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이라는 말 앞에서
'회복될 수도 있고… 의식불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의사의 말이 끝나기 전, 나는 더는 들을 수 없었다. 옆에서 함께 설명을 듣던 아내는 이미 오열하고 있었고, 나는 그 오열을 달래지도, 의사의 설명을 받아들이지도 못한 채, 마침내 울부짖듯 말했다.
'저희는 의학은 잘 모릅니다. 제발… 빨리 수술부터 해 주세요.'
하지만 의사는 몇 분을 더, 마치 냉정한 기계처럼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그날저녁, 아이는 야간 자율학습을 몰래 빠져나와 친구의 스쿠터를 몰고 나섰다. 잠깐 바람을 쐬고 싶었던 것뿐일 것이다. 하지만 그 짧은 자유는 너무 큰 대가를 남겼다.
서툰 운전실력으로 교차로에서 버스와 충돌. 아이는 머리부터 도로에 부딪혔고, 피를 흘리며 의식을 잃어갔다.
긴급 이송, 영상 검사, 그리고 의사의 말.
'심각한 뇌출혈입니다. 수술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아이의 긴 머리는 수술 준비를 위해 깎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 광경 앞에서 끝내 무너졌다.
평소 그렇게도 '좀 자르라'라고 구박했던 머리였다. 죄인처럼 눈치를 보며 길러온 머리.
그런데 이제, 죽어가며 아빠 앞에서야 짧게 잘라 보여주고 가려는 것만 같았다. 그 순간, 나는 그동안 아이에게 쏟아낸 말들—가시처럼 박히는 말들—을 떠올렸고, 그 상처들이 얼마나 깊었을지를 상상하며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다섯 시간에 걸친 수술 동안에도, 나는 얼마나 이기적인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수술실 안에서 생사를 오가며 버티는 아이를 두고, 나는 그저 겁에 질린 채 어설픈 논리를 떠올리고 있었다.
혹시… 정말 깨어나지 못하면?
의식 없이 살아간다면?
차라리 장기 기증이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내 마음속을 아이가 들여다봤다면, 벌떡 일어나 울부짖었을 것이다. 그토록 자신을 몰랐던 아빠에게.
나는 종교도 없다. 그래서 기도할 대상조차 없어, 결국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렸다.
첫 손자라고 유독 아껴주시던 아버지.
'아버지, 제발… 손자 좀 살려 주세요.'
간절하고, 궁색한 기도였다.
그리고 이틀 후. 아이의 눈이 떴다.
흐릿하지만 분명한 생명력으로, 천천히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은 퇴원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어제 병문안을 온 친구를 통해 들은 아이의 이야기가 내 마음을 다시 찢는다.
'사고 후 구급차에서 119 아저씨가 계속 부모님 연락처를 물었는데… 혹시 의식 잃은 채 말해버릴까 봐, 아빠한테 혼날까 봐… 대답 안 하려고 끝까지 버텼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모든 게 무너졌다.
나는 아이에게 언제나 우산이 되어준 적이 있었던가. 그늘이 되어준 적이 있었던가.
나는 그동안 사회의 기준과 틀 안에서 아이를 몰아붙였다. 성적, 규율, 결과…. 아이의 감정은 외면한 채, '정상'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를 교정하려 했다. 긴 머리, 통 넓은 교복 바지, 소소한 반항마저 이해하지 못하고 비난했다. 내가 아이에게 남긴 건 따뜻함이 아닌, 두려움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핸드폰에 저장된 가족 이름 앞의 '사랑하는'이라는 수식어를 하나씩 지우고 있다.
그 고귀한 단어를 붙일 자격이, 지금의 나에겐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더 겸손하게, 더 따뜻하게 살아야겠다.
아내와 아이에게, 말이 아닌 마음으로 '사랑한다'는 걸 보여줄 수 있을 때까지.
언젠가 진심으로 그 단어를 다시 붙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려 한다.
#사랑하는가족 #부모의성찰 #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