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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방여자 Jan 11. 2023

내 안에 화 있다

# 싫어도 싫다고 말을 못 하는 한국의 여인


나는 대체로 의사를 표현하는 데 있어 주저함이 많다. 특히 거절을 표해야 하는 경우 이런 말을 했을 때 상대방이 느낄 상실감이나 그 이후 어색해질 공기, 마주하며 나눠야 할 어색한 눈 맞춤, 그 눈길을 피하며 동시에 샐쭉거릴 나의 입모양을 그려보곤 내뱉기가 망설여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일이 내가 잠깐 참거나 침묵하여 넘어갈 수 있는 일이라면 나는 거절 후의 다가올 불편을 감수하느니 이를 표하지 않는 편을 택했다.


나는 내 거절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놓인 상대를 온전히 마주하기가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것은 지극히 타인의 몫이지만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한 나머지 안녕을 고하고, 손수건까지 건네고도 떨어지는 눈물방울을 두 손 모아 받치고 선 모양이랄까.


단, 이런 일련의 사고 흐름은 내 안에서만 일어난다. 표정은 따로 바꾸지 않고 속에서만 끙끙 앓느라 타인은 잘 알아채지 못한다. 그리고 이를 감쪽같이 감추고도 남을 정도로 내뱉는 어휘는 단호하다. 마치 나의 끙끙댐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


나의 이 주저함은 타인의 사탕발림 같은 언어 앞에서 유독 힘을 잃곤 했는데 누군가의 부탁 앞에 성격이 좋아 보인다거나, 어려 보인다거나, 인상이 좋다거나. 이런 뻔한 언어유희가 앞서면 나의 거절 멘트는 세상에 없던 말인 듯 쏙 들어가 버리고 그 말에 응당 보답이라도 해야 하나 하는 순수한 호의가 먼저 생겨나는 것이다.  



스무 살 남짓 하던 어느 날. 시내에서 친구를 만나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려 정류장에 서 있었다. 찬 겨울이라 다들 옷깃을 움켜쥐고 발치만 바라보고 있었다. 바람이 선듯선듯 드나드는 그곳은 정류장을 나타내는 네모난 기둥과 의자 몇 개만 없으면 그냥 허허벌판에 서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사람들은 눈을 내리깔고 저마다의 근심에 빠진 탓에 남들을 향한 따스한 시선이라곤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삭막하고 황량한 그곳에서 시선을 빼앗는 누군가가 있었으니 그는 커다란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어깨에 들쳐 메고 치지직 거리는 라디오를 튼 채로 사람 사이를 오가던 이였다.  


그 회색빛의 커다란 물체를 찬 겨울에 맨손으로 기꺼이 둘러메고 다니는 그에게 손안에 쏙 들어오는 미니카세트의 존재를 알려주고 싶었지만 괜한 말을 걸었다가 내 말 한마디에 줄기에 매달린 고구마처럼 주렁주렁 사연이 이어져 나올까 두려워 그만두었다. 그이는 내가 시내를 갈 때마다 마주치곤 했는데 저런 과잉 행동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뺏고 싶은 소위 관종이거나, 그저 순수하게 외출을 하려던 찰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사연을 놓칠 수 없어 끝까지 듣고자 할 때 마침 사연을 내뿜는 그것이 저렇게 컸을 뿐인, 아주 인간적인 이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군대에서 가혹한 폭력에 시달려 저렇게 되었다는 둥, 고시 공부를 하던 사람인데 공부를 너무 많이 하는 바람에 뇌의 과부하로 저렇게 되었다는 둥 사람들의 수군대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어떤 날에는 시내 경유를 확인하는 스탬프 도장이라도 찍듯 그를 찾아보기도 하였다.


이이를 발견하고 역시 이곳이 시내 번화가구나를 실감하고 있을 때 누군가 나에게 다가왔다. 언어유희를 앞세워. 인상이 참 좋아 보인다면서, 이런 광채를 내뿜는 인상은 처음 본다면서 눈을 빛내며 다가오는 그들 앞에 나는 나의 주저함 많은 성격을 들킨 게 분명하다. 그런 말들에 자유롭게 놓여나지 못함을 눈치챈 그들은 휘몰아치듯 세상 좋은 말들을 늘어놓더니 자연스럽게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전개를 펼쳤다. 괜찮다는 완곡한 거절 의사에도 그들은 2인 1조의 완벽한 용사가 되어 양쪽 귀에 붙어 서서 찬란한 어휘를 귀 속으로 흘려보냈다. 그때만 해도 세상 순수하고, 사람에 대한 믿음이 강했던 나는 그들이 전하는 이야기만 잠깐 들으면 당신의 인상이 말하는 찬란한 미래에 대해 알려주겠다는 말에 혹해 어느덧 커피숍까지 따라 들어갔던 것이다.


어둑어둑한 조명과 어울리지 않는 야자수와 초록 잎사귀의 인테리어가 주인의 미적 감각을 대변해 주었다. 나는 그 짧은 순간에도 인테리어가 내 취향이 아니라는 어이없는 생각을 하며 어색하게 자리에 걸터앉았다. 알 수 없는 어휘들이 견명조체로 인쇄된 리플릿을 마주한 순간 불현듯 현실감각이 깨어났다. 내가 지금 홀린 듯 들어와서 뭐 하는 짓인가. 이 순간을 어떻게 모면해야 하나. 정적을 깨고 그들 중 한 명이 이렇게 말했다.


