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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방여자 Jan 04. 2023

알지만 못하는 슬기로운 직장생활

# 알기는 쉬우나 하기가 어렵다


직장생활이란 것이 오래 한다고 해서, 잘 안다고 해서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오히려 잘 알지만 몸이 마음을 거슬러서 어긋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마음이 동해야 몸이 움직이는 지극히 일차원적인 나는 존경이 우러나지 않는 상사에게 거짓 아부를 하는 것이 마치 나의 신념을 거스르는 행동인 냥 대쪽 같은 모습으로 일관하곤 했다. 독립운동을 했다면 선봉자는 못되더라도 앞에서 스무 번째 줄에서 태극기 들고 따르다 슬쩍 뒤로 빠지는 정도의 딱히 두텁지도, 깊지도 않은 신념은 가졌을 것이다.


그런 내 눈에 들어왔던 허술하지만 이상하게 직장에서는 통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내가 훔쳐본 그 자들의 팁을 적어보려 한다. 이러한 점을 그러모아 한 인간으로 재탄생한다면 그야말로 슬기로운 직장인이 될 것이지만, 브런치에서 앞으로로 수없이 발행될 직장생활 꿀팁들을 위해 글감을 없앨 정도의 과욕은 부리지 않길 바란다.


1.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은 후배

배우려는 자세는 아주 중요하다. 모르는데 끙끙대며 시간을 버리는 것보다 포인트가 되는 일을 빨리 습득한 후 이를 처리하는 데 시간을 더 할애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하지만 배우려는 자에게도 기본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처음 하는 일이 서툰 것은 당연하지만 무턱대고 들고 가서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을 내게 다 내놓으시오'란 표정으로 멀뚱멀뚱 보고 있으면 가르치는 자의 입장에선 조금 반감이 든다. 이 자가 그러한 지식과 지혜를 습득하기 위해 지금껏 들인 공과 노력과 때론 수치와 시간 따위가 떠오르는 것이다.


적어도 스스로 먼저 알아보는 노력 정도는 해야 한다. 질문을 하기 전에 이전의 자료를 찾아보고, 근거가 되는 법령도 찾아보고, 기본적인 정보를 스스로 알아본 후 궁금한 사항을 메모하여 그 점을 중심으로 물어본다면 더없이 효율적일 것이다. 너무 알고자 해서 이 정도 노력은 했으니 조금만 도와 달라는 자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타인의 시간을 뺏는 일인 만큼, 뺏긴 시간의 가치를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다.  


2. 비굴한 자세면 충분하다.  

상사가 나의 실수를 지적하는 경우, 그 지적은 많은 원인이 집약되어 나타난 하나의 표출에 불과하다. 단지 어느 하나의 문제가 마음이 들지 않아서라기보다는 그 문제를 둘러싼 직원의 태도, 말투, 감정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종합된 감정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그런 상황을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상사의 지적 하나에만 몰두하여 조목조목 반박하며 날을 세우는 사람이 있다. 마치 저 사람이 깨우치지 못한 바를 내가 아니면 아무도 알려줄 수 없다는 듯이.


하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구체적인 변명과 이유가 아니다. 그저 쩔쩔매며 뉘우치고 있는 듯한 비굴한 자세면 충분하다. 상사는 단지 직원의 그런 모습을 목격함으로써 나의 권위를 확인하고 보상받고 싶을 뿐이다. 그가 화가 났다면 화가 난 채로 두라. 애써 반박하여 화를 돋우지 말고, 그냥 한 번 넙죽 엎드리고 말자. 자세를 한껏 낮추는 직원을 보며 이보 전진하여 분노를 확장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상사가 나의 실수를 지적하는 경우, 지금은 말을 할 때가 아니라 침울한 표정으로 침묵할 때임을 알자.


3. 칭찬을 남발하자.

나 역시 칭찬에 춤추는 무수한 고래들 중 하나로 칭찬 찬양자에 가깝다. 빈말인 줄 알지만 그래도 기분 좋은 것이 칭찬이다. 하지만 나는 비겁하게도 할 줄은 모르면서 덥석 받는 것만 잘해서 문제다.


특히 칭찬을 남발하는 직원들이 있다. 그들을 마주할 때마다 가식적이라는 느낌과 함께 그 진의를 의심하느라 내 표정은 늘 굳어있었다. 하지만 상사의 뼈 아픈 말을 듣고 잠 못 들던 억울한 밤을 생각해 보라. 그때 하필 목소리가 떨려선, 왜 할 말을 주워 삼켰는지, 그때 이 말을 했어야 했는데. 미처 다 하지 못한 말을 밤새도록 혼자 되뇌며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던 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을 나락으로도 빠뜨리기도 하지만 잠깐의 관용으로 구원하기도 한다. 굳이 하려거든 나쁜 말은 삼키고, 좋은 말만 하자. 굳이 보려거든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말해주자. 감언이설인 줄 알면서도 가까이 하여 한 번 더 듣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4. 답정너, 답이 정해진 보고를 하자.

