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산업'에 관하여
‘종합무역상사의 일’이라고 하면 수출 서류를 처리하고, 수출 대금을 회수하여 공급업체와 운송사에 운임을 지불하는 것이 그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그것이 제일 크고 중요한 일이긴 하다. 하지만 생산이 없는 ‘종합무역상사의 업’은 현시대에는 많이 사라지고 있다. 흔히 말하는 사양산업(斜陽産業)이다. ‘수출 제일, 수출 보국’ 등을 기치로 내건 산업화 시기에는 생산과 수출이 분리되어 수출만 도맡아 하던 종합무역상사가 나름의 역할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대기업들도 모두 종합무역상사 계열사를 가지고 있었다. 상사맨들은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한국에서 생산되는 것들을 영업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인터넷은 고사하고 전화도 잘 되지 않던 시기에 해외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영업하고, 계약을 따내고, 수출을 진행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점점 여행이 자유로워지고 물자와 인력의 이동이 원활해지면서 종합무역상 사는 사양산업이 되었다.
하지만 종합무역상사도 시대가 바뀌면서 이미 구축된 네트워크, 사업 기획력, 자금 동원 능력을 활용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그 새로운 사업 분야가 ‘자식’ 사업, 즉 ‘자원’과 ‘식량’ 사업이다. 최근 ‘글로벌 공급망 위기’라는 단어를 뉴스에서 자주 볼 수 있는데, 글로벌 공급망의 선두에 있는 산업이 바로 자원과 식량 산업이다.
자원과 식량 사업은 무엇인가를 제조하고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투입적 산업이다. 예를 들어 옥수수라는 곡식을 생산하면, 그 옥수수는 동물 사료로 사용된다. 자원 산업도 마찬가지인데, 가장 대표적인 예로 석유를 시추하여 정유한 후 항공유, 휘발유 등으로 나누어 다른 산업에 용도에 맞게 사용된다.
이처럼 ‘자식’ 사업은 다른 산업에 원재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가격 등락이 빈번하게 발생하며, 이에 따른 리스크가 존재한다. 종합무역상 사는 이러한 점에서 네트워크와 자금력을 사용해 리스크를 헤지 하며 사업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농산물 무역이라는 분야는 이러한 점에서 종합무역상사와 찰떡궁합이다. 농산물 무역에는 가격 등락, 품질 문제, 네트워크 등 여러 복잡한 구조가 얽혀 있고, 이를 섬세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점에서 종합무역상 사는 새로운 활로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많은 대기업의 종합무역상사 계열사들이 식량 사업에 도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의 흑토 곡창지대에서 밀과 보리를 재배하여 제3 국으로 수출하거나, 인도네시아에서 야자수를 재배하여 팜유를 생산해 한국으로 수입하는 등의 사업들이 이제 종합무역상사의 미래 먹거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