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골방여자 Dec 23. 2022

첫사랑의 망가지지 않을 의무

# 공중전화로 안부 묻던 시절


연말이다.


주 5일 술을 마시는 신랑이 비로소 참여의 목적을 당당히 말할 수 있는, 핑곗거리를 만들어내느라 퇴근 전 20여분 고뇌하지 않아도 되는 연말이다.  


오늘은 10년 전 근무하던 사무실 직원과, 오늘은 옆자리 직원이 민원 때문에 힘들어서, 오늘은 앞에서 꺾어 두 번째 자리 직원이 승진을 해서, 오늘은 누구네집 와이프가 집에 없어서, 오늘은 동호회 누님이 입원을 해서, 오늘은, 오늘은......


매일 딱히 창의적이지도 못한 구실을 만들어내느라 애썼던, 매번 전화기를 타고 흐르는 나의 쇳소리를 반주 마냥 먼저 들이켜야 했던 신랑의 노고에 심심한 감사를 표하는 바이다.


얼마 전 신랑이 본인의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 같이 갈 것인지 물었다. '00 꿈나무들'이라 불리는 몇 안 되는 친구들의 모임인데, 다른 친구들은 대체로 가족들이 모두 참여하는데 비해 신랑은 혼자 참석을 하곤 했었다. 하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저것은 굳이 함께 가자는 권유형의 표현이 아니라 그냥 알림 정도의 통보형 표현이라는 것을. 혹여나 나중에 그러한 말을 전달하였는지 의심할 친구들에겐 면피용으로, 뒤늦게 서운해할지도 모르는 아내에겐 '나는 분명히 함께 하자는 의사를 밝혔으나, 굳이 당신이 거절하였음'을 말로 확인해놓는 행위일 뿐이라는 것을.


신랑 역시 알고 있다. 내가 가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말이다. 내 동창회도 어쩌다 한 번 참석하는데, 하물며 신랑 동창 모임에 가겠는가? 딱히 대답을 바라진 않은 듯 슬쩍 흘리곤 신나서 모임에 나간다. 연말이란 말 앞에 아내의 군말이 없다 보니 떳떳하다. 오랜만에 어깨가 솟는다. 그런 그를 보며 생각한다. '어깨란 저럴 때 솟으라고 있는 것이 아닌데'라고. 가령 아내를 위해 깜빡이는 전등을 갈고 난 후나, 가족을 위한 바비큐를 굽다 지쳐 흐르는 땀을 훔쳐내다가 또는 아이와 비 오듯 땀 흘리며 운동을 한 후에나 솟는 것인데 말이다. 쯧쯧 혀를 차는 내 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폴짝 엘리베이터에 올라탄다. 발걸음도 가볍게.




언젠가 연말 즈음 나의 중학교 동창 모임에 갔던 적이 있다.

나의 첫사랑 아니, 나의 첫 마음 정도가 되는 아이가 나올지도 모르는 중학교 동창 모임 말이다. 우리 동기들은 유독 모임이 잘 되지 않았는데 마침 그날 어렵게 성사가 되었다. 참석하라는 친구의 전화에 몇 번을 거절하다가 문득 이러다가 늙어 쪼그라진 모습으로 그 아이를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드는 것이다. 그래. 오늘이 내 가장 젊은 날인데. 내가 그나마 가장 젊은 모습일 때 만나보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오후 무렵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중학교 시절. 청소시간 수돗가는 옛날 우물터나 다름없었다. 암수가 모여 다정하니, 씻지도 않을 밀대를 들곤 동네 아낙마냥 온갖 풍문을 옮기곤 했다. 거기서 주워들으니 남자아이들이 모여 놀다 좋아하는 여자친구의 순위를 매겼는데 근이라는 아이의 리스트에 내가 있다는 것이다.


그 아이는 학교의 문제아에 가까웠다. 딱히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었지만 학교에서 좀 나쁘다고 하는 애들과 무리 지어 놀았다. 그 아이에게 평소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막상 그 얘기를 듣고 나니 괜히 마음이 쓰였다. 지나다가도 한 번 더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저 아이를 어둠의 세계에서 구원하고 말겠어 따위의 정의감이 생겼다. 교복 대신 사복을 입은, 교칙을 어기고 두발이 자유로운, 시종일관 껄렁한 포즈로 다니는 그 아이는 여러모로 나의 시선을 끌었다. 역시 내가 바른길로 인도해야 할 많은 이유를 갖춘 아이였다.

 

그 아이는 나의 그런 마음은 감쪽같이 모른 채 나에게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했고, 우린 커플이 되었다. 남들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범생이와 문제아 커플이 된 것이다. 나에게 꽃다발을 준 것도, 내가 학을 천마리나 접어서 선물을 해 본 것도, 오밤중 통화 하다 걸려서 엄마한테 전화통을 빼앗긴 것도, 밤사이 쓰고 아침이면 찢는다는 러브레터를 쓴 것도, 세상의 모든 노래가 내 이야기였던 것도 그때가, 그 아이가 처음이었다.  


비 오는 날이면 비닐우산을 들고 슬리퍼를 끌고 나와 집 앞 공중전화에서 통화를 하곤 했었다. 찰방찰방 발가락을 지나는 물결이 모두 노래 같던 시절이었다. 긴긴 통화를 끝내고 나면 우산의 물기가 거의 말라있었다. 간혹 통화가 길어지면 뒷사람에게 양보한 후 기다렸다가 다시 끊겼던 통화를 이어갔다. 고작 좁은 공중전화 부스를 넘실대던 마음이었지만, 충분했다. 첫사랑까지는 모르겠고, 내가 느낀 모든 것은 첫 마음이었다. 사람으로 인해 설레고, 사람으로 인해 마음이 움직인다는 사실이 감동적이었다.


기억이란 대체로 좋았던 것만 오래 남는다. 나는 그 중학교 때의 껄렁껄렁하던, 블랙진에 청색 오버핏 셔츠를 입고 농구를 하던 그 아이를 기억한다. 그 아이를 오늘 만날지도 모르겠다. 참 오랜만에 가슴이 조금 두근거렸다.


저 테이블 끝에 그 아이가 앉았는데 우린 한동안 눈을 마주하지 못했다. 서로 슬쩍 참석 여부만 확인한 채 내도록 다른 친구들과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내가 조금 가슴 뛰며 기대했던 그 아이는 얼핏 보기에도 중후한 아저씨가 되어 있었다. 달라붙는 블랙진을 입었던 늘씬한 몸은 배둘레햄을 두른 영락없는 아저씨 몸매로 변해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너무 편한 차림 탓에 더 볼품없게 느껴졌다. 실망스러웠다. 아니 조금 화가 났다. 내 첫사랑이 이런 모습이라니. 내 첫사랑으로서, 한 때 내 어린 마음을 채웠던 사람으로서 마지막까지 망가지지 않을 의무가 있는 것인데.


아무튼 오랜만에 설레는 마음을 안고 참여했던 모임에서 나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세월을 빗겨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리라 기대했던 것은 아니지만 내 첫사랑이라면, 내 첫 마음을 함께 했던 이라면 끝까지 내 마음을 해하지 않을 의무를 갖추었으면 좋겠다.


'오겡끼데스까'를 외치며 그려보는 그가 평생 조금은 멋진 사람이었으면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