보고를 하는 직원은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여러 가지 대안을 무수히 나열해 놓고 이제 당신의 결정만을 기다리겠다는 자세로 조아리고 있는 직원과 여러 대안 중 대략의 답을 정하여 오는 직원이다. 상사가 직원의 일을 상세히 알기란 어렵다. 그런데 답만 내려 주시면 나는 그대로 행하겠다는 수동적인 태도에서 상사는 짐짓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그 결정을 한 책임이 온전히 본인에게 있다는 두려움에 결정을 자꾸 유보하게 된다.


내가 답을 갖고 보고를 하는 것이 결재자의 답을 빨리 도출해낼 수 있다. 그들도 결정과 책임이 두려운 자들이다. 검토는 내가 충분히 했으니, 책임을 지는 자의 부담을 덜어주자. 나의 근심하는 바를 예견하고 그 부담을 덜어주는 자 예쁨 받아 마땅할 것이다.    


5. 유연한 대처, 적을 만들지 말자.

유독 고집이 센 사람들이 있다. 나중에 혹여나 사실이 아닐 경우 이를 어찌 주워 담으려 그러나 싶을 정도로 고집을 꺾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나중에는 이제껏 주장했던 것들이 억울해서 끝까지 우기는 것은 아닌가 의심스러워지기도 한다. 여러 사람의 의견이 중요한 그 곳에서 굳이 고집을 강하게 내세워 나와 생각이 다른 자를 적으로 돌릴 필요는 없다. 일이란 것이 부서 간에 유기적 움직임으로 일어나는 것인데 그 적은 내 의사결정 절차에 걸림돌이 될 뿐이다.


가끔은 건들거릴 정도로 유들유들함이 필요하다. 나의 저의를 드러내지 않고, 큰 부담이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내가 그리 악을 쓰지 않아도 어떻게든 일은 해결된다. 내 경험상 이제껏 해결되지 않는 일이란 없었다. 내가 죽어라 덤벼들 일은 이것 말고도 많으니 굳이 그런 소모적인 일에 힘을 빼지 말자.


6. 눈치 또는 센스 또는 일머리, 뭐든 하나라도 장착하자.

직장생활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눈치 또는 센스이다. 상사의 기분, 사무실의 분위기, 내밀하게 흐르는 침묵 아래 숨겨진 긴장. 내 일만 죽어라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내 주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눈치 없이 상사가 화가 났을 때 결재판을 들고 가 괜한 화를 입는다거나, 바쁜 와중에 중요한 의사결정을 요하여 심기를 건드리게 되는 것이다.


하나를 말하면 센스 있게 알아채 진행하는 일머리도 중요하다. 일을 부리는 자가 전체를 그리지 못하고, 유기적으로 엮지 못한 채 이것저것 벌여놓기만 하고 수습을 하지 못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동료의 몫이다. 일머리라는 것이 타고나는 센스 같은 것이지만 노력해서라도 장착하자. 일을 잘하는 이는 몰라도 못하는 이는 금세 드러나게 마련이다.




결국 슬기로운 직장생활을 하는 이들은 가장 기본적인 것을 잘하는 이들이었다. 내가 알지 못한 것들이 아닌 "알고 있지만 내가 미처 하지 못한 것들"이다. 나 역시 매일 출근길 머릿속으로는 이상적인 나의 모습을 그리며 새 몸을 장착하고 나가지만 매번 팔다리의 합이 맞지 않아 어색한 몸짓과 표정을 짓게 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럴 때 오히려 부러운 사람은 공감능력 없이, 눈치 없이 제 일만 하는 사람이었다. 아무 신경 쓸 것이 없으니 주변 사람만 힘들지 정작 본인은 힘들 일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런 글을 읽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는 당신은 태생이 그렇게 태어나지 못한 자이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그냥 하자. 내가 익히 잘 알고 있던 것, 내 옆에 누군가가 늘 했지만 나는 늘 부정해 왔던 것. 나는 못했지만 부디 당신은 슬기롭게 해내기를, 그런 모습으로 내 옆의 누군가가 되기를 바란다.


(이러한 조언 역시 성공한 자가 해야 하는 것이나 그런 자의 후일담은 임팩트는 있으나 현실적이지 못하다. 나 같이 현재 진행형이어서, 거의 실패에 가까운 자의 푸념은 지극히 소소하나 현실적이므로 누구 한 명이라도 작은 의지가 불끈 솟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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