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시골 읍내.
낮 동안 달궈진 아스팔트 위로 남은 열기가 피어오르며,
공기 속에는 갓 마른 풀 냄새와 먼지 섞인 열기가 섞여 있었다. 거리의 가로수 잎들은 바람에 천천히 흔들리며 낮 동안 달궈진 더위를 흩뿌렸다.
전날 밤, 운전기사는 작은 작업 도구를 조심스레 꺼내어 아이용 임시 수동벨트를 버스 좌석에 설치했다. 낡은 좌석에 벨트를 연결하고, 조이고 풀어보며 여러 차례 점검했다.
“이제 조금 더 안전하게 탈 수 있겠지…”
그는 조용히 중얼거리며 아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이가 좋아할 모습을 상상하며 미소를 지었다. 손끝에는 섬세한 배려와 사랑이 묻어 있었다. 어린이집이 갑작스럽게 쉬는 날, 아이에게는 하루 동안 아빠와 버스를 함께 타야 하는 특별한 날이었다.
오늘, 아이는 운전기사 아빠 바로 뒤쪽 자리에 앉아 있다.
작은 손가락이 의자 틈새를 꼼지락거리고,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는 모습은 평화로웠다. 아빠는 그런 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면서도, 마음 한켠이 살짝 조였다.
어느새 해가 붉게 물들며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아이의 눈꺼풀은 낮 내내 긴장과 더위탓에 무겁게 내려앉았고, 아이는 어느새 머리를 의자에 기대며 졸고 있었다.
어둑해질 무렵,
정류장 한쪽에서 한 할머니 한분이 버스에 천천히 걸어 올라왔다. 흰 블라우스와 연보라빛 스커트, 은은한 꽃무늬 스카프를 곱게 두른 단정한 차림새였다. 은빛 머리카락이 작은 머리핀 사이로 반짝였고, 손에 쥔 가방 안에는 알록달록한 꽃·별 모양 수세미 꾸러미가 들어 있었다.
운전기사는 그녀가 계단을 오르는 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과거를 떠올렸다. 처음에는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던 할머니였다. 혼자 버스를 타고, 창밖만 조용히 바라보던 그녀.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얌전하게 자리 잡고 떠들지 않는 모습이 자연스레 익숙해졌다.
그는 할머니 딸의 비상연락망도 확보했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했다. 이제는 종종 할머니를 태우는 일이 그의 일상 일부가 되었다.
" 서울가지요?”
할머니가 눈을 반짝이며 다정하게 물었다.
운전기사는 익숙한 듯,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네, 어르신. 안전하게 모실게요.”
곧 운전기사는 휴대전화를 꺼내 할머니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심하세요. 오늘도 어머니 잘 모시고 있습니다. 종착지에 맞춰 나와 주시면 됩니다.”
휴대폰 너머 할머니 딸은 잠시 웃으며 안도의 숨을 내쉬며 연신 감사의 말을 전달했다.
할머니는 천천히 통로를 걸어와, 아이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아이의 머리를 살짝 받쳐주며 속삭였다.
“이 늦은 시간까지 혼자 고단하지 않니?”
아이의 눈이 살짝 떠지자, 할머니는 주머니에서 조그만 사탕을 꺼내 손에 쥐어주었다.
“이건 바람과 공기, 별이 널 지켜줄 거란 약속이란다.”
아이는 신나게 사탕을 받고선, 마치 요술 가방을 보듯 할머니 가방에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보냈다. 가방에는 사탕과 알록달록한 색의 꽃 모양의 수세미가 가득했다. 아이는 까르르 웃으며 말했다.
" 할머니, 가방 안에 꽃이 가득해요!”
“그래, 꽃이 많으면 마음이 외롭지 않거든.”
가방 안의 꽃과 별 모양 수세미들은 마치 작은 별빛처럼 반짝였고, 아이는 그 안에서 한껏 행복해했다.
할머니는 치매 초기 증상으로, 아이를 자신의 잃은 아들처럼 다정하게 바라보며 손끝으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는 그 다정함을 그대로 받아들였다.아이의 손이 수세미 하나를 조심스레 만지자, 할머니는 눈을 살짝 감고 미소 지었다.
“네 마음에도 꽃이 피었구나. 늘 기억하렴.”
아이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고, 작은 웃음이 버스 안 공기 속으로 퍼졌다.
버스가 시골길을 달리자, 하늘은 서서히 어두워졌다.
붉은 노을이 희미해지고, 별 하나가 조심스럽게 떠올랐다. 곧 두 개, 세 개, 마침내 은빛 가루처럼 흩뿌려진 은하수가 밤하늘을 가르며 길을 만들었다. 아이와 할머니는 창밖을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은하수 길을 따라 그렸다.
"저 길 따라가면 서울이란다. 별들이 길을 비춰주고 있어.”
아이의 눈이 반짝였다.
“정말요?”
“응, 마음이 가면 다 닿는 거란다.”
운전기사는 룸미러 너머로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 다정함과 믿음이, 한여름 시골길의 공기보다 더 따스하게 느껴졌다.
버스가 종착지에 다다르자,
마중 나온 딸이 밝게 웃으며 할머니를 맞았다.
“엄마, 오늘도 먼 길 다녀오셨어요.”
“응, 서울 다녀왔지.” 할머니는 딸을 보며 미소 지었다.
딸은 할머니의 등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면서, 운전기사에게 나지막한 소리로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기사님, 다음 주면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셔야 해요.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녀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작은 꾸러미를 운전기사에게 내밀었다.
"어머니께서 직접 뜨신 거예요. 꽃과 별 모양 수세미… 기사님께 드리라 하셨어요.”
운전기사는 눈을 떨구며 딸이 주는 선물을 천천히 받았다.
손끝에 닿는 수세미의 질감에서 오랜 시간 담긴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아이도 할머니를 바라보며 작은 손을 흔들었다.
“할머니, 또 만나면 좋겠어요.”
할머니는 아이의 손을 살며시 감싸며, 낮게 미소 지었다.
“밤하늘을 보면, 별들이 너를 안아줄 거야. 그리고 내 가방 속 꽃처럼, 마음에도 작은 빛과 향기가 늘 함께할 거란다. 그러니 언제나 하늘을 기억하렴.”
그 밤, 버스 안은 은하수 아래의 작은 세상처럼 따뜻하고 고요했다.
별빛과 수세미 꾸러미, 창가를 스치는 숨결은 조용히 남아, 어느새 버스 안을 은은하게 감싸고 있었다.
짧은 하루의 흔적은 천천히 사라지지만, 은하수처럼 길게 이어진 빛과 향기는 창밖과 마음 속을 가만히 지나갔다.
아이와 할머니, 운전기사의 자리마다 작은 흔적이 남아, 길 위에서 오래도록 반짝이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