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낳아서 데려온 아들이니

# 육아의 영원한 방관자 남편

by 골방여자


결혼


신랑과 나는 비슷한 점이 많았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결혼이란 제도는 무덤덤한 사람은 무관심한 사람으로, 세심한 사람은 잔소리 많은 사람으로 바꿔놓는다. 섬세하고 꼼꼼한 것이 매력이던 신랑이 섬세하고도 꼼꼼하게 잔소리 많은 사람으로 느껴지게 된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신랑은 종갓집 장손에 엄격한 부모 아래 성장했다. 이런 영향으로 자신만의 틀이 많고 이를 벗어나면 아주 불편해하는 사람이다. 성격이 급하고, 경미한 분노조절장애가 있다. 대신 부지런하고 책임감이 넘친다. 어디서 에너지가 솟는지 주중에는 퇴근 후 운동을 하고, 주말에는 시댁 농사일을 돕고, 장을 보고, 자전거를 타고, 등산도 한다.


반면 우리 집은 대체로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그래서 나는 사고가 유연한 편이고 느긋하다 못해 게으른 편이다. 에너지가 간장 종지만 해서 자주 쉬어야 한다. 주말이면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고, 침잠하는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다음 한주를 보낼 수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에너지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비슷한 류라고 착각을 했는지 모를 일이다. 아니면 비슷했던 우리가 그동안 각자 다른 시간들을 보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결혼 생활의 결과 에너지가 고갈된 내가 남았고, 에너지를 밖에서만 발산하는 신랑이 남았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기나긴 시간을 치열하게 싸웠다.




처음에 아이가 adhd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가장 궁금했던 것은 이 질환의 원인이었다. 검색을 해보니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라는 애매한 답들이 있었다. 외조부모 손에서 자랐던 양육 환경, 부모의 다른 양육 태도 등 많은 것이 신경 쓰였지만 나는 70% 이상을 차지한다는 유전적 요인에서 핑계를 찾고 싶었다. 나의 부모님인지 시부모님인지 아니면 조상님, 또는 그 조상의 조상님인지 알 순 없지만 그 누군가를 알고 싶었고, 한 번쯤 원망하고 싶었다.


추측하건대 아이는 신랑의 급하고 화가 많은 성향과 나의 게으름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 같다. 그래서 급한 성격의 신랑과 아이는 종종 부딪히고, 아이의 느린 성향은 신랑을 자극하곤 했다. 아이가 한창 화가 많던 시절, 아이의 반항하는 멘트는 날로 강도가 세졌고, 신랑은 멘트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불같이 화를 내곤 했다. 그럴 때면 종종 '이 집은 내 집이니 네가 나가'란 멘트를 시전 했고, 둘은 현관문 앞에서 어깨를 맞대고 서서 대치하곤 했다. (나중에는 이런 일이 잦아지니 아이는 '알겠다'며, '내가 나가겠다'며 큰소리치더니 뜨거운 물을 부은 컵라면에 휴대폰까지, 한 시간은 족히 버틸 수 있는 비상용품을 챙겨서 일시 가출을 감행하는 웃픈 상황도 생겼다.)


오래간만에 여행이라도 갈라치면 항상 시작이 험난했는데, 느린 아들은 외출을 위해 마음을 먹고, 챙기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현관문 앞에 나설 채비를 하고 선 가족들은 안중에도 없고 본인 할 일을 다 마치고 여유롭게 나서는 아이로 인해 여행은 언제나 다운된 기분으로 시작되었다.

(내가 본 adhd의 가장 큰 어려움은 미루기와 실행능력 문제이다. 마음을 먹는데만 한참의 시간이 필요하다 보니 그냥 미뤄버리기 일쑤고, 어렵게 마음을 먹었다 하더라도 이를 실행에 옮기기가 쉽지 않다. 문제는 이런 루틴이 모든 행위에 적용되다는 점이다.)


이렇다 보니 신랑은 아이한테서 최대한 거리를 두는 방법을 선택했다. 결국 아이를 들볶아 무언가를 하게 만드는 것도, 학습을 시키는 것도, 대화를 하는 것도, 학교를 보내는 것도 모두 내 몫이 되었다. 부딪히면 스파크가 튀는 사이라 이러한 방식은 일시적인 평화를 가져오긴 했지만, 나는 가끔 (아니 자주)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업무 중간중간 아이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 사투를 하는데 오후쯤 오늘은 학교를 갔는지 묻는 카톡 하나로 아비의 역할을 대신하는 신랑이 원망스러웠다.


내가 낳아서 데려온 아들이니?


이런 원망이 쌓이면 가끔 화살은 만만한 신랑을 향하곤 했다. 특히 신랑이 아이를 혼낼 때는 마음이 불편해지곤 했는데 아이를 향해 쏟는 말들에 심하게 감정 이입한 탓에 나를 향한 비난으로 느껴지는 날이 있었다. 마음에 안 드는 아이와 이를 훈육한 내가 같이 싸잡아 혼이 나는 듯한 느낌을 받는 날.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얘가 내가 낳아서 데려온 아들이냐'며 씩씩대면서 괜한 서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사춘기에 돌입한 adhd 자녀를 키우는 일은 부부가 생각과 마음을 같이 해도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힘든 마음을 서로 알아주지 못한다고 원망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썼다. 지금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지만 그래도 차라리 그 에너지를 아이를 잘 키워보는데 쓰는 것으로 암묵적 협의를 하고 현재는 평화기가 온 상태다.



# 그림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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