"혹시. 도를 아시나요?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좋은 말을 들려주는 대신 커피값은 당신이 냈으면 합니다"


지금이다. 지금이 마지막이다. 더 이상 끌려가지 말고 나의 의사를 밝힐 타임이야. 그래 말해. 말하라고. 왜 싫으면 싫다고 말을 못 하냐고! 말하라고!


"죄송하지만. 저는 관심이 없습니다. 이만 가보겠......"


흡사 이별을 말하고 입을 틀어막고 뛰어나가는 여인처럼 그곳을 뛰쳐나왔다. 말을 마무리 짓고 나오려다가는 오늘 막차를 놓치고 집에 가지 못하도록 잡혀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후 나는 나의 이 어이없고도 부끄러운 일화를 마음속 깊이 홀로 간직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끝에 나의 순수함을 찬양할 이는 그 누구도 없을 테니까.


비슷한 이유로 나는 대학교를 들어가기 직전 동네 오빠의 순수한 눈에 속아 희한한 종교모임에도 따라간 적이 있는데, 그때는 설마 나를 이상한 곳으로 인도하진 않겠지란 순수한 눈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버스에서 만나 유독 알은체를 하더니 너에게 대학생활을 미리 알려주겠다는 말로 나를 끌어들였다. 대학생활이 성경책 안에 담겨 있진 않을진대 나는 그날도 그렇게 성경책을 마주하고서야 정신이 번쩍 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내가 그 자리에 나가기까지 정말 아주 순진무구하게 전혀 알지 못해서였을까? 아니다. 중간에 분명 쎄한 느낌이 왔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순수의 눈앞에, 호의적인 말 앞에 차마 거절을 말할 수 없었을 뿐이다. 그 타이밍만 살피다가 지금 당장 싫다고 말하라는 하느님의 은혜로운 음성을 듣고서야 벗어날 수 있었다.(그 모임은 일반 기독교가 아닌 사이비 종교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미용실에서 진갈색 염색을 원하는 내게 먹물 같은 흑발 염색을 내놓던 그녀에게도, 굵고 자연스러운 펌을 주문한 나에게 고은애의 뽀글펌을 내놓던 그녀에게도, 4인분 같은 3인분을 주문했는데 4인분을 내놓던 그에게도,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는데 카페라테를 내놓던 알바생에게도, 보완에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던 미완의 결과물을 들고 온 직원에게도 나는 차마 말하지 못하고, 그냥 돌아섰다. 내 마음에 들이치는 수많은 부정의 말들과 거부의 말들을 뱉어내지 못하고 그저 삼켰을 뿐이다.   


'달려라 하니'의 홍두깨 애인 고은애

생각해 보니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들 중 하나는 저들의 마음이 내 맘 같지 않아서 힘들다는 말이었다. 내가 거절을 표하지 않는 것은, 그 말을 함에 있어 오랫동안 주저하는 것은 그 말을 당장 뱉지 못해서가 아니다. 그 말을 마주하고 곤욕스러워지고 때론 곤란해질 그들의 처지를 먼저 고려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늘 이렇게 깊은 사고 끝에 말을 내뱉는데 저들은 왜 이토록 한없이 가볍고 얕은지를 탄식하며 비난했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나의 그런 주저함의 기저에는 늘 그들의 기대를 무너뜨리고 싶지 않다는, 모두에게 그저 좋은 사람이고 싶은 무분별한 호의가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의 마음을 실망시키지 않으면서 나는 또 좋은 이미지로 포장하기 위해 과한 배려를 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내 마음의 보호를 위해 나 스스로 그런 행동을 자처했으면서 이런 나를 왜 이해해주지 못하느냐고 어리석은 비난을 내뱉었던 것이다.


내가 주저함이라는 어리숙한 변명 뒤에 숨어 있는 동안 나는 그들의 기대치를 더 높이고, 때문에 상실감 또한 더 높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 코스를 더 지나 나를 내려준 버스 기사아저씨께 차마 들끓는 화를 말하지 못하고 주저하다 내린 다음 정류장에서 나는 누군가를 스쳐 지나갔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사람인데, 낯이 익은데, 학교 선배인가? 다시 가서 인사라도 해야 하나 사고회로를 한참을 되감다가 나는 웃고 말았다. 낯이 익어 선배 같던 그이는 옛날 정류장의 트랜지스터 라디오 사나이였다. 이제 사연이 필요치 않은지 라디오를 들었던 손은 호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고 있었고 일찍이 조숙했던 탓에 그다지 늙지도 않았다. 무심하게 나의 주저함의 기억을 회상하게 만든 채 그곳을 지나갔다.  


(나를 힘들게 하던 민원인을 몇 년이 지나 만났을 때 그저 아는 얼굴이란 인상만 남아 너무도 반갑게 인사해 놓고 돌아선 후 저이가 나를 지독히도 괴롭히던 기억이 떠올라 내 반갑던 인사를 되돌리고팠던 씁쓸했던 그날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는 과감히 라디오를 버렸는데, 나는 아직 주저함을 버리지 못했다. 그는 가벼워졌는데 나는 내 안에 화를 품고 오늘도 머뭇거리고 있다. 이제는 내가 그에게 어떻게 라디오를 버릴 수 있었는지, 새삼 가벼워질 수 있었는지 그 사연을 들어봐야 하나 나는 또 멀어져 가는 그를 그저 바라보며 주저 주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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