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에 회사 서고 구석을 뒤적이다가 발견했다.
앱에서 읽다 만 그 책. '달러구트 꿈 백화점'.
처음엔 제목만 익숙해서 펼쳤는데, 한 페이지 두 페이지 넘기다 보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오후 1시 반엔 돌아가야 하는데 결국 2시가 넘어서야 자리로 돌아갔다.
이렇게 책에 집중한 것이 얼마만인지.
집에 가져가서 저녁 먹고 다시 펼쳤다.
새벽 1시까지 읽었나.
중간에 잠깐 눈을 감고 숨을 골라야 했다.
꿈을 파는 백화점이라니
잠들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백화점이 있고, 거기서 사람들이 오늘 밤 꿀 꿈을 고르는 설정이다.
신입 직원 페니가 그 백화점에 취직하면서 겪는 이야기들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펼쳐진다.
거창한 사건이 벌어지는 건 아니다.
손님 한 명 한 명이 와서 꿈을 고르고 가는, 소소한 에피소드들의 연속이다.
그런데 이게 묘하게 가슴에 남는다.
가벼운 듯하면서도 무겁고, 환상 같으면서도 현실적이다.
특히 이 소설에서 돋보이는 건 감정을 화폐처럼 다룬다는 설정이다.
꿈의 대가는 돈이 아니라 감정으로 지불된다.
꿈을 꾸고 난 뒤 느끼는 설렘, 자신감, 만족감 같은 것들이 자동으로 백화점의 수입이 되는 방식이다.
설렘은 특히 귀한 감정으로 취급받는다.
이 발상이 참 기발하다고 생각했다.
사랑은 혼자서도 시작된다
첫 번째로 마음이 움직인 건, 사랑을 확신하지 못하는 여자 이야기였다.
회사 일로 알게 된 남자에게 자꾸 마음이 가는데, 이게 사랑인지 아닌지 헷갈린다.
그래서 밤마다 달러구트 백화점에 가서 "좋아하는 사람이 나오는 꿈"만 계속 산다.
신입 직원인 페니는 의아해한다.
"이러다 현실엔 진전이 없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백화점 주인 달러구트는 조용히 말한다.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그녀는 분명 사랑을 확신하게 될 겁니다."
한편, 한 남자는 2년 동안 "옛 애인이 나오는 꿈"을 사던 단골손님이었다.
헤어진 여자를 잊지 못해서였다.
어느 날 달러구트가 그 꿈을 더 이상 팔 수 없다고 말한다.
대신 '설렘'이라는 차 한 병을 건넨다.
"이제 새로운 시작을 해도 될 것 같은데, 한번 확인해 보시겠어요?"
남자는 마지막으로 옛 애인의 꿈을 꾸고 깨어난다.
그리고 깨닫는다.
더 이상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날, 남자에게 메시지가 도착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정아영이라고 합니다. 혹시... 기억하시나요?"
이 대목에서 묘한 뭉클함이 왔다.
꿈이 직접 무언가를 바꾼 건 아니다.
다만 사람의 마음이 준비되는 시간을 주었을 뿐이다.
여자는 확신을 얻었고, 남자는 과거를 정리했다.
그렇게 둘은 연결된다.
트라우마가 아니라 업적이었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건 악몽에 관한 이야기였다.
한 남자는 계속 재입대하는 꿈을 꾼다.
전역한 사람들을 다시 군대에 보낸다는 뉴스가 나오고, 자신이 신체검사를 받는 꿈. 깨고 나면 기분이 찝찝하다.
한 여고생은 시험 직전인데 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꿈을 반복해서 꾼다.
주변 친구들은 다 준비가 되어 있는데, 자신만 망한다.
일어나면 한동안 멍하니 누워 있게 된다.
이런 악몽 때문에 손님들이 달러구트에게 환불을 요구하러 온다.
그런데 달러구트가 서약서를 꺼내 보인다.
손님들이 직접 동의하고 산 꿈이었던 것이다.
이름하여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꿈'.
자존감이 낮고 과거에 얽매여 있던 사람들이, 달러구트의 추천을 받아 산 꿈이었다.
그리고 그 뒤가 중요하다.
남자는 다시 재입대 꿈을 꾸지만, 이번엔 생각이 달라진다.
"군대도 다녀왔는데, 내가 못할 일이 뭐가 있겠나." 일어나서 깨닫는다.
그건 트라우마가 아니라 자신의 업적이었다는 것을.
여자는 시험 꿈을 반복하면서 압박감 대신 자신감을 얻는다.
"나는 지금까지 잘해왔어. 앞으로도 잘할 거야."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도 생각했다.
나 역시 가끔 발표 준비가 안 된 채로 단상에 서 있는 꿈을 꾼다.
