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견디는 방법에 대하여

by 글쓰는곰돌이
5.png




햄넷을 봤습니다.


셰익스피어와 그의 비극 햄릿을 둘러싼 어떤 상상에서 출발하는 이야기입니다.


셰익스피어 아들 이름이 실제로 햄넷이었거든요.


그 아들의 죽음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그 비극이 어떻게 햄릿이라는 작품으로 이어졌을지 상상해 보면서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어디까지가 실제고 어디까지가 상상인지 애매하게 섞여 있는 느낌을 받는데, 그 모호함이 오히려 이 영화 분위기랑 잘 어울리더군요.





이런 영화는 이야기가 얼마나 극적으로 굴러가느냐보다, 현실과 창작이 서로 마주 놓이는 순간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만들어지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햄넷도 그랬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따라가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어떤 일이 지나가고 난 뒤 사람에게 남는 감정이 뭔지에 더 가까운 영화라고 할까요.


사건들이 항상 또렷하게 설명되는 게 아니라 어떤 일은 암시처럼 스쳐 지나가고, 관객이 그 빈자리를 스스로 채워 넣게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결국 비극 그 자체보다는 그 이후의 시간을 바라보는 영화처럼 느껴지더군요.


치유일 수도 있고, 속죄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저 시간이 지나면서 남겨지는 어떤 감정일 수도 있고요.





영화 보는 내내 자꾸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술가에게 비극이란 무엇일까?


어떤 사람은 삶과 예술을 철저히 구분하려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작품이 결국 자신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말합니다.


근데 실제로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우리는 알 수 없잖아요.


밖에서 볼 수 있는 건 그저 어떤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 뿐이고, 그걸 바탕으로 짐작하고 상상할 뿐이죠.


이 영화도 딱 그런 상상 위에 서 있는 이야기인 것 같았습니다.


상실을 겪은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지, 그리고 그 이야기가 다시 사람에게 어떤 위안을 주는지에 대한 이야기요.


그래서 결국 이 영화는 슬픔을 어떻게 견디는지에 관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기 얘기도 안 할 수가 없겠네요.


아녜스 역의 제시 버클리랑 윌리엄 역의 폴 메스칼 둘 다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제시 버클리는 어떤 장면에서는 진짜 가슴을 찌르는 듯한 순간을 만들어내거든요.


근데 이상하게도 저는 이 영화에서 아역 배우들 연기가 더 오래 남았습니다.


아마 이야기의 중심에 아이들이 있기 때문인 것 같은데, 아이들이 나오는 장면마다 영화 감정이 훨씬 또렷해지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영화 보면서 문득 든 생각이 있었는데, 이 영화의 시대가 유아 사망이 흔하던 시기입니다.


'그 시대 여성에게 출산이라는 게 어떤 감각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영화가 말하려는 주제는 충분히 이해가 됐는데, 이상하게 감정적으로는 약간의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딱 설명하기가 어렵긴 한데, 뭔가 괴리 같은 게 있었달까요.


그래도 영화 속에서 가장 강하게 남은 장면은 물 앞에서 이어지는 "To be, or not to be" 순간이었습니다.


햄릿의 그 대사를 떠올리게 하면서, 영화가 현실과 연극을 나란히 놓는 지점처럼 느껴졌거든요.





저는 이런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바로 그런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의 사건과 작품 속 장면이 서로 마주 놓이는 순간, 혹은 영화와 연극이 한 화면 안에서 겹쳐지는 순간이요.


햄넷에서도 딱 그 장면이 특히 좋았습니다.


어쩌면 이 영화는 마지막에 도달하기 위해 천천히 감정을 쌓아 올리는 영화인 것 같기도 했는데, 마지막에 누군가가 손을 내미는 장면에서 저도 모르게 가슴 깊은 데서 감정이 올라오더군요.


