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 그 단어를 입에 올리는 순간마다 마음 한 켠이 묵직해지고 아련해진다.
그러나 한켠으로는 마음이 쓰라리다.
이 단어의 겉모습은 밝고 단정하지만, 속은 때론 공허하다.
말하자면, 그 공(公)이 허공처럼 비어 있는 경우가 있다. 이익(益)은 거기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어느새 공익이라는 이름을 차지한다.
누군가는 ‘공익을 위해 일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의 끝에는 늘 조건이 따라붙는다.
정치 입문, 성과, 후원, 명예…
모두 공익의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그 속의 ‘선함’은 점점 작아지고 있다.
허무란 이런 것이다.
노력하고, 헌신하고, 마음을 쏟아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과 왜곡되는 진정성.
누군가를 돕는다는 행위가 다른 누군가의 계산 속에서 평가된다. 그 평가가 절대적이지 않음을 잘 알지만 가끔 평가에 흔들린다.
이름 없는 손길, 가려진 얼굴, 기록되지 않은 사건.
그것이 실재하는 공익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기록된 수치와 결과만을 기억한다.
공익을 연구하는 것은 마치 바람의 방향을 쫓는 일과 같다.
보이지 않는 힘이 어디로 흐르는지,
누가 그 바람을 가르고 있는지,
명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바람은 항상 존재한다.
바람을 잡으려 하지 않고, 그 흐름을 느끼는 것.
그것이 공익을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나는 가끔, 공익이라는 말 자체를 다시 쓴다.
공(空)과 이익(益)을 결합하면, 空益.
공허한 이익.
내 마음속에서 그 의미는 경험상 너무 또렷하다
공익은 늘 허상과 마주한다.
사람들은 선의를 말하고, 정의를 말하지만,
실제 행동의 결과는 항상 불완전하다.
법은 사람을 담지 못하고, 제도는 마음을 담지 못한다.
결과는 늘 불균형하고, 선의는 쉽게 거래된다.
그러나 공익은 멈추지 않는다.
그 자체가 완전하지 않아도,
불완전함을 견디고 나아가는 것.
누군가의 작은 안식, 고통 속에서의 숨통,
그 짧은 순간조차 공익의 실재를 증명한다.
이것이 허무의 교훈이다.
완벽한 정의는 없고, 완전한 선도 없다.
그러나 과정 속에서 쌓이는 흔적은 존재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손길, 기록되지 않은 사건,
그것들이 허무 속에서도 공익을 가능하게 한다.
공익이란, 결국 사람을 향한 끝없는 시도다.
비워진 공(空)에 의미를 담으려는 노력,
그 안에서 이익이 아닌 진심을 찾아내는 일.
그것이 바로 空益이 아닌, 진정한 공익이다.
공허한 이익을 마주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공익의 길을 묵묵히 따른다.
왜냐하면, 세상의 불균형과 허무 속에서도,
누군가를 위한 작은 빛이 존재함을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