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분빠진 인간

오아시스를 찾을 것인가

by 방울리아

최근 나는 수분이 빠진 상태이다.

기술 탈취 분쟁 해결과정에서 한참을 치열하게 화내고 충분히 분노한 후의 일이다.


공익재단에서 일하면서 기술 탈취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들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늘 고통의 긴 터널을 지나는 느낌이다.


고통의 긴 터널의 단계는 크게 5단계다.




1. 터널 진입 단계: 대기업이 선의의 피해자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피해기업의 정당성"을 검증하는 단계


2. 터널 초입단계: "분쟁 대비 전략 구상" 및 준비 단계


3. 터널 중간 단계: 소송이나 조정 등 실제 서면을 작성하고 법적 절차를 취하는 "분쟁 심화"


4. 터널 끝 빛이 보이는 단계: "제도 개선" 상 협조 단계


5. 터널 탈출 단계: 분쟁 마무리



위 1단계 터널 진입 단계부터 고초가 시작된다.


간혹 내가 몸 담고 있는 공익 재단에 대해 대기업은 "악"이고 중소기업은 "선"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냐며 오해를 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오해는 굉장히 억울하다.


재단에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 중 피해자 정당성 검증을 거쳐 재단의 정식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업은 많지 않다.


정당한 피해자인지 여부를 세밀하게, 꼼꼼하게, 그리고 엄격하게 보기 때문이다.10개의 기업이 도움을 요청한다고 가정했을 때, 1~2개의 기업 정도가 재단의 정식지원을 받을 수 있.


소송의 승패가 기준이 아닌 피해기업의 진정성, 주장의 정당성이 있어야 하고, 가해기업으로 지목되는 대기업이 오히려 이슈의 피해자가 되면 안 된다는 것..그게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윤리 경영에 충실한 대기업이 잘 되는 것, 이 역시 국가경제의 중요한 근간이니 말이다.


이 과정에서 지원을 받지 못하는 기업들의 엄청난 컴플레인에 시달리기도 하고, 악의를 가진 소위 꾼들도 피해기업의 가면을 쓰고 찾아오기에 이를 정리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진정성이 있는 피해기업을 가리고, 그들과 함께 먼지 가득한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일은 늘 어렵다.


진정성이 없는 피해자들과의 관계 정리, 수십만 페이지에 해당하는 분쟁 기록들, 고난이도 기술 분석 자료, 소송 서면 준비에 투입되는 엄청난 노력과 시간들, 상대기업과의 계속된 긴장감, 관계기관의 설득, 제도개선을 위한 연구...터널 안은 여러 장애물들과 위험인자들이 가득하다.


도움을 받은 피해기업이 승소를 하거나 분쟁 해결과정에서 금전적 보상을 받더라도 재단은 일체의 후원금을 받지 않는 구조이다. 이러한 재단의 진정성에 매료되어 지금까지 몸과 영혼을 갈아 사건 해결에 매진했다.


그러나 이런 사랑스러운 조직에도 내부 정치가 존재한다는 걸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공익 재단에서 정치가 웬 말인가. 내부 구성원이 똘똘 뭉쳐도 모자란 이 상황에서 누군가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사내 정치를 하고 이러한 극소수의 이에 의해 재단은 분명 흔들리고 있으니 말이다.


매년 새로운 분쟁 사건이 접수 될 때마다, 그리고 분쟁이 해결되는 그 때까지 고통의 긴 터널을 나지만, 수분 빠진 껍데기만 존재하는 기분이다.


이렇게 긴 고통의 터널을 통과하면 거기는 아름다운 꽃과 물줄기가 흐르는 젖과 꿀이 있는 곳일까?


고통의 긴 터널 끝 희미란 한줄기 빛을 보며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터널에서 출해 보니 기는 뜨거운 태양이 있는 사막인 경우가 많다. 주변에 오아시스는 보이지 않는다.


이제 선택해야 한다. 외로움과 허무함에 빠진 상태로 사막에 주저 앉을 것일까. 오아시스를 찾아 떠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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