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암태도

by 글쓰는곰돌이


저는 책을 고를 때 기준이 딱 하나입니다.

재미있느냐, 아니냐.

고등학교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문학작품이나 코스모스 같은 거창한 책들도 읽기는 하지만 재미있어서 읽는건 아니죠.

그냥 뭔가 있어 보일 것 같아서 읽는 책들입니다.

완전 트로피 같은거죠.



반대로 진짜 끝까지 읽은 책들은 늘 비슷했습니다.

무협, 판타지, 스토리만 쭉쭉 나가는 것들.

흔히 말하는 3류 저질 소설들 알이죠.

문학적으로 어쩌고저쩌고 하는 건 잘 모르겠고, 일단 다음 장이 궁금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문피아, 카카오페이지, 네이버 스토리 같은 곳을 매달 몇만원씩 구독을 하면서 봅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해도 웃긴 게, 제가 '암태도'를 읽었다는 사실입니다.

구한말도 아니고 소작쟁의라니.

제목부터 재미없을 것 같은 냄새가 풀풀 납니다.

시험 대비용 독후감 1순위 같은 느낌.

제가 평소에 제일 피하는 종류였죠.



처음 그 책을 본 건 고등학생 때였습니다.

운동권이던 대학생 형 집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봤습니다.

형 책장은 솔직히 좀 숨 막혔습니다.

다 무거워 보였어요.

제목만 봐도 이미 피곤했습니다.

그런데 형이 별 생각 없이 한마디 던졌습니다.

"그거, 한번 보면 손을 못때. 그냥 단숨에 다 읽게 되는 책이야."

그 말에 혹해서 저도 읽어 보았죠.

'단숨에'라는 표현 때문이었어요.

그 단어는 제가 좋아하던 모든 이야기의 공통점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정말로, 진짜로, 몇 장만 보자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걸려 들었습니다.



이 소설에는 멋진 장치가 없습니다.

총도 없고, 반전도 없고, 뭔가 터지는 장면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긴장됩니다.

왜냐하면 싸움이 너무 불공평해서입니다.

상대가 한 명이 아니에요.

지주 하나가 아니라, 경찰이고 제도고 시대 전체입니다.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버티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래서 눈을 못 뗍니다.

'이러다 진짜 다 망하는 거 아냐?' 하는 마음으로요.



사람들도 착착 정리되지 않습니다.

서태석은 딱 봐도 중심인물인데, 계속 흔들립니다.

자기가 다 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괜히 앞에 나섰다는 생각도 하고, 자기가 농사꾼이 아니라는 사실을 계속 의식합니다.

문재철은 처음엔 그냥 미운 사람인데, 끝까지 그 자리에만 있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갑자기 좋아지지도 않고요.

읽는 사람을 좀 불편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뭐지?' 하는 생각이 끝까지 남습니다.



그런데 제가 제일 기억하는 건 그런 분석할 거리들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서로 버티는 장면들입니다.

누가 잡혀가면 남은 사람들이 그 사람 몫의 일을 대신 해버리고, 싸움 때문에 틀어졌던 사람들도 끝나고 나면 다시 수습하려고 나옵니다.

대단해서라기보다, 안 그러면 진짜 끝장이라는 걸 알아서 그런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게 더 와닿았습니다.



그날 저는 그 책을 들고 한 번도 안 쉬고 끝까지 읽었습니다.

자리도 안 옮겼어요.

그런 경험은 많지 않아서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며칠 전, 도서관에서 우연히 '암태도'를 다시 봤습니다.

괜히 심장이 먼저 반응하더군요.

표지를 보는 순간, 고등학생 때 형 집에서 책 들고 있던 그 장면이 바로 떠올랐습니다.

다시 읽어보니 확실히 알겠더군요.

이 책이 좋은 이유는 의미가 깊어서가 아니라, 그냥 이야기가 세서입니다.

제 취향이 아닌데도 끝까지 끌고 갑니다.



저는 여전히 재미 위주로 책을 읽습니다.

지금도 무협이나 판타지를 더 좋아해요.

그런데 가끔 이런 책이 있습니다.

한번 잡으면 끝까지 가야하는 책.

'암태도'가 그런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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