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인생 후반기의 나에게
책이나 주변에서 들은 말들 중
내 삶의 모토로 삼고 싶은 문구가 있다면,
난 주저 없이 이렇게 말하겠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단순한 경고가 아니다.
살아가는 동안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삶의 태도를
이 문장은 강하게 일깨운다.
이 문장은 고대 로마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은
네 마리 백마가 끄는 전차를 타고 개선식에 오른다.
그런데 그 화려한 전차 한편에
가장 낮은 신분의 노예 한 명이 함께 탑승한다.
그리고 그는,
개선식이 끝날 때까지 귀에 대고 속삭인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승리에 도취되지 말고
겸손하라, 평온을 잃지 마라.
그 단순하지만 묵직한 메시지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유효하다.
아침 신문에서 한 기사를 읽었다.
검찰총장을 지낸 어느 인물이
30년 검사 생활과 5년간의 변호사 활동을 마친 후, 조소(彫塑)라는 전혀 새로운 길에 들어섰다는 내용이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조소 작업을 좋아했다는 그는
흙을 만지며 아날로그적 평온을 얻는다고 했다.
놀랍게도,
그의 삶의 좌우명도
“메멘토 모리”였다.
그 문장을 다시 마주한 나는
신문을 덮지 못한 채 오래도록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나도 이제,
내 인생의 다음 장을 어떻게 써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점에 와 있다.
그런데 이게 생각처럼 쉽지 않다.
기사 속 인물처럼
학창 시절부터 좋아했던 것을 다시 시작하는 건
결코 모든 이에게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다.
나는 묻는다.
무엇을 할 때 내가 가장 행복한가?
내게 주어진 재능은 대체 무엇인가?
그 질문의 답을
아직도 찾지 못했다.
혹시 애초에