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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방여자 Jan 12. 2023

나의 마지막 아날로그, 라디오

# 아날로그 충전


너도 나도 새삥을 외치고, 돌을 갓 지난 아기들조차 휴대폰의 광활한 세계에 놀라 울음을 그치고, 청소년들은 사이버 세상에서 우정을 쌓는 2023년도에 '옛날에 말이야. 라디오라는 것이 있었는데 말이야' 라고 나지막이 말해보는 여자가 있다. 아메리카노와 서류 가방을 한 손씩 들고 토스트는 가볍게 입에 문 채 세련된 슈트에 말끔한 넥타이. 뉴욕 스트릿을 연상시키는 무수한 그들을 피해 구석에서 '그래도 아침에는 믹스커피 한 잔 해줘야 정신이 들지' 라며 나직이 말해보는 여자가 있다.  



내가 열넷이던 해


뉴키즈 온 더 블록이 혜성같이 나타나 주변 친구들이 너도 나도 '스텝 바이 스텝~~ 우~ 베이베에에~~~'를 흥얼거리며 요란한 애드리브를 곁들여 흥을 즐길 때 노래란 자고로 가사를 음미할 수 있어야 한다며 나는 테이프 되감기로 신승훈이나 이승환 노래의 가사를 받아 적곤 했다.  


그때 신승훈이나 이승환의 노래는 친구가 녹음해 준 테이프로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가사집이 없던 터라 나만의 듣기 평가로 만든 가사집을 들고 주야장천 노래를 외웠었다. 그 후 한참이 지나 실제 가사를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나의 듣기 평가 실력에 실소를 금치 못했다. 내가 적은 가사는 들리는 소리만 유사한 전혀 다른 노래였다. 그런데 나는 아직까지도 내가 적었던 가사로만 그 노래가 생각이 나니 정말 웃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엄마도 겨우내 부엌을 벗어나 외풍 때문에 이불을 코끝까지 끌어올리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 때 노오란빛 장판 위에 엎드려 그 풍경에선 상상할 수 없는 사춘기 감성을 끌어올리곤 했다. 치지직 다이얼을 돌려 주파수를 맞추고, 그대로 라디오가 움직이지 않도록 몸체를 고정시킨 후 이승연의 FM 데이트를 듣곤 했다. 글이 말이 되어 나올 때 그 글은 생명력을 더 했고, 라디오 스피커를 통과해 필터링되면 보통의 글도 꿰어진 진주처럼 단단하게 빛났다. 나는 안 듣는 노래 테이프를 미리 꽂아 뒀다가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길 기다려 녹음버튼을 눌렀다. 녹음은 플레이와 녹음버튼을 동시에 눌러줘야 해서 상당한 스피드와 집중을 요했다. 이때 센스 없이 전주가 끝나도록 멘트를 멈추지 않는 DJ 때문에 맥이 빠지기도 했다. 그렇게 녹음한 나만의 테이프를 줄이 늘어지도록 들었다. 테이프는 수명이 다하는 경우 원치 않게 모든 노래를 슬픈 발라드로 변조시키기도 했다.  


어쩌다가 오후에 우연찮게 라디오를 틀어놨을 땐 가끔 스킵하고 싶을 때가 있었는데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와 끝도 없이 전주가 이어지던 015B의 '아주 오래된 연인들' 같은 노래가 나올 때이다. 가냘픈 타령 소리를 앞세우며 '어이 에와~ 어이 차~' 같은 의태어 가득한 보리타작 소리, 지신밟기 소리, 밭 가는 소리들을 들려줄 때에는 스킵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이땐 지극히 수동적인 듣기만 가능하던 때이다. 들리는 모든 소리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던, 그러한 비주체적 듣기에도 그저 말없이 받아들이던 시기였다.   



