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나는 왜 여기 있는 걸까?

벨로라도-새벽 또다시 찾아온 질문

by 인생클래스

새벽 일찍 눈을 떴다.
피곤해 곤히 잠든 다른 이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어둠 속 침낭 안에서 조용히 천장만 바라본다.


2주 동안은 그저 걷는 데 집중하며
생각 없이 지나왔다.

그런데 오늘은 문득,
다시 회의감이 밀려온다.

"나는 지금 왜,
여기서 이 길을 걷고 있을까?"

산티아고 길.
예수의 제자 성 야고보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걸었던 길.

그의 무덤이 마지막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있다는 전설로 인해
중세부터 수많은 이들이 신앙의 발걸음을 이어왔다.

그러나 지금의 순례길은 종교를 넘어,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자신을 찾기 위해 걷는
'사색의 길', '치유의 길'이 되었다.

나 역시 어느 순간,
한국에서 걷는 이들을 동경하며
이곳에 와 있었다.

걷고, 도장을 찍고,
나만의 크레덴셜을 채워가며,

어쩌면 남들에게 보여줄 무언가를
쌓고 있었던 건 아닐까?.


첫날, 피레네산맥을 넘던 고된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의 질문은
'끝까지 이겨낼 수 있을까'였다면,

지금의 질문은
'나는 이 길에서 무엇을 얻고 있는가'로 바뀌어 있다.

아침부터 짙은 눈비가 내리고,
바람은 몸을 날려버릴 듯 거세다.

한 발짝 내디디기도 힘든 순간,
삼십여 년 전 군대 시절이 떠오른다.

겨울 임진강변에서의 동계 훈련.
새벽 눈 속에서 버티며,
따뜻한 국 한 그릇에 목숨을 걸던 시절.

선임의 "오늘은 특별한 부식이 나온다"는
작은 거짓말에 힘을 얻던 기억.

지금은 그 단순함이
오히려 행복으로 남아 있다.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고속도로 위 수송트럭들의 굉음이 들판을 흔들고,
눈보라는 점점 더 거세진다.


그러나 진짜 더 힘든 건
밖의 바람이 아니라
내 안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다.

"나는 왜 이곳에 와 있는 걸까?"
"나는 무엇을 얻고 있는 걸까?"


아마 이 길은
단순한 도보 여행도,
신앙의 순례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결국,
'나 자신에 대한 고백'일지 모른다.


차가운 눈발 속에서도
나는 또 한 걸음을 내딛는다.

끝나지 않는 질문과 함께,
오늘의 길을 걸어간다.


다음화

15화. 걷다가, 그리움에 멈춰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