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훈의 겨울동화를 읽고

by 글쓰는곰돌이





'겨울동화'를 처음 들었을 때가 떠오른다.

그해 겨울엔 눈이 유난히 늦게 왔다.

기다리다 지쳐 창밖을 거의 포기한 날, 퇴근길 버스 창문에 작은 얼음꽃이 맺혀 있었다.

손가락으로 건드리자 금세 녹아 없어졌는데, 그 순간의 허무함이 묘하게 마음에 남았다.

그 무렵 나는 늘 미래 걱정을 들고 다녔다.

가방 속 책 모서리가 닳듯이, 자꾸 들여다보고 꺼내보고 접어두고 또 꺼내는 습관 같은 것.



그러다 이 노래를 만났다.

"마지막 페이지를 위한 여정이 아니야."

그 문장이 내 어깨를 잡아당겼다.

가볍게.

그런데 이상하게 흔들렸다.



나는 늘 결말을 빨리 알고 싶어 했다.

어릴 때도 그랬다.

동화책을 읽어주던 사람이 잠깐 자리를 비우면, 혼자 책을 빼앗아 마지막 장을 펼쳐보곤 했다.

그때의 나는 '기다림'을 거의 모르는 존재였는데, 지금도 별로 다를 것이 없다.

다만 그때는 이야기가 궁금해서였고, 지금은 불안해서다.

조급함의 모양만 바뀌었을 뿐.



이 노래는 그 조급함을 건드렸다.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흘려보내던 습관.

더 먼 데를 보느라 눈앞을 자꾸 놓치던 태도.

노래를 듣는 동안만큼은 그런 것들이 잠깐 멈췄다.

멜로디는 단순한데 묘하게 여백이 많다.

문장 사이에 겨울 공기가 드나든다.



특히 "기억해야만 해"라는 대목에서 이상하게 울컥했다.

나는 뭘 잊고 있었던 걸까.

언젠가부터 하루가 '준비물'이 돼버렸다는 사실을.

오늘은 내일을 위한 재료처럼 쓰였고, 퇴근길엔 늘 허무했다.



그런데 노래는 그렇게 말한다.

그게 여정의 목적이 아니라고.

지금 이 페이지 자체가 이미 이야기라고.



물론 그렇게 산다는 게 쉽다는 말은 아니다.

오늘을 다 써버리듯 살자니 불안하고, 미래를 위해 아끼며 살자니 허무하고, 그 사이에서 하루가 자꾸 비뚤어진다.

누구도 답을 정확히 외워서 사는 건 아닐 것이다.

그저 각자의 속도로 흔들리고 고쳐 앉고 다시 걸어가는 것뿐.



나는 아직도 이 노래를 들을 때면 창밖을 습관처럼 바라본다.

눈이 오든 말든 상관없다.

그냥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 삶이 어딘가로 도망가지 않고 여기에 놓여 있는 듯해서다.

오늘 하루를 잘 살겠다는 포부 같은 건 없다.

다만 오늘을 너무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겨울동화는 나에게 어떤 결론을 주지 않는다.

교훈도 없다.

오히려 결론을 흐리고, 대신 조용히 한 자리를 내어준다.

그 자리가 의외로 따뜻하다.



때로는 거기까지만 있어도 충분한 날들이 있다.



오늘은 그런 날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