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은 언제나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들어온다.
병실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희미한 햇살, 혹은 회의실 한 켠에서 스치듯 들리는 동료의 목소리 속에서도, 삶은 묵묵히 흘러간다.
루푸스를 처음 진단받던 날, 세상은 한동안 멀게 느껴졌다. 머리카락은 3분의 1이나 빠져 가발을 쓰게 되었고, 신장은 위협 신호를 보내며 몸속 깊은 곳에서 경고를 띄웠다. 온몸의 뼈와 관절은 사소한 움직임조차 허락하지 않는 듯 고통을 내게 선사했고, 잠은 깊게 들 수 없었으며, 식사는 늘 무겁게 느껴졌다. 피로가 하루를 지배했고, 반복되는 검진과 약물, 주사로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쳤다.
그럼에도 세상은 멈추지 않았다. 메일함에는 사건 기록이 쌓였고, 사회는 여전히 기술탈취와 불공정 거래로 뒤틀려 있었다. 눈앞의 현실은 냉혹했고, 여전히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아픔 속에서조차, 나는 이 길을 놓을 수 없었다. 세상에는 여전히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었고, 공익이라는 말의 허상 뒤에는 실제 절박함이 존재했다.
재단에 닿는 과정은 우연도 운명도 아니었다. 처음 발을 디딘 순간, 나는 알았다. 어려운 길이 될 거라는 걸...사실 살기 위해, 편하게 일하면서 보람을 찾아보고자 왔는데, 막 설립된 재단은 시스템이 없었고, 절차는 만들어져야 했으며, 문서 형식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선례도 없었다.
창립 멤버로서 우리는 모든 것을 "0"에서 시작했다. 회의실에는 빈 테이블만 있었고, 서류는 단 한 장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가 가진 건 단지 진정성 뿐이었으니까...
처음 맡은 사건은 대기업과의 중소기업 간의 고난이도 기술탈취 사건이었다. 증거인 계약서는 불완전했고, 자료는 엉성했으며, 정밀한 기술 침해 분석 자료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속에는 절박한 삶이 담겨 있었다. 누군가의 기술이 빼앗겼고, 아이디어가 무너졌으며, 기업의 생존이 위태로워진... 우리는 사건을 기록하고, 분석하고, 스크린을 설계했다. 한 장 한 장의 서류, 한 줄 한 줄의 메모가 의미를 갖도록 만들었다.
밤 낮을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 했다. 그 안에는 하나하나의 기록, 삶과 선택, 책임이 담겨 있었다. 계약서와 보고서가 어긋나는 순간, 단순한 실수가 아닌 기업 현실의 복잡함을 읽어야 했고, 기술 사용 내역과 실제 생산물이 불일치할 때, 우리는 단순히 수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역량과 진정성을 가늠해야 했다. 경영자의 의도와 태도, 기업이 보여주는 작은 행동까지 세심히 관찰하며 진정성을 평가했다. 숫자와 도표가 아니라 삶과 선택을 보는 눈, 평가라기보다 관찰, 판단보다는 이해였다.
루푸스 투병은 업무와 교차되며 계속되었다. 신장은 때때로 극심한 통증을 보내며 전신 상태를 흔들었고, 머리카락이 빠진 얼굴은 남의 시선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관절과 뼈의 통증은 걸음걸이를 조심하게 만들었으며, 하루에도 여러 차례 병원을 오가야 했다. 주사와 약물, 검사는 일상을 가로막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재단 업무를 중단할 수 없는 또 다른 현실이 있었다.
재단 초기의 기억은 선명하다. 우리는 서로의 진정성을 믿고, 시스템이 없는 상태에서 절차를 하나씩 만들어 나갔다. 회의에서 의견이 엇갈릴 때도 있었고, 논쟁 속에서도 목적은 분명했다. 피해기업의 삶을 지키는 것, 그 단순한 진실이 우리를 붙잡았다. 누군가는 밤늦게까지 서류를 검토했고, 누군가는 전화와 메일로 기업을 독려했다. 작은 성과와 실패가 쌓이면서, 점차 구조가 생기기 시작했다.
공익이라는 단어는 허공처럼 비어 있을 때가 많았다. 空益, 공허한 이익이라는 단어가 마음속에서 반복되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작은 성공과 실패, 기업의 감사와 한숨, 동료와의 협력과 갈등 속에서 공익의 실재를 확인했다.
투병과 업무의 반복 속에서, 공익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임을 깨달았다. 완전한 정의는 없고, 완전한 선도 없다. 그러나 하루하루 기록하고 검토하며 판단하는 행위가 작은 빛으로 세상에 스며든다. 아프고 지치고, 때로는 실패와 좌절을 경험했지만, 기업이 다시 일어서고 누군가의 삶이 조금이라도 지탱되는 순간, 공익의 의미는 분명해졌다.
재단 초기 시스템 설계 경험은 단순한 업무를 넘어, 공익이라는 개념을 몸으로 이해하게 했다. 법적 규정과 제도적 틀 속에서, 누구도 쉽게 손대지 못하는 영역에 작은 질서를 만드는 일. 그 질서 속에서 피해자를 위한 안전망이 만들어졌다. 동료와의 협력 속에서, 논쟁과 의견 차이를 조율하며, 우리는 공익을 현실로 만드는 작은 방식을 배웠다.
공익은 완성되지 않았다. 항상 허공 속을 떠다니는 듯하지만, 그 허공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발견할 수 있다. 작은 기업이 다시 일어서고, 누군가의 삶이 조금이라도 지탱되는 순간, 그 빛은 현실이 된다. 몸은 아프고 마음은 지치고 때로는 실패를 경험했지만, 우리는 그 빛을 따라 걸었다.
루푸스는 내 몸을 흔들었지만, 오히려 공익을 향한 시야를 선명하게 만들었다. 고통 속에서 더 날카롭게 현실을 판단할 수 있었고, 동시에 작은 성과의 의미를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창립 멤버로서 시스템을 구축하고, 피해기업을 지원하며, 공익을 현실로 만드는 과정 속에서, 나는 허무 속에서도 지속되는 희망을 발견했다.
공익이란 결국, 허무 속에서도 달리는 것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눈에 보이지 않아도, 우리가 계속해서 길을 만들고, 기록하고, 판단하며, 작은 빛을 따라 움직이는 한, 공익은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