졸업한 지 몇십 년이 됐는데도. 왜 그 꿈이 사라지지 않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외면한다고 트라우마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계속 돌아온다는 것.
제대로 마주해야 비로소 극복할 수 있다는 것.
여기서 결국 무너졌다
책 중반쯤, 한 남자가 돌아가신 할머니를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꿈속에서 할머니는 카페 메뉴판을 어렵게 읽는다.
"가나다라마바사아까지는 배웠는데, 다음을 못 배워서 그래." 할머니는 웃으며 말한다.
손자는 할머니에게 한글을 가르쳐 드린다고 약속한다.
그리고 다음 꿈에서, 할머니는 자신만만하게 "캐러멜 마키아토 두 잔"을 주문한다.
"할머니, 어떻게 그렇게 어려운 메뉴도 잘 주문해요?"
"우리 손자가 한글 다 가르쳐줘서 알지."
"난 가르쳐 드린 기억이 없는데..."
"아니야. 다 가르쳐줬잖아. 젊은 놈이 그렇게 깜빡깜빡해서 어쩌냐."
손자는 묻는다. "할머니, 할머니 인생은 어땠던 것 같아요?"
"좋았지. 젊어서는 네 애비 내 손으로 키울 수 있는 게 좋았고, 늙어서는 손자 크는 것 보는 재미로 살았지.
그러니 할미 인생은 참으로 좋았다."
할머니는 손자의 얼굴을 감싸며 말한다.
"만나서 반가웠다, 우리 강아지. 건강히 잘 지내거라. 할머니는 오늘 너 봤으니 원하는 꿈 다 이룬 셈이다."
손자는 깨어나서 한동안 눈을 뜨지 못한다.
눈을 뜨면 잔상이 사라질까 봐.
그리고 소리 내어 운다.
여기까지 읽고 책을 덮었다.
한참을 그냥 앉아 있었다.
또 다른 이야기도 있었는데,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어린 딸이 부모에게 하는 말.
"나는 100개만큼 행복하고 1개만큼 아팠는데, 지금은 1개도 안 아파."
그 문장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 책이 주는 위로
이 소설이 위로가 되는 이유는, 슬픔을 부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괜찮아, 다 지나갈 거야"라는 식의 가벼운 위로가 아니다.
"그래, 아프지. 하지만 꿈에서라도 한 번 더 만날 수 있다면 조금은 덜 아플 거야"라고 말한다.
현실은 바꿀 수 없지만, 기억의 방향은 바꿀 수 있다.
떠난 사람은 돌아오지 않지만, 그 사람과 보낸 시간을 어떻게 기억할지는 선택할 수 있다.
할머니가 "괜히 울고 그러지 말어"라고 말하게 하는 것.
아이가 "100개만큼 행복했다"라고 말하게 하는 것.
그게 꿈의 힘이라는 것.
책에는 '시간의 신과 세 제자' 이야기도 나온다.
시간을 다스리는 신이 세 제자에게 시간을 나누어 주었는데, 첫째는 미래만 보다 과거를 잃었고, 둘째는 과거에 얽매여 현재를 살지 못했다.
셋째는 잠든 시간을 받았는데, 신이 첫째의 뿌연 기억과 둘째의 눈물을 섞어 만든 것이 꿈이었다.
꿈은 약한 사람들에게 단단한 마음을 만들어 주고, 경솔한 사람들이 잊지 말았어야 할 것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달러구트가 바로 그 셋째 제자의 후손이다.
완벽하진 않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이 문학적으로 완벽하다고 말하긴 어렵다.
작가가 엔지니어 출신이라고 하던데, 그래서 그런지 문장이 투박한 곳도 있고 설정도 체계적이라기보다는 좀 느슨한 느낌이 있다.
하지만 그게 뭐 중요한가.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울었고,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50년 넘게 살면서 책으로 운 적이 손에 꼽는데, 이 책이 그중 하나가 되었다.
결국
출근길에서 다시 몇 페이지 펼쳐 봤다.
놓친 문장들이 있을 것 같아서.
할머니 부분 다시 읽다가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덮었다.
이 책이 하는 말은 결국 이것 같다.
"잠든 시간도 우리 삶의 일부다. 그 시간을 허투루 쓰지 말자."
좋은 꿈을 꾸고 나면 하루가 조금 덜 무겁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나도 어떤 꿈을 사고 싶을까 생각해 봤다.
다시 보고 싶은 사람이 나오는 꿈일까.
아니면 조용히 혼자 앉아 있는 평온한 꿈일까.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내일 출근길이 오늘보다는 조금 덜 무거울 것 같다는 것이다.
그 정도면 된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