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 조상님께 빌어보았다

# 우리 아들 학교 잘 가게 해 주세요.

by 골방여자



제사가 있는 날이다. 신랑이 이틀 전 알려주었다. 미리 날짜를 메모해 놓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착실한 며느리는 아닌지라 이렇게 갑작스럽게 통보받는 것이 오히려 낫다. 하는 건 없으면서 마치 상차림을 다할 듯이 부담을 느끼는 나로서는 차라리 하루 정도만 부담을 느끼게 된 것이 다행이다 싶다. 마침 수능일이라 아이는 학교를 안 가게 되었고, 아침에 깨우는 부담이 없으니 나만 일찍 챙겨 가서 오래간만에 참한 며느리로 빙의할 일만 남았다.


직장을 다닐 때에는 매번 마음이 불편했다. 한 번쯤은 '며느리의 도리를 위해 연가를 좀 쓰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지만 매번 제사 때마다 연가를 쓰고 참석하기란 쉽지 않았다. 다행히 시어머니는 아직은 '내 일'이라 생각하시고 못 미더운 며느리한테 부담을 줄 생각이 없으셨지만 음식이 다 된 후 허겁지겁 들어서는 내 발걸음은 언제나 무거웠다.


이럴 땐 입이라도 가벼워야 하는데. 나는 사무실에서는 어려운 상사에게도 종종 농담도 하고, 입에 발린 아부도 하곤 하면서 시댁에만 오면 입이 무거워진다. 또 다른 일터의 신입직원 같이 느껴지던 이곳은 16년 차가 되었음에도 노련해지지 않는다. 이 일터에선 만년 신입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기가 센 사람한테 지레 겁을 먹는 편이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목소리가 크거나, 주장이 강한 사람과는 가급적 마주치는 일을 피하곤 했는데 이런 상황은 내가 의도하지 않더라도 마음이 먼저 알아서 물러나는 경우가 많았다. 모든 경우에 이왕이면 좋게 좋게 결론짓고 싶은 마음은 자주 다툼으로 이어지는 길을 원천 봉쇄하도록 만들었다. 강한 기운이 느껴지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는 것으로 내 마음을 보호했다.


종갓집에서 큰 살림을 도맡아 하며 대량의 음식을 척척 만들어 내는 어머님은 내게 센 사람이었다. 해줄 건 해주되 당당하게 할 말도 하시는, 서운함도 표현하시는, 시누이의 육아방식을 곁들여 지도 편달하시는 어머님은 내게 유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게다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친정 엄마를 보면서 나는 자연스레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그런 마음이 때때로 진심을 왜곡시켰고, 그냥 하는 말도 곡해를 해서 혼자 굽이 굽이 사연을 만드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혼자 괜히 멀찍이 거리를 두고 있던 시간이 길었다. 그냥 하는 말은 진짜 그냥 하는 말이란 것을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엊그제 아이가 학교를 안 간 일을 하소연할까 잠시 고민하다 그냥 넣어두었다. 지난번 손주의 상황이 이러이러하니 지나친 기대는 하지 마시라는 뜻에서 썰을 몇 개 풀었다가 그 걱정이 천도재에 이르는 일을 경험하곤 조심하게 된다. 어머님은 부모의 공이 부족해서 아이가 그런 것이라며 절에서 천도재를 지내자 하셨고, 또 어느 날엔 백일기도 같은 것에 오라고도 하셨다.


병원이나 상담센터를 데리고 다니는 나나 절에서 공을 들이는 어머님이나 결국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아이를 위해 애쓰는 일이란 것을 안다. 그냥 그 마음만 그대로 읽으면 된다. 그런데 이래 저래 할 말을 쳐내고 나니 나는 또 입이 무거운 며느리가 된다.




며느리들이 절하는 순서가 되었다. 시어머니는 보통 한참을 엎드려 소곤대는 목소리로 대대 손손 번영을 빌곤 하셨는데 나는 그때마다 아무 생각 없이 '이제 상을 차리고, 설거지할 일이 남았던가? 몇 시에 끝이 나려나? 어머님은 언제 고개를 드시려나?' 뭐 이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조아리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한 번 빌어보고 싶다. 정성은 시어머니께서 모자람 없이 들였으니 그 기운 빌어 진정 이 아이의 조상님이라면 좀 도와달라고 빌어보고 싶다.


제발 우리 아이, 학교 좀 잘 가게 해 주세요. 조상님.

역시 안 하던 사람이 오래간만에 며느리 노릇 좀 하려고 했더니 탈이 났다. 어제 기침이 잦던 시어머니는 오늘 아침 코로나 확진이 되었다는 전화를 주셨다. 점심때 그릇 하나를 놓고 같이 찌개를 먹었던 기억이 스친다. 목에 칼날이 꽂힌 듯 찢어져라 아프고, 온 근육이 쓰리던, 열이 펄펄 끓던, 속 쓰림으로 입덧이 떠오르던, 사일 연속 설사가 멎지 않던, 미각 후각을 잃고 인생의 좌절을 경험하던, 나에겐 너무나도 가혹했던 그 '코로나' 말이다. 전화를 받고 기분 탓인지 머리가 지끈지끈 아픈 느낌이 든다.


좋습니다. 조상님. 내 아이를 위해 이 정도의 고통은 감내해야 청을 들어주시겠다면야 기꺼이 재감염되어 드립죠. 대신 조상님은 제 소원 들어주시는 것으로 퉁칩시다.

아무쪼록 배포가 큰 조상님이기를 기원해 봅니다.



# 그림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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