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크리스마스는 더 이상 고요한 밤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탄생일이 아니다. 그냥 일 년 농사의 끝판왕, 김장을 하는 날일 뿐이다. 새벽송을 부르며 이웃을 찬양하던 크리스마스이브는 다음날을 위하여 이른 취침으로 희생되어야 하는 축복된 밤일 뿐이고, 크리스마스는 오색찬란한 색을 입은 배추를 마주하고 감정 따윈 소금 쳐 밀어 넣은 채, 며느리 본분에 맞는 대화의 명맥을 이어가야 하는 날일 뿐이다.
우리 시댁은 매년 복된 그날, 크리스마스에 김장을 한다.
아이들에게도 일찌감치 일러두었다. 산타는 이제 노환으로 유명을 달리하셨다고. 엄마가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였으니 오래 사신 거다, 이제 편히 보내드리자고. 아들은 자손이 있지 않겠냐며 생각지도 못한 반문을 했지만, 산타는 원조 할아버지가 아닌 이상 의미가 없다 뭐 이렇게 둘러대고 희망의 싹을 없앴다.
물론 그전에 산타를 추억할 동심은 충분히 챙겼다. 한 해는 나와 카톡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직장 남자동료에게 부탁하여 산타인 척 카톡을 부탁하여 최첨단 시대에 맞게 산타와 카톡 대화도 연결시켜 줬으니까. (다행히도 아이들은 깜빡 속았고, 선물을 몇 개나 달라고 하는 것을 산타로 빙의한 그 직원이 모두 오케이 하는 바람에 조금 난처했던 기억이 난다. 그 직원의 가벼운 혀를 놀린 죄는 다음날 등짝 몇대로 응징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도록 산타의 존재를 믿는 아이였으니 동심의 세계는 충분히 즐겼다. 그래도 너무 입 닦는 건 양심상 너무 한 것 같아 요즘 우리 집 산타는 마음을 가득 담은 현찰을 머리맡에 둔다.
미션 임파서블
신혼 초에는 한 해를 가장 따듯한 마음으로 마무리해야 할 크리스마스에 김장을 하며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싫었다. 하필 하고 많은 날 중에 크리스마스날이라니. 소금에 절어 짠 눈물을 흘리는 것은 비단 배추만이 아니었다. 내 마음은 매번 울었고, 마음에 없는 일을 하려니 고되었고, 매년 그날은 유독 추웠다.
하지만 이제는 세월이 흘렀다. 크리스마스를 남들 못지않게 보내기 위해 특별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더 괴롭다. 차라리 생각 없이 김장을 하고, 둘러앉아 수육에 갓 한 김치를 척 올려 먹고 나면 오후가 반쯤 지난 이런 일과가 오히려 낫다는 생각도 든다. 이제 크리스마스날이 김장을 하는 날인 것은 마치 삼일절, 한글날처럼 너무도 당연한 일이 되었다. 아들은 이제 컸다고 디데이를 세며 나를 놀리기도 한다.
김장을 하다 잠시 표정을 놓치기라도 하면 며느리란 자는 괜한 오해를 받기 쉽다. 비록 진실로 그냥 지친 것이더라도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듯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는 어떤 소리라도 늘어놓아야 한다. 하지만 시댁이란 곳은 유머 코드가 다른 곳 아니던가. 결혼이란 유머 코드가 비슷한 가족 간의 합동 코미디라는 생각을 했었다. 코드가 비슷해야 같은 신에서 같이 빵 터지는 것이다. 신랑과는 조금 비슷하다는 느낌으로 만났겠지만, 가족까지 그 코드가 맞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가끔 자주 나와 동떨어진 유머 코드를 가진 그곳에서 생경한 느낌을 갖는다. 나는 웃으며 한 얘기에 반응이 세하다거나, 내가 예상했던 반응과 다른 반응으로 이야기의 맥이 끊긴다거나. 혹은 가끔 저들은 다 웃는데 나는 웃기지가 않는다거나.
하지만 그럼에도 이야기는 이어져야 한다. 나는 그런 미션이라도 받은 듯 머릿속을 열심히 굴린다. 그럴 때 그나마 가장 꺼내기 좋은 말은 평소 부족하여 개선하여야 하는 점인데 가족의 호응이 있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그들의 핏줄인 내 남편의 이야기 같은 것이다. 가령 신랑의 과한 음주, 그로 인한 신랑의 건강상 우려, 처인 자로 겪는 안타까움 따위가 그것이다. 처음엔 '이놈의 자슥. 술 좀 그만 마시고 건강 생각 좀 해라' 뭐 이런 시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지면 약간의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하지만 이에 동해 방언이 터져 이것 저것 다 꺼내다 보면 또 순간 분위기가 싸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그렇다. 여기는 유머 코드가 다른 시월드인 것이다. 실컷 떠들다 보면 나 혼자 웃고, 다들 세해진 표정으로 죄 없는 배추만 투덕투덕 두드리는 모습이 포착된다. 역시 이것도 아니다. 이런 소린 안 하니만 못하다. 순하디 순하고 가정적인 자신의 아들, 동생, 오빠를 한없이 힐책하는 못난 며느리가 되고 만다.
