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앞의 밤

당뇨와 함께 가는 삶

by 글쓰는곰돌이


하루에도 몇 번씩, 나는 냉장고 문을 연다.

그 안에는 늘 비슷한 것들이 있다.

남은 밥 한 공기, 어제 먹다 남은 단팥빵, 그리고 습관처럼 얼려둔 아이스크림 두 개.

나는 그 앞에 서서 한참을 망설인다.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가, 다시 제자리에 둔다.

그 짧은 사이에 마음속에서는 전쟁이 벌어진다.


감정이 흔들릴 때면 나는 먹는다.

불안할 때, 외로울 때, 이유도 모른 채 가라앉을 때.

씹는 일은 이상하게 마음을 가라앉힌다.

입안에서 터지는 소리와 냄새가 잠시 동안 생각을 잠재운다.

그 몇 초의 고요를 얻기 위해 나는 같은 일을 수없이 반복한다.


의사는 내게 담담히 말했다.

“당뇨네요. 이제 조심하셔야 합니다.”

나는 웃었다.

습관처럼, 변명처럼.

하지만 그 말이 내 안에 작은 파문을 남겼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나를 이기지 못했을 뿐이다.


버스 창에 비친 얼굴은 낯설었다.

턱선은 무너졌고, 눈빛에는 습기가 깃들어 있었다.

나는 그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이게 나구나. 감정 하나 다스리지 못한 남자.’

그 생각이 너무 분명해서, 오히려 웃음이 났다.

쓸쓸하고, 그러나 어쩐지 따뜻한 웃음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 어리석을까.

아마 이 어리석음은 오래전부터 내 안에 살고 있었을 것이다.

서른 즈음엔 게임이었고, 마흔에는 일이었으며,

이제는 음식이다.

위로라는 이름으로 나를 파괴해 온 세월.

나는 늘 그런 방식으로 버텼다.


밤이 깊을수록 냉장고의 불빛은 더 선명해진다.

손끝이 그 빛에 닿는 순간, 이미 절반쯤은 지고 있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그 말을 하며 빵을 반으로 자른다.

그리고 그 반쪽을 다 먹는다.

조금만으로는 늘 부족했다.


며칠 전, 아내가 버린 쓰레기봉투를 들여다봤다.

그 안에는 내가 숨겨둔 과자 포장지가 들어 있었다.

나는 그걸 신문지로 감쌌다.

부끄러움은 냄새보다 오래 남는다.


그날 밤,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의 남자는 나를 바라보며 말이 없었다.

눈 밑에는 피로가, 입가에는 오래된 후회가 묻어 있었다.

나는 그에게 속삭였다.

“넌 왜 그렇게 스스로를 괴롭히니.”

대답은 없었다.

다만 그 남자가 조금 미소 지은 듯 보였다.

그 미소는 슬펐지만, 이상하게도 따뜻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이게 나의 방식이야. 살아남기 위한.”


나는 그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누군가는 술로, 누군가는 분노로, 나는 음식으로 버텼다.

그것이 나의 생존 방식이었다.

누가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달래는 방법으로 조금씩 무너지고, 또 살아간다.


요즘은 조금 달라졌다.

먹고 싶은 마음이 밀려오면 나는 잠시 멈춘다.

손을 들지도, 내리지도 않은 채 그저 숨을 고른다.

‘정말 배가 고픈가? 아니면 마음이 고픈가?’

그 질문 하나가 나를 붙든다.


대부분의 대답은 마음이다.

배는 멀쩡히 버티고 있다.

문제는 언제나 마음이었다.

그 마음은 손댈 수 없는 깊은 곳에 숨어 있다.

음식은 그 마음을 잠시 덮을 뿐, 결코 메우지 못한다는 걸 이제 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자주 실패한다.

어제도 그랬다.

밤 11시 20분, 불 꺼진 거실.

모니터 불빛만이 식탁 위 설탕가루를 비췄다.

나는 빵을 한 조각 잘라먹었다.

달콤했다.

그리고 곧 쓸쓸했다.

두 감정이 입안에서 부드럽게 뒤섞였다.


나는 그 맛을 어리석음이라 부른다.

그 어리석음은 나를 병들게 하지만, 동시에 내가 아직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

살아 있는 한, 사람은 어리석다.

나는 이제 그 사실을 받아들인다.


냉장고 문을 닫는다.

문틈에 비친 내 얼굴이 흔들린다.

그 흔들림이 마음의 파문처럼 남는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나을까.

나는 모른다.

다만 지금, 이 어리석은 나를 조용히 끌어안는다.

그것만으로도, 오늘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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