기세를 잡은 내가 아이를 흔들어 깨운다. 기껏 정신이 들게 만들었더니 "왜!!"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학교를 보내기 위해 깨우면서 듣는 일반적인 대답은 아니다. 왜라니. 왜라니. 깨우는 나도, 깨워짐을 당하는 아이도 둘 다 화가 많이 났을 즈음 아이는 정신이 든다.


어제 약속한 것도 있으니 오늘은 그래도 빨리 챙기겠거니, 아니 빨리 챙기는 시늉이라도 하겠거니 기대를 한다. 조금 헐레벌떡 서두르는 시늉이라도 해준다면 그 노력이 가상하다 기특해할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는데 아이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서두르는 기색이 없다. 음미하며 아침을 먹고, 머리카락이 말라비틀어지도록 드라이를 한다. 아무 급할 것이 없는 아이는 휴대폰에 넋이 빼앗겼다가 잠시 생각나면 바지 한쪽을 끼워 넣고 다시 넋을 놓고 휴대폰을 하곤 하는 식이다.


아이는 금세 주의력을 잃는다. 휴대폰을 하다 보면 금세 빠져들어 다른 생각을 잊는다. 이런 모습은 자주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학교를 일찍 가기 위해 전혀 노력하지 않는 아이로 보인다. (실제 애쓰고 있는지 아닌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어김없이 알겠다고, 챙기겠다고 하면서 넋을 놓고 있는 언행불일치의 모습들은 약속은 위기 모면용이었을 뿐, 지킬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오해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9시 20분경 교복을 입고, 가방을 메고 현관문을 나서는 찰나 나는 확인사살을 한다.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니 어제 돈을 돌려줄 수 없다고. 그런데 아이가 예상과 달리 받아내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인다. 조금 주춤하다 그렇다면 시간을 조금 초과한 것이니 이를 인정하여 2만 5천 원을 돌려주겠다고 했다. ('이 정도면 합리적이야. 순간 대처가 훌륭했어'라고 조금 안도했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현관문을 돌아 방으로 들어가더니 가방을 벗어던지고 '3만 원을 주기 전까지는 학교를 갈 수 없다'며 누워버리는 것이다.


아뿔싸!


하필 그 타이밍에. 굳이 굳이 확인사살을 한 내가 어리석었다. 지난번 "교문 앞 회군 사태"를 잊었단 말인가? 그때에도 다음 날 학교에 늦으면 게임을 안 하겠다고 그리 맹세를 해놓고선 오후 2시경에야 겨우 등교를 했었다. 마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한 장면처럼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겨우 용기 내 손잡이를 잡고 내리려는 순간 내가 그 확인사살을 하고 만 것이다. '오늘은 등교가 늦었으니 게임 못한다'라고. 굳이. 그 타이밍에.


그때에도 '게임을 하지 못한다면 나도 학교에 갈 수 없다'며 교문 앞에서 한 시간을 버티다 결국 돌아온 일이 있었던 것이다.


게임을 못하게 해서 학교를 갈 수 없다느니, 3만 원을 주지 않으면 학교를 가지 않겠다느니 이런 초딩 같은 발상에 먼저 한탄해야 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이지만. 그렇다. 차라리 분별 있는 내가 이런 사태를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가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솔직히 처음 3만 원으로 실랑이를 하는 순간엔 잠깐 고민을 했다. 그래도 나름 시간을 많이 당겨 챙겼는데 노력을 인정하고 그 정도는 눈 감아 주고 그냥 3만 원을 쥐어 보내는 융통성을 발휘할 것인가, 아님 약속이란 개념이 없는 아이에게 약속을 어기면 응당 대가가 있음을 몸소 알려주는 것이 맞는 것인가? 하지만 나를 건드린 건 그다음 아이의 태도이다.


그래서 학교를 갈 수 없다니! 학교를 가지 않으면 안절부절못할 엄마의 모습을 약점으로 생각하고 이를 놓고 흥정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괘씸할 수가 없다.


학교는 너의 일이므로 안 가도 엄마는 상관이 없다, 대신 네가 약속을 안 지켜서 약속대로 한 것일 뿐인데 네가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위기 모면용이었다는 변명밖에 되지 않는다. 지금 가지 않는다면 돈도 받을 수 없고, 앞으로 네가 하는 모든 말은 신뢰를 잃게 될 것이라 일러두었다. 아이는 엄마는 나를 빨리 보내는 것이 목적이었으며, 그 목적을 이루었으면 조금 늦는 것 정도야 괜찮지 않냐며, 이 모든 사태의 발단은 엄마가 3만 원을 돌려주지 않은 것에 있다며 종일 시위를 했다.


보통의 이야기라면 오후 즈음 반성을 한 아이가 '엄마 죄송해요.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라고 하면 '그래. 약속은 중요한 것이란다.' 라며 훈훈하게 마무리되어야 하는데 우리 집 아이는 여전히 엄마가 3만 원을 주지 않아서 나는 학교를 안 갔고, 그래서 나는 억울하다는 마음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변명을 하자면 나는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고, 아이는 약속이란 필요한 경우 적절히 바꿀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 유연한 사고는 대체로 본인의 편의 위주로 판단되는데 과외를 앞두고 기분이 상해서 못하겠다며 선생님을 돌려보내는 일이나, 병원을 예약했는데 돌연 미룬다거나, 외식을 하기로 했다가 귀찮아서 파투를 내는 식이다. 이런 즉흥적인 결정들이 반복되다 보니 이 아이는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결국 규칙이나 등교도 사회와의 약속인데 이런 것조차 본인의 편의에 따라 지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들을 하고 있던 찰나였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사소한 약속도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는 중요한 것이니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고, 그런 일련의 사고의 흐름 속에 오늘의 사태까지 이른 것인데 뭐가 맞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할머니의 용돈 3만 원이라는 사소한 날갯짓이 결석과 대화 단절이라는 나비효과를 불러일으켰다. 그 소용돌이 속에 방황하고 있는 모자가 있다. 아니 아직도 억울한 아이와 과연 내 판단이 맞았나 종일 곱씹고 있는 나약한 엄마가 있다.



# 그림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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