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양의 ‘전시 쇼’를 보고
처음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
이곳이 미술관인지 잠시 헷갈렸다.
정리된 벽, 조용한 조명,
그리고 작품만 남겨둔 공간.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전시의 모습은 아니었다.
대신,
입구에 이젤이 놓여 있었고
물감이 묻은 작업 도구들이 보였으며
어딘가 막 작업을 멈춘 듯한 흔적들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의 작업실 안으로
조용히 들어온 느낌이었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자
압도적인 크기의 작품들이 시야를 채웠다.
그림을 ‘본다’기보다
그 안으로 ‘들어가는’ 느낌.
저 그림 하나를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까.
얼마나 오래,
얼마나 집요하게
한 장면을 붙잡고 있었을까.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작품들은 처음에는
추상처럼 보인다.
형태가 분명하지 않고,
의미를 바로 읽어내기 어렵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조금 더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작품의 제목을 확인하는 순간
묘하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 그래서 이 그림이었구나.
어렵지 않게 다가오지만,
가볍게 소비되지는 않는 방식.
그 균형이 인상적이었다.
이 전시에서 가장 낯설었던 건
벽이었다.
보통의 전시는
벽을 비워두거나, 최대한 단순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곳의 벽은
건설 현장에서 사용하는 거푸집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처음에는
왜 굳이 이런 선택을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답은
전시장 한편에서 흘러나오던 영상 속에 있었다.
작가는 말한다.
벽조차도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다고.
그 말을 듣고 다시 공간을 바라보니
비어 있어야 할 것 같던 벽마저
의미를 가진 하나의 장면처럼 느껴졌다.
전시의 이름에는 ‘쇼’라는 단어가 붙어 있다.
그 이유는 금방 알 수 있다.
공간 사이를 오가는
삐에로 복장의 배우들.
그들은 단순히 지나가는 존재가 아니라
작품과 함께 움직이고,
장면을 만든다.
그 순간,
전시는 조용한 감상의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무대가 된다.
나는 가끔
미술이 어렵다고 느낄 때가 있다.
큰 전시를 보고 나오면서
‘나는 아직 멀었구나’
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 전시는 조금 달랐다.
작품의 완성도는 분명 높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훨씬 자유로웠다.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고,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어쩌면
오랫동안 관객을 마주해온 배우였기 때문에
그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어디에서 멈추고,
어디에서 감정이 움직이는지를.
전시를 보고 나오는 길,
한 가지 생각이 남았다.
이 전시는
작품을 보여주는 전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쉽게, 더 오래
머물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 결과라는 것.
봄이다.
조금 가볍게,
조금은 덜 이해하려 애쓰면서
그저 한 번
걸어 들어가도 좋을 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