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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방여자 Jan 18. 2023

그 해, 영주

# 사람들 속에서 시달릴 힘을 얻다


고등학교 시절. 문과와 이과의 갈림길에는 나는 이과를 선택했다. 나의 미래를 결정하는 일임에도 고려된 사항은 향후 취업의 문이 넓다는 단순한 이유 하나였다. 대학교에 들어가 학부를 거쳐 학과를 선택할 때에도 처음 1학년때 경험했던 학과를 자연스럽게 선택했다. 내가 친해진 이들이 다수 속해있고, 그간 익숙해졌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직업을 선택함에 있어서도 나는 단지 남들 눈에도, 내 눈에도 안전하다 여겨지는 직업을 선택했다.


생각해 보니 내가 무언가를 선택하는 데 있어 항상 나의 성향이나 취향, 관심사보다 앞서 비중을 차지한 것은 안전하여 다수가 따르는 쪽이었다. 우르르 사람이 몰리는 곳 끄트머리에 언제 왔는지 모르게 살짝 자리했다. 그로 인해 나의 불안을 잠재우고 그 속에서 주는 작은 소속감에 그저 만족했다.


직장은 대체로 나와 비슷한 안전 지향형 인간이 집합된 조직이건만 이 속에서도 급진파와 온건파가 구분되었다. 비슷한 무리 속에서도 어떤 형태로든 공격을 하는 자와 이로 인한 수비에 온 힘을 쏟는 자가 나뉘게 마련인 것이다. 그중 후자에 가까웠던 나는 다채로운 관계에 맥없이 놓여 이를 쉬이 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사소한 오해가 있더라도, 불편한 관계가 되더라도 술 한잔 같이 얼큰하게 취하고 나면 다친 마음이 너였는지 나였는지도 모르고 같이 어깨를 두르던 대학 땐 사람의 관계가 그렇게 골몰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직장이란 곳은 소수의 인간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서로의 소란을 공유해야 하는 사이 아니던가. 그 좁은 곳에서도 드라마 '미생'과 같은 시나리오가 매일 만들어졌고, 이 안전하고픈 인간이 모든 장치를 안전한 상황으로 되돌려놓기 위해서는 마음을 다잡는 일이 무수히 반복되었야 했다. 고요히 떠있다가 임계점에 달했다 싶은 시점. 그것은 한 번씩 떠날 이유가 되었다.


어느 해인가 겨울이었다. ‘남자’와 ‘그녀’가 부석사로 떠나고 있다. ‘문득 뒤돌아보면 능선 뒤의 능선 또 능선 뒤의 능선이 펼쳐져 그 의젓한 아름다움을 보고 오면 한 계절은 사람들 속에서 시달릴 힘이 생긴다’고 누군가 일러 주었다. 그것만으로도 ‘남자’와 ‘그녀’에게는 여행의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신경숙 <부석사>


나는 신경숙 작가를 애정한다. 그녀의 글이 너무 좋다. 책도, 영화도, 드라마도 다양한 것보다는 내 마음에 드는 것을 여러 번 읽거나 보는 것이 좋은 나는 그녀의 글을 반복하여 읽었다. 차분하게 어루만지는 글이 언제나 좋았다. 그리고 언젠가 '부석사'의 저 글을 보면서 한 번은 그곳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느슨한 니트의 짜임과 저무는 가을 모습이 어울리던 그 해. 영주를 향했다.

첫날 도착하여 마주한 곳은 영주 무섬마을의 외나무다리였다. 이곳은 과거 지리적으로 고립된 시골마을이라 좁은 외나무다리로 소통하였다 한다.


우리 아이들이 단답형 인간으로 퇴화하기 전 휴대폰이 아니더라도 즐길 것이 더없이 많던 시절이라 저 다리를 건너온 아이들은 자연스레 모래를 만지며 재미를 찾았다. 잠에서 갓 깬 딸아이를 업고 외나무다리를 건너던 신랑도 저때는 체내 축적된 알코올이 그리 많지 않았던 시기라 비틀거리면서도 곧잘 걸었다.


아이들에게 옛 정서를 알려주겠다며 한옥마을에서 숙박을 했었는데 불편함이 컸던 쪽은 오히려 우리였다.

무엇보다 화장실과 세면대가 외부에 있어 그 불편함이 더했는데 간단 양치만 하던 아이들에 비해 씻을 면적도 많고, 배뇨작용도 활발하던 성인들이 오히려 더 옛것의 수고스러움을 체험했다고나 할까. 아무렇지 않게 적응하던 아이들 옆에 불편한 얼굴로 이불을 턱까지 눌러 덮고 있던 간사한 성인들은 한옥 체험은 이것으로 충분하다며 섣부른 종결을 고했다.


이곳은 사과가 유명하다고 해서 낮에 한 박스 사두었다. 입은 옷으로 빡빡 닦아서 껍질채 베어 먹었다. 까탈스러운 아이들도 이 사과는 그렇게 먹어야 한다 했더니 곧잘 먹었다. 바닥은 두꺼운 요를 깔아도 데일 듯 뜨끈뜨끈하고, 얼굴은 찬 기운에 콧날이 시큰하던 그 오묘한 온도 속에서 문을 여닫을 때마다 일렁이는 바람을 마주하고 베어 먹던 사과가 어찌나 단지. 각종 온도의 극한을 체험하는 현장에 주어진 달콤한 은총 같았다고나 할까. 그날 이후 돌아와 먹는 사과에서는 도무지 그 맛이 나지 않았다.


다음날은 부석사에 갔다. 부석사의 초입에는 다양한 먹거리와 볼거리가 가득 놓여있었다. 나는 정작 사찰보다는 목적지에 당도하기까지 펼쳐지는 이런 광경에 더 동요하는 사람이다. 목적지가 머지않았다는 사실은 이미 감탄할 준비가 된 자를 재촉하게 했는데 이를 한시라도 늦추기 위해선 산만하게 시선을 쏟을 곳이 필요했던 것이다.


아이의 에 마치 손바닥 같이 들러붙은 단풍잎 하나가 아이의 등을 밀며 걸음을 돕는다. 많은 것들의 부축을 받아 오른 그곳에서 나는 그 펼쳐진 능선 뒤의 능선, 그 의젓한 아름다움을 목도했다. 목조건물이 주는 편안한 기운과 길어진 그림자가 드리워진 오후의 풍경에서 나는 남은 계절 지내어낼 힘을 얻었다.


최대한 낯설어 보자며 마음먹고 도착한 곳에서 익숙한 풍경을 먼저 찾게 되는 마음이 있다. 그리고 한없이 낯선 환경에 놓였다가 벗어나면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이 다시금 새롭게 느껴진다.


그들이 고요하게 있고자 하는 나에게 새롭거나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내밀어도, 늘 안주하는 삶이 익숙했던 나에게 낯선 접근을 해와도 나는 낯선 곳에서 품은 마음이 힘이 되어 다시금 편안한 마음이 되었다.


안전 지향형 인간이 이를 유지하기 위해 선택하는 가끔의 낯선 방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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