얼른 주제를 돌려야 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아이들의 이야기로 주제가 옮겨간다. 나는 우리 가족에 대해 상당이 객관적인 편인데, 어떠한 때는 자랑을 늘어놓는 것이 민망해서 오히려 더 아이들을 낮추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요즘엔 그냥 진실을 얘기함에도 크게 자랑할 것이 없다.) 두 아이가 모두 사춘기가 되어 우리를 힘들게 한다는 말, 아들의 진이 빠지는 등교 스토리 끝에 시누이가 자기 딸아이의 자랑스러움을 뿌듯하게 내뱉고 나면 나는 순간 절인 배추가 된다. 나의 사연은 시누 딸의 이야기를 펼쳐놓기 위해 배경으로 풀어낸 전개 단계의 이야기로 전락해 버린다. 우리 아이들의 부족한 이야기를 딛고 시누 아이의 잘난 모습은 더 빛을 발한다.
한 때 나의 아이들이 아주 바람직한 남매의 모습으로 보이던 때가 있었다. 뭘 해도 척척 잘하고, 어딜 가도 책을 끼고 다니던 아이 덕에 나의 방목 육아는 뭇사람들의 환영을 받았다. 전국 방방곡곡 여행을 다니며 감성을 쌓아가는 남매들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희망을 예견했었다. 막내 시누는 종종 나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걱정스러운 표정의 시누 앞에서 나는 자신 있게 조언을 했었다.
하지만 학교조차 제대로 나가지 못하는 아이가 된 지금, 나는 조언 비슷한 말도 할 수가 없다. 이제 나의 말은 힘을 잃었다. 육아에 휘청대는 현재 나의 모습으로 인해 나의 말은 신뢰를 주지 못할 것이다. 말의 힘이란 그렇다. 내가 그 근거와 논지를 가져야 납득시킬 수 있는 것이다.
시누의 딸은 독립심이 강하여 자기주도학습이 되고, 혼자서 뭐든 잘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아이 사랑이 과한 시누는 투덜대면서도 아이를 건사하는 일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역시 넌 내 손이 없으면 안 돼'를 자연스레 학습시키는 사람이었다. 그런 태도가 자립하려는 아이를 자꾸 주저앉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내 손안에 두고 싶은 과한 욕심이 아이의 독립심에 방해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말할 수 없었다. 차마 조언 따위를 할 수 없었다. 나의 말은 특히, 육아에 있어서는 힘을 잃었으므로. 씁쓸한 기분이 되어 다시 투덕투덕 김치를 버무린다.
외롭다. 외롭지 않다. 외롭다. 외롭지 않다.
오늘도 나의 유머는 자꾸 꼬인다. 웃어야 하는 포인트에 그들은 웃지 않는다. 칼질이 되어 있는 배추를 반으로 쩍 가르며 나는 또 생각한다. 햇살이 쨍하니 눈을 찌른다. 햇살을 정면으로 마주 보고 섰더니 얼굴에 열이 오른다. 마침 딸 둘과 아들은 햇살 반대편에 세우고, 며느리는 햇살을 마주 세운 시아버지가 생각나 "아버님이 며느리만 햇살 드는 곳에 세우셨나 봐요. 딸들은 등지게 하고. 제가 눈치 없이 반대편에 설 뻔했네요. 호호호" 나는 열심히 미션을 수행한다. 말이 끊어지면 안 되니까. 그럼 하기 싫어서 억지로 하는 듯한 표정으로 오해할 수 있으니까. 호호호. 나의 웃음이 이렇게 간사하였던가. 시누 남편들이 못내 웃어준다. 그렇다. 저들은 그래도 아군이다. 나는 웃는데 또 아무도 웃지 않는다.
어디까지가 내 마음의 소리이고, 어디까지가 내뱉은 소리인지 알 수가 없다. 나는 많은 시간 침묵했고 기록한 것들은 그저 다 내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김치를 치대기 위해 마련된 선반위에 소금에 절은 배추와 양념이 차곡차곡 쌓인다. 해는 어느덧 정수리에 내려 앉는다. 꼿꼿하게 유지했던 허리가 아프고, 어깨가 아프고, 발바닥이 아프다. 우리는 김장을 하며 이야기를 한다. 누군가는 말하고 누군가는 듣는다. 그들이 웃을 때 나도 웃어본다. 외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