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식은 희소식이 아니었다 (3)
'아이고.. 오토바이 이제 안 탄다며!
어쩌다 그런 거야 어디를 얼마나 다쳤는데?'
아이가 보낸 사진에는 부은 발사진이 담겨있었고
손가락도 골절을 입었다고 했다.
혼자 거동이 어려울 정도로 다쳤다는 말에 나는 걱정이 됐다.
다행히 그 시기에 대기발령 중이라서
시간강사를 나가는 것 이외에는 시간이 여유로운 편이었다.
한방병원에 갔을 때 아이는 혼자 병실에 누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곁을 지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3시간 동안 아이와 이야기를 나눴다.
어떻게 사고가 났는지부터, 이렇게 다친 것이 천만다행이다.
이런저런 걱정 어린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아이는 알겠다고 하면서도 이런 말을 하였다.
'제 인생은 마이너스예요. 아직 어른이 되기 전부터 가망이 없어요.'
이제 고작 19살 고등학생이 내뱉기에 어울리지 않는 너무나도 어두운 말이었다.
나는 가식적인 희망을 주는 메시지가 아니라
진심을 다해 내가 생각하는 대로 말했다.
'아니야. 지금부터 충분히 바꿀 수 있어.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렸어.'
나는 거기서 현실적으로 그 아이에게 가능한 전문대 진학방법부터
졸업 후 진로 그리고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까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었다.
사실 학교를 그만두기 전에도 아이에게 한번 알려주었던 부분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오토바이를 타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내야 했다.
"너 다시 오토바이 탈 거야?"
'모르겠어요. 배달하려면 타야 될 것 같은데'
애매한 대답에 나는 걱정 가득한 마음을 담아 말했다.
"지금은 이만큼 다쳤지만 계속 타면 진짜 큰일 날 수도 있어.
앞으로는 절대 타지마. 조금만 기다렸다가 차라리 운전면허를 따자."
애타는 선생님의 마음을 알았는지
아이는 마지못해 오토바이를 타지 않겠다는 다짐을 보여주었다.
병문안 이후 열흘뒤, "지금은 몸상태 좀 어때 많이 나아졌어? "
그리고 3달 뒤 학교에 경력증명서를 발급받으러 가면서 생각나서
"잘 살고 있어? 오랜만에 학교 행정실 들렸다가 생각나서 연락한다."
아이는 또다시 나의 연락에 답이 없었다.
퇴원하고 다른 학생 한 명과 밥을 사주기로 약속을 했었는데, 약속을 잊은 것인지.
아이에게 답이 없어 이번에도 무소식이 희소식이겠거니,
안 좋은 생각을 하면 설마 하는 일이 있을까 봐.
'학교생활 잘하고 졸업 잘하겠지'라고 생각하며
나는 나대로 처음 발령받은 학교에 적응하기 바빴다.
그리고 2025년 5월
부장님께서 말씀하셨다. "OO이 기억하시죠? 학교 잘 다니고 있어요. OO이 만나면 샘 얘기해요^^"
- 무소식은 희소식이 아니었다 (1) 첫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