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다시 뛰는 아침

당뇨와 함께 가는 삶

by 글쓰는곰돌이
아침, 몸이 먼저 깨는 순간


오늘 아침, 천장이 어둑하게 남아 있는 방 안에서 천천히 눈을 떴다.

잠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태와는 조금 달랐고, 오히려 어떤 얕은 층위의 꿈결에서 밀려 나왔다는 느낌이 더 가까웠다.

몸은 여전히 온기를 머금은 채 이불 위에 놓여 있었으며, 그 온기 속에는 아주 오래된 쉼과 같은 것이 서서히 흩어지고 있었다.

머리맡에 놓인 휴대폰 화면은 아직 어둡고, 알람이 울리기에는 시간이 조금 남아 있었지만, 몸이 먼저 깨어 있음을 말없이 알려주고 있었다.

시계가 시간을 말하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임을 알리는 순간이 있다.

나는 그 순간을 억지로 지나치지 않고, 한동안 그대로 머물렀다.


조금 뒤에야 몸을 일으켰다.

허리와 어깨, 등 전체를 따라 단단히 굳어 있던 무게가 조용히 드러났는데, 그것은 피로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오래된 감각이었고, 무기력이라고 부르기에는 지나치게 침착한 감각이었다.

나는 그 감각을 밀어내거나 해석하려 하지 않고, 그저 지금의 내 몸이 가진 질감으로 받아들였다.

몸은 언제나 시간이 머무는 방식으로 말한다.

그 말투를 이해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창문을 열고, 몸의 현재를 확인하다


창문을 열자 바깥공기가 서서히 들어왔다.

너무 차지도, 지나치게 부드럽지도 않은 온도의 공기였고, 그 공기는 폐 깊은 곳까지 가라앉듯 내려갔다가 천천히 빠져나왔다.

그 움직임 속에서 나는 내가 깨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공기의 냄새와 흐름, 숨의 길이가 모두 오늘이 시작되었다는 작은 신호처럼 느껴졌다.

몸은 이런 순간들을 예민하게 기억한다.

어떤 변화는 거창한 결심에서 시작되지 않고, 그냥 숨을 길게 내쉬는 일에서 시작된다.


운동화를 신기 위해 허리를 숙였을 때, 종아리와 허벅지 뒤쪽 어딘가에서 묵직한 긴장이 조용히 당겨지는 듯했다.

그 감각은 익숙함과 낯섦 사이 어디쯤에 있었고, 나는 그것이 내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부분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신발끈을 조여 매는 동안 손가락은 천천히 움직였고, 그 움직임 안에 오늘의 마음가짐이 자연스럽게 얹혀 있었다.

밖으로 나가는 것은 단순한 외출이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 몸을 되돌리는 일에 가까웠다.




골목의 고요 속에서 시작되는 첫걸음


문을 나서자 골목은 아직 깊은 아침 사이에 머물러 있었다.

사람들의 발소리 대신 바람이 벽을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가 더 또렷했고, 가로등 아래 남아 있는 그림자들은 그 시간이 지닌 고요를 그대로 품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걷다가, 아주 느린 속도로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슬로우 조깅.

걷기와 달리기 사이의 속도.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그 말은 가볍게 들렸고, 그래서 오히려 위로처럼 느껴졌던 말이었다.


처음 몇 분은 걸음과 다름없는 움직임이었다.

발이 땅에 닿는 느낌은 선명했고, 신발 밑창이 받아내는 진동은 부담스럽지 않았다.

호흡은 깊지도 얕지도 않은 적당한 길이를 유지했고, 나는 이 정도라면 무리 없이 매일 이어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느린 움직임 속에서 몸이 점점 깨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몸이 말하기 시작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종아리와 허벅지 안쪽 깊은 곳에서부터 묵직함이 서서히 쌓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갑작스러운 통증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 드러나는 과정이었다.

나는 그 감각을 피로라고 단순하게 명명하지 않았다.

피로라고 하기에는 그 감각 속에 담긴 시간이 너무 많았다.

잠들어 있던 몸을 다시 깨우는 일은 단순한 근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호흡은 여전히 일정했지만, 다리는 서서히 자신이 오랫동안 쉬어왔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사실을 무시하거나 부정하려 해도 의미가 없었다.

몸은 언제나 솔직하게 말한다.

그 말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서두르지 않는 것이다.


나는 속도를 올리지 않았고, 그렇다고 멈추지도 않았다.

다리의 무게가 조금씩 진해지는 것을 느끼며, 그 상태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지금의 나는 더 빠르지도, 더 느리지도 않아도 되었다.

오늘 할 수 있는 만큼만 천천히 나아가는 것이 전부였다.




돌아오는 길, 남아 있는 떨림으로 기억하다


20분쯤 지났을 때, 나는 호흡을 고르며 속도를 아주 조금 낮췄다.

그것은 포기가 아니라 다리가 들려주는 속도를 존중하는 일이었다.

몸이 다시 기억을 되찾는 데에는 그 속도가 필요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발바닥은 단단한 바닥의 감촉을 또렷하게 받아들였고, 종아리에는 아주 미세한 떨림이 남아 있었다.

샤워기의 물이 다리를 따라 흘러내릴 때, 그 떨림은 서서히 열감으로 바뀌어 근육 안쪽으로 스며들었다.

몸이 오늘의 시간을 흡수하고 있었다.

몸은 언제나 감각으로 하루를 기록한다.

오래 남는 것은 숫자가 아니라, 이 미세한 떨림이다.




오늘의 움직임이 남긴 것


아침의 시작은 그렇게 끝났다.

슬로우 조깅은 쉬운 운동이라고 했지만,

쉬운 것은 시작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천천히 한다는 말은 가볍다는 말이 아니었다.

온순하다는 말도 아니었다.

그저 지금의 나를 오늘의 움직임으로 다시 확인한다는 말이었다.


나는 오늘 그 확인을 했다.

그것이면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