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진흙길 위에서 만난 믿음의 도시

라리오하(La Rioja)-산토 도밍고 (Santo Domingo)

by 인생클래스

스페인 라리오하(La Rioja) 지역의 아침.
포도밭과 와인으로 유명한 이 땅에서, 나는 또다시 20kg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섰다.


아침이 오면 몸이 먼저 안다.
"이제 다시 걷자고."
마치 자동처럼 신발 끈을 조이고, 알베르게 문을 나선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나는 왜 이곳에 와 있을까? 왜 걷고 있을까?
혹시 이 길도, 지난 삶처럼 습관의 굴레일 뿐 아닐까?.

왼편에는 눈 덮인 데만다(Demanda) 산맥,
오른편에는 부드럽게 펼쳐진 언덕.
라리오하는 스페인 와인의 심장부라 불리는 곳이다.


길 위에서도 오래된 포도나무와 와인 마을의 흔적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오늘은 아조프라(Azofra)에서 씨루에나(Ciruena)까지 9km.
햇살은 따뜻했지만, 진흙은 반갑지 않았다.


촉촉한 황토가 등산화 밑창에 달라붙어 두 배는 무거워진 발. 한 걸음, 한 걸음이 발목을 잡는다.

'이제 걷는 데 익숙해졌다' 싶은 순간,
순례길은 늘 다른 시련을 내민다.


진흙과의 전투를 끝내고 언덕 위에 앉아,
바게트와 치즈로 점심을 때운다.


"아, 이것도 어느새 익숙해졌구나."

멀리서 산토 도밍고(Santo Domingo) 성당의 첨탑이 보였다. 하지만 보인다고 가까운 건 아니다. 텅 빈 들판을 한참 걸어야만 닿을 수 있었다.


지난여름엔 밀밭이었을 들판, 지금은 삭막한 평야. 나는 그곳을 푸르게 상상하며 발걸음을 이어갔다.

산토 도밍고는 '닭의 기적'으로 유명한 도시다.

15세기, 독일 청년이 산티아고 순례 중 절도 누명을 쓰고 교수형에 처해진다.


절망한 부모가 성인에게 기도하자, "아들이 살아 있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이 재판관에게 호소했을 때,
마침 접시에 닭 요리가 올라와 있었다.
재판관은 비웃듯 말했다.

"아들이 살아 있다면, 이 닭도 살아나겠지."

그 순간 닭고기가 살아나 날아오르고,
아들은 무사히 풀려났다고 한다.


지금도 도시 광장에는 닭 모양 분수가 서 있고,
성당 안에는 진짜 닭이 사육되고 있다.
순례자들은 그 닭을 보며 '믿음의 힘'을 되새긴다.

사실 이 전설은 교회가 순례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장치일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믿고 싶다.

왜냐하면, 믿음은 길 위의 기억을 '기적'으로 바꿔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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