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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방여자 Jan 16. 2023

국수 한 그릇

# 마음이 허한 날


나는 라면을 좋아했다. 앞집 친구네 엄마는 아이들이 배고플 때 먹을 수 있게 라면을 박스째 사주셨는데 나는 그게 너무 부러웠다. 부릴 수 있는 욕심이라곤 식욕밖에 없던 때라 나도 먹고 싶을 때 언제라도 라면을 먹고 싶었다. 그래서 어릴 때 나의 꿈은 라면공장 사장의 부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때 그 누구도 라면 정도는 공장째 살 수 있는 사장의 사모님이 되는 것이, 아님 차라리 내가 그 사장이 되는 것이 더 발전적이라 말해주는 이가 없어 내가 라면을 놓고 꿈꿀 수 있는 최대의 꿈은 라면공장 사장의 부인밖에 없었다. 남들이 동화 속 왕자님을 꿈꿀 때 나는 라면공장 사장을 만나 라면을 실컷 먹을 수 있는 날을 꿈꿨다.


어쩌다 주말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주셨으나 라면보다 국수면이 더 많아 서럽던 날이 있었다. 국수의 쭉 뻗은 면은 라면의 쫄깃하고 구불구불한 면발의 탄력을 상쇄시켰다. 수세에 몰린 라면은 금세 국물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라면국물에 빠진 국수면을 먹은 듯한 억울한 느낌에 울상이 되곤 했다. 먹고 나면 포만감에 뿌듯함까지 느껴지기도 하던 라면 그릇과는 확연히 달랐다. 나는 온전한 라면이 먹고 싶었다. 적절한 온도에 익어 풀리지 않는 굽슬굽슬한 면발이, 한국인의 맛, 수프국물이 적당히 배어 먹을 때마다 그래 맛이야가 절로 나오는 라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국수 자체를 싫어했던 것은 아니다. 단지 허여멀건한 그것이 세련된 웨이브를 뽐내는 라면 속에 섞여서도 존재감을 잃지 않던 능청스러움이 그저 싫었던 것이다.


엄마는 라면보다는 각종 나물이 얹힌 국수가 더 건강하다고 생각되었는지 종종 국수를 삶아주셨다. 짜장라면에 채끝살이라도 얹거나 구운 햄 옆에 시금치라도 놓아 인스턴트의 죄책감을 덜어내는 것과 비슷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엄마의 국수는 아주 기본적이고 보통의 것이었다.


국수는 면을 적당히 끓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너무 안 익어 목 넘김이 부드럽지 않거나 너무 익어 면이 힘을 잃고 흐물 대면 안 된다. 물이 끓을 때마다 포르르 솟아오르는 하얀 포말을 잠재워가며 끓여야 한다. 마치 한낮의 더위에 등목을 하듯 하이얀 면의 등을 향해 고루 찬물을 끼얹어주는데 저 속에서 시원하다고 지르는 비명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찬물 한 컵에 언제 그랬냐는 듯 소란은 가라앉고 금세 냉정을 찾고 만다. 면발이 냉정과 열정사이를 오가며 심란한 소요를 일으키고 있는 사이 그 감정에 동요되어 면발의 탄력과 윤기를 놓치면 안 된다. 탱글탱글 투명한 윤기를 발하는 시점. 그때가 꺼낼 시간인 것이다.


멸치로 깔끔하게 육수를 내고, 집간장으로 간을 한다. 면 위에 애호박, 부추, 숙주나물을 고명으로 얹고 흰색과 노란색의 달걀지단과 같은 크기로 자른 김을 얹는다. 그 위에 잘게 간 깨를 솔솔 뿌리면 한 끼 완성이다. 그리고 엄마는 양념장과 볶은 김치를 따로 담아 각자 취향에 맞게 먹도록 했다.


심심하고 단조로운 맛이지만 이 맛은 자극적인 음식에 지친 어느 날에 더없이 좋다. 후루룩 면을 급하게 삼킬 때마다 고명으로 얹힌 각종 나물이 템포를 늦춰준다. 내가 그저 생각 없이 먹는 일에 집중할 때에도 그들은 장단을 맞추느라 호흡을 쉬지 않는다. 나는 그저 밋밋하고 맹숭맹숭한 음식물을 삼키는 것이 아니라 음식이 빚어낸 조화로운 기운을 함께 삼키는 것이다. 그래서 먹고 나면 한결 너그러워진 내가 남는다.


신랑도 국수를 좋아해서 입소문 난 국숫집을 찾아다닌 적이 많았다. 허름한 외관에 단출한 메뉴. 찌그러진 양은 양푼에 김 나는 국수가 가득 담겨 나오면 속으로 외친다. 이거다. 테이블엔 세월의 흔적이 가득하고, 손으로 지우고 다시 쓴 메뉴판이 정겹다. 찌그덩 거리며 선풍기가 힘없이 돌고 바람에 날리는 달력은 세월을 잊고 아직 지난달에 머물러 있다. 제대로 된 국수는 별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그저 진한 육수에 따스한 국수면 그만이다. 조금 심심할 때 열무김치 한두어 젓가락 곁들이면 그 어울림이 제대로다.


결국 이렇게 찾다가 성공했다 싶은 맛은 결국 엄마의 국수, 집에서 흔히 먹던 국수와 가장 비슷한 맛일 때이다. 내가 알던 맛. 내 입에 익은 맛.


나는 이제 국수는 어쩌다 한 번씩. 마음이 허한 날은 따뜻한 국수를, 더워서 기운 빠지는 날은 열무 몇 가닥 얹은 시원한 국수를 찾곤 한다. 하지만 신혼 초부터 그렇게 국수를 찾던 신랑은 지금도 주말에 꼭 한 번은 단골 국숫집에 간다. 나도, 아이들도 동행을 거부하자 이제는 혼자 그곳에 간다. 주인아주머니가 처자식 없는 홀아비로 오해한다고, 혹시 출석부에 도장이라도 찍냐고 이제 그만 가래도 매주 가서 그 맛을 느끼고 온다.


가만 생각해 보니 신랑은 국숫집 여사장의 신랑이 되고픈 꿈이 있었는데 내가 그녀의 자리를 가로챈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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