내가 열일곱이던 해


나는 도시의 어느 하숙집에서 기거하며 고등학교를 다녔다. 하숙을 하는 애들은 대부분 거리가 먼 시골에서 온 소녀들이었다. 나는 친한 친구와 둘이서 같은 방을 쓰기도 했고, 때로는 하숙집의 사정에 따라 모르는 아이와 셋이 방을 쓰기도 했다. 낯선 이와 어울리는 것이 힘든 개인의 성향 따위는 생각할 수 없는 철저히 소유주 수익 중심의 구조였다. 어제까지 세상 저 끝에서 전혀 모르고 지내던 사람들이 하숙집에 들어온 그날부터 같이 밥을 먹고, 같은 물을 퍼담아 쓰고, 같은 화장실을 공유하는 낯설고도 가까운 사이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저녁이 되면 하숙집 앞 공중전화로 집에 전화를 해서 타지살이의 고초를 털어놓곤 했다. 어느 날 갑자기 부모 품을 떠나게 된 어린 소녀들은 공중전화를 붙들고 꾸역꾸역 눈물을 참으며 나는 잘 있다고, 하숙집 식구들 모두 잘해준다며 딴엔 안심을 주는 어른 같은 멘트를 날리곤 했다. 그러다 마저 눈물을 훔치기도 전에 하숙집 사람을 만나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표정을 감추고 지나가곤 했다. 그렇게 모두 가슴 한 편에 금방이라도 터질듯한 눈물샘 하나씩 매달고 있던 때였다.  


공중전화를 붙들고 눈물짓던 소녀들


그녀들은 모두 집을 떠나온 자의 헛헛함을 가졌겠지만 각자의 적응에 바빠 돈독한 무언가를 나누진 못했다. 그저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삶을 살다가 한 번씩 마주치면 어색한 인사를 나누곤 했다. 그중 유독 연예 뉴스에 밝았던 언니가 있었는데 이 언니는 서점의 연예잡지를 죄다 섭렵하고 온 것인지 텔레비전 보다 빠르게 연예소식을 물어 나르곤 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러한 소식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모조리 외워온 듯 생생하게 전하곤 했는데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소식이라도 들을 수 있을까 해서 나도 그 언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곤 했다. 그녀의 전두엽이 오로지 연예탐구와 이를 기억하는데 그 기능을 다한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언니는 연예소식을 가장 빨리, 또한 많이 습득한다는 이유로 늘 주위에 친구들이 많았다.  


내 방은 3분의 1 정도만 외부의 기온이 드나들 수 있는 안쪽 방이었는데 다소 습기 차고 눅눅한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도 나의 알 수 없이 차오르는 외로움을 달래는 길은 익숙한 라디오를 듣는 것이었다. 그때는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가 최고의 청취율을 자랑했었는데 이 지역엔 주파수가 잘 잡히지 않아 책상 위에 올라가거나 아주 불편한 자세로 카세트를 들고 있을 때 가끔 주파수가 잡히곤 했다. 우리는 카세트를 교대로 치켜든 채 공개방송 라이브를 듣는 촌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대학생이 되어 술을 놓고 마주 앉아 실시간 쌍방향 소통의 재미를 알아갈 때쯤 자연스레 라디오와 멀어졌다.


이제는 이 작은 휴대폰으로 보고 싶은 것만 취사선택하여 본다. 짧고 자극적인 것에 익숙해지기도 한다. 간단한 행위만으로도 제 모든 것을 쏟아내는 이 아이의 매력에 흠뻑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상한 것은 불쑥 내 안에 남아있는 아날로그 감성이 한 번씩 찾아오는 것이다. 도시 소녀들 틈에서 시골 아이와 유독 정서가 통하던 나는 휘황찬란한 디지털 세상에서 그 오래되고 낡은 아날로그 감성을 문득 떠올리곤 하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사각사각 소리 내며 연필로 글을 쓰고, 낮은 조명 아래 펼쳐진 종이책에 마음이 멜랑꼴리해지고, 90년대 유행하던 노래를 듣고, 휘저은 믹스커피를 홀짝인다. 영화 전반부를 시작하며 최화정의 업된 목소리로 시작되는 라디오신이 나오면 그저 마음이 좋아진다.


가끔 이렇게 아날로그 충전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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