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월급봉투
2월의 시작,
집을 떠난 지 어느새 한 달이 되어간다.
새벽녘,
라바날(Rabanal) 숙소의 벽난로 앞에 오래 앉아 있었다.
장작 타는 소리에 묻혀
어느덧 아흔을 바라보는 어머님 생각이 밀려왔다.
걱정하실까 봐 출장 간다며 한동안연락을 드릴 수 없을 거라 말씀은 드렸지만,
평소 이틀이 멀다 하고 막내의 전화를 기다리던 분이다.
지금쯤 가까이 사는 형들이나 누나를 닦달해
내 안부를 수소문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아버지, 어머니는
막내아들이 비교적 경쟁 심한 외국 금융기관에서
직장생활을 해가는 걸 대견하게 여기셨다.
외국계 은행에 입사했을 때,
그 당시엔 다른 국내 기업들과 다르게 토요일에 근무하지 않는 문화에,
국내 대기업 보다 높은 급여에,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았고
부모님 역시 많은 궁금증을 갖고 계셨다.
어느 날 밤,
친목회에 다녀오신 아버지께서 전화를 하셨다.
"친구들이 네가 다니는 은행 이야기를 하더라.
그게 도대체 어떤 직장이냐,
연봉은 얼마나 되냐고 자꾸 묻더구나."
아버지는
내가 말씀드린 내용을 가감 없이 전하셨다고 했다. 그런데 그중 한 친구가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내 아들은 10년 차 교사고,
사위는 대기업 대리인데
외국계 회사에 갓 들어간 네 아들이
그 정도를 받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부모한테 거짓말을 하는 거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아버지의 목소리가 귀에 남았다.
억울함보다는,
어딘가 그 모임에서 아버님의 주눅 든 듯한 모습이 상상되고 침묵이 더 길었을 것이다.
혹시 내가 아들을 믿은 게
괜한 허풍처럼 보였던 건 아닐지.
아니면,
내가 아들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닐지.
나도 마음이 쓰였다.
그다음 주,
첫 월급봉투를 들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식사 후,
조용히 아버지께 봉투를 건넸다.
"아버지, 이 월급봉투,
다음 친목회 때 가져가셔서 보여 드리세요."
그리돈 다음에 고향에 다시 내려갔을 때,
슬쩍 여쭈었다.
"친목회에서 친구분들께 보여드리셨어요?"
아버지는 한참을 말없이 계시더니
천천히 고개를 저으셨다.
"네 말대로 받는 건 알겠는데…
봉투가 전부 영어더구나.
나도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어."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아버지는 말을 이었다.
"나도,
그 친구들도
그걸 이해 못 하면
괜히 더 작아질 것 같더라.
괜한 말만 더 생길 것 같아서
그만뒀다."
그때 알았다.
그 봉투는
아버지에게 '증거'가 아니라,
읽을 수 없는 언어로 쓰인
또 하나의 벽이었다는 걸.
나는 사실을 건넸지만,
아버지의 자존심까지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지금, 이 길을 걷는 나 역시
한 달 가까이 어머님께 전화 한 통 없이 걷고 있다.
그때 아버지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나와 지금의 내가 뭐가 다를까.
벽난로 옆에 앉아 있는데
새벽마다 불을 지피던 아버지의
잔기침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그날 밤,
숙소의 여주인은 동양적 외모에 마음까지 따뜻한 분이었다.
새벽 1시가 넘은 시간,
혼자 불을 지키고 있는 내게
말없이 장작 한 상자를 가져다주고
미소만 남긴 채 나간다.
오늘 밤은 고마움에 대한 인사로
난로 불을 꺼뜨리지 않기로 했다.
이제 종착지 산티아고가 가까워진다.
기대감과 아쉬움, 그리고
"내가 이 먼 길을 어떻게 여기까지 걸어왔을까" 하는 멍한 감정.
돌이켜보면
그저 걸었다.
눈 뜨면 걷고, 숙소에 도착하면 잤다.
너무도 단순한 삶에
자연스럽게 물들어 버렸다.
오늘은 순례길에서 가장 험한 여정 중 하나.
1,515m 높이의 안테나스 언덕을 넘어야 했다.
함께 걷는 이탈리아 친구들은
하루 30~35km를 걷는 강철 체력의 소유자들.
그들을 따라
눈보라 속을 말없이 걸었다.
눈이 점점 거세지자
그들은 소리쳤다.
"더 늦으면 안 돼.
눈이 더 오면
안테나스는 통제돼. 지금 넘어야만 해."
그렇게 두 시간을 숨이 턱에 차오르도록 걷고
드디어 도착한 정상. 철의 십자가(La Cruz de Ferro).
수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에 자신의 소원과
버리고 싶은 마음을 남긴다는 전설의 장소.
소박한 철탑이지만
그 앞에 서자
왈칵 벅차오르는 감정이 있었다.
나도 나의 생각, 인연, 기억을
한 줌 내려두었다.
앞으론 더 단순하게,
그리고 나를 좀 더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자고.
정상에서 바라본 세상은
크리스마스카드에서나 본 듯 한
고요하고 아름다운 풍경 그대로였다.
하산길,
아세보(Acebo)에서 지난번 만났던
"무초(Mucho)"라는 스페인 친구를 다시 만났다.
우리는 반가운 재회에
바에 들러 생맥주를 연거푸 세 잔이나 마셨고,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다시 걸었다.
돌로 지어진 작은 마을을 지나며
나는 흥얼거렸다.
"베사메 베사메 무초~".
스페인 친구의 이름을 빗댄 노래.
순간, 걷던 이들이 모두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 뒤로 몇 시간,
휘파람과 노래가 끊이지 않았다.
눈 녹은 계곡물이 반주가 되고
우리의 합창은
그 어떤 공연보다도 아름다웠다.
그날,
리에고(Riego)의 고요한 산골짜기에
한국 대중가요가 울려 퍼졌다.
혹시라도
우연히 그곳을 지나던 한국인이 있었다면
"어글리 코리안"이라 생각하지 마시라.
그날은,
세 나라의 순례자들이 이 길 걸으며 다시 만난 재회의 감격에 리에고(Riego) 산길에서 함께 부른 작은 콘서트가 있던 날이었다.
만약 그곳이 여름이었다면
하룻밤 머물며
별을 바라봤을지도 모른다.
저녁 5시.
촉촉이 내리는 봄비 같은 비를 맞으며
폰페라다(Ponferrada) 시내에 도착했다.
폭설 속의 언덕을 넘고,
철 십자가에 소원을 남기고,
계곡 아래에서는 재회한 이들과 노래하고,
비 오는 도심을 걷고…
지금까지 이 길 걸어오며
가장 유쾌하고,
가장 많은 것을 경험한 하루였다.
다음화.
제26화-몸은 멈추라는데, 마음은 걷자고 했다
26화. 몸은 멈추라는데, 마음은 걷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