꽤 오랜만에 느껴보는 종류의 뭉클함이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에 센티멘탈 밸류도 봤는데, 두 영화를 연달아 보고 나니 묘하게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실과 또 하나의 현실, 그러니까 영화나 연극 같은 유사 현실이 서로를 비추고 있다는 점에서요.


그리고 그 유사 현실을 통해 현실의 고통을 조금은 견딜 수 있게 된다는 점도 비슷했고요.


원래 예술이라는 게 현실의 고통을 잠시 잊게 하는 힘이 있긴 한데, 요즘 영화들 보면 영화 속에서 영화나 연극을 이야기하는 방식이 꽤 자주 등장하는 것 같더군요.


관객이 영화 속 인물 감정에 공감하고, 또 그 장면을 바라보는 또 다른 관객이 존재하는 구조랄까요.


그런 장면들 보면서 영화라는 매체가 공감의 통로처럼 느껴지기도 하더군요.





이 영화가 만들어낸 팩션이 또 다른 생각도 들게 했는데, 원래도 셰익스피어라는 인물은 삶이 꽤 모호하게 남아 있는 사람이잖아요.


근데 이런 상상력이 더해지면서 오히려 더 신비로운 인물이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하더군요.


그래도 만약 그가 정말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인물이라면, 이런 이야기가 만들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어쩌면 작은 위안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요즘처럼 사람과 사람이 직접적으로 공감하기 어려운 시대에 영화가 이런 감정을 대신 만들어 주고 있다는 점도 새삼스럽게 느껴졌고요.





초중반부는 솔직히 좀 낯설었습니다.


시간 도약이 꽤 많아서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싶기도 했거든요.


근데 영화가 끝에 가까워질수록 그런 연출이 왜 필요했는지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몇몇 감정의 흐름이 조금만 더 압축됐으면 어땠을까 싶은 부분도 있었어요.


아이의 죽음 이후 아녜스에서 시작해 주디스, 그리고 윌리엄으로 이어지는 구간이 조금 길게 느껴졌거든요.


그래도 마지막에 햄넷이 어딘가를 헤매는 듯한 이미지와 부모의 모습이 교차하는 장면만으로도 상실과 그 이후의 시간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음악은 너무 익숙한 곡이라 살짝 아쉽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영화가 쌓아 올린 감정이 마지막에 한꺼번에 터지는 순간은 분명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슬픔을 꽤 설득력 있게 보여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상영관 안에서도 훌쩍이는 소리가 꽤 들렸고, 영화 끝나고 나서도 눈물 닦는 분들이 보이더라고요.





영화 보면서 인물들 어린 시절 이야기도 꽤 인상 깊었습니다.


사람은 결국 부모를 보며 자란다고 하잖아요.


윌리엄은 집안 형편이 기울어가면서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 가는 아버지를 보며 자랐고,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될까 두려워하는 인물처럼 보였습니다.


아녜스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고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자라난 인물이고요.


그렇게 서로 다른 결핍을 가진 두 사람이 결혼해 자신들만의 가정을 만드는 거잖아요.


윌리엄은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아녜스는 자신이 받지 못했던 사랑을 아이들에게 아낌없이 주려고 합니다.


아이가 아플 때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간호하고 어떻게든 지키려 애쓰고요.


두 사람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는데, 인간의 최선만으로는 막을 수 없는 일이 있다는 사실이 이 이야기의 비극을 더 크게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비극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영상도 좋고, 음악도 좋고, 이야기도 꽤 인상적입니다.


특히 상실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좋았습니다.


가족이 함께 보기에도 괜찮은 영화인 것 같은데, 한 장면은 살짝 고민이 되기도 하고요.


그렇다고 그 장면이 없어도 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중요한 이야기에서 가족이 시작되는 순간을 모호하게 처리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으니까요.





극장을 나서면서 결국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실과 예술이 나란히 놓이는 순간, 우리는 그 사이에서 어떤 감정을 발견하게 된다고요.


햄넷은 바로 그 순간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영화를 본 뒤에도 많은 잔상과 생각을 남기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i-dle, Mo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