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인다. 먼지는.
내가 집안일에 대해 무지하던 시절. 규칙적인 흡입과 들추어냄이 필요하다고 인지하지 못하던 시절. 내 눈엔 먼지가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어차피 시집가면 실컷 할 건데 굳이 어릴 때부터 뭘 시키나 싶어 우리에게 집안일을 강요하지 않았었다. 그 마음의 이면은 저도 그 나이가 되면 절로 깨닫는 바가 있겠지 였던 거 같다. 하지만 엄마의 예상과 달리 나의 클린 나이는 제때 성숙하지 못했고 결혼 후 얼마간은 내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기에 그다지 잦은 횟수로 치울 일도 없었다. 그러던 나는 결혼하고도 한참 뒤 육아휴직을 하고 본격 집안일을 마주하고 나서야 비로소 먼지라는 것에 기겁하는 진정한 주부가 되었다.
그렇다고 그 말이 집안일이 적성에 맞았다거나 알지 못했던 현모양처의 기질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제는 먼지는 보이되 주부 역할은 꽤 성가신 몸이 되어 그 이질감에 괴로워했다. 그래서 그나마 효율적으로 집안일을 해치우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빨리 끝내고 눈을 감는 것이었다. 기상과 동시에 청소와 빨래, 설거지를 후다닥 끝내놓고 그 이후는 절대 거들떠보지 않는 것이다. 보여도 보지 않는 것이다.
비로소 먼지에 눈을 뜨게 된 이후 내게 가장 곤혹스러웠던 것은 화장실 청소였다. 그들의 가장 내밀한 곳에서 발산한 흔적과 체취는 아무리 가족이라 한들 감싸 안을 수 없는 영역이었다. 심봉사 눈 뜬것도 아닌데 희한하게 어느 날부터 물때와 얼룩과 엉킨 머리카락이 보였다. 낯선 이가 밀도높은 사이가 되기 위해 허물을 보이듯 낯선 영역이 나의 범주에 들기 위해 그들의 민낯을 여과없이 보이곤 했다. 그러다 보면 불현듯 그런 사이로 다가가기 위해 무람없이 화장실에서 청소를 하던 나의 한 때가 기억 나곤 했다.
직장에 처음 발령을 받고 내가 다른 이와 같이 사는 것이 적합한 사람인가 뭐 이런 성향을 따질 새도 없이 나는 같이 발령받은 한 살 어린 친구 선과 같이 원룸을 쓰게 되었다. 홀로 생활하고픈 마음이 한 편에 있었지만 선이 꺼낸 같이 지내길 원한다는 말이 쉽게 나온 말이 아님을 알았기에 나는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그렇게 다른 곳에서 살다 단지 같은 직장이란 공통분모밖에 없는 지극히 타인인 우리는 어느 날 룸메이트가 되었다. 선은 나와 아주 성향이 잘 맞아 너무 편한 친구라기보단 무난하게 조금 어색한 사이였다. 그래도 크게 다투거나 마음 상할 일 없는 평온한 동거를 이어갔다.
나는 그때도 청소나 정리에 적극적이지 않은 나를 알았기에 외출하여 돌아와 분리수거가 되어 있는 쓰레기나 비질이 되어 있는 방을 보면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어 좁은 화장실에 들어가 쭈그리고 앉아 거품을 풀어 청소를 하곤 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혹여나 서운한 마음이 쌓이면 안 되겠다 싶어 내 나름엔 제일 귀찮고 하기 싫은 일을 먼저 하는 것으로 같이 사는 이의 눈치를 살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선이 외출을 한 저녁. 우연히 바닥에 놓인 선의 수첩을 발견하게 된다. 매일 저녁마다 무언가를 끄적이던 것이 생각났다. 무심코 보게 된 그것은 일순간 나를 갈등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었다. 선의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작업이 너무 궁금한 자아와 이를 강하게 거부하는 이성적 자아가 갈등했는데 하필 거기에 보란 듯이 놓여 있었음이, 선의 예정된 부재시간이 충분하였음이, 시건장치가 확인된 밀폐된 공간이라는 사실이 추를 늘어뜨려 내 마음을 기울게 했다. 밤마다 뭘 그리 적고 있었나 주절대며 휘파람이라도 불 듯 가벼운 마음으로 수첩을 투두둑 요란하게 넘겼는데 그것이 판도라의 상자였음을 미처 몰랐던 것이다.
그 수첩엔 나에 대한 기록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같은 날 같은 곳에 발령받은 우리는 의도치 않게 경쟁구도에 놓이게 되었고 잘 적응하는 것으로 보이던 나와 달리 선은 적응이 조금 느렸다. 눈치 빠르고 잽싼 나와 달리 선은 느리고 진중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면은 선의 열등감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곳엔 나에 대한 비난과 원망이 매일매일 쌓이고 있었다. 전혀 생각지 못한 내용을 마주한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그저 외로움이나 자기 성찰적 내용을 기대했던 내게 그 내용들은 다소 충격이었다. 아니,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나를 대했던, 아니 오히려 호의로 대하던 선에 대한 배신감이 들었다.
그날 이후 선은 내게 낯익은 타인이었다. 알지만 알지 못하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알지 못했던, 매일 보아왔지만 하나도 보지 못했던, 낯은 익으나 여전히 머나먼 타인이었던 것이다.
일기장은 그 후로도 매일 기록 되었고 그 옆에 방황하는 눈빛의 내가 있었다. 휘갈기는 펜이 속도를 더해갈수록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얼른 이불을 덮어쓰곤 했다. 창과 방패를 모두 들고 달려드는 선에게 어느 것으로 견주어야 할 지 몰라 뒷걸음질 치기만 했다. 그리고도 몇 개월 더 조용한 동거를 이어가다가 나의 결혼을 이유로 우리의 동거 생활은 자연스레 끝이 났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 사람도.
나는 그때 그만큼밖에 보지 못했다. 이중적인 선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한 모습을 숨기지 못하고 자연스레 마음이 멀어졌다. 생각해보면 속으로야 누구든 그런 마음을 품을 수 있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겉으론 탄성을 지르지만 속으론 질투를 품던 많은 순간이 있었다. 누구에게나 그런 마음이 있음을 이해한다. 하지만 나에 대한 적대감에 앞서 열등감으로 스스로를 헐어가던 선의 결핍을 보았다면 나는 또 선이 달리 보였을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그땐 내가 아는 딱 그만큼만 보였다.
아무렇지 않은 모습을 하고 다른 마음을 품고 있던 우리는 둘 다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알고 보면 둘 다 방패를 들고 서로를 방어만 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방패에 가려 우리의 본질은 더더욱 낯선 또는 낯익은 타인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 시절에서 몇 걸음 더 걸어나왔는지 모를 일이지만 나는 이제 낯선 타인이면 낯선 타인이지 낯익은 타인은 만들지 않는다. 아니 그러려 애쓴다.
# 그림 출처 : 일상의 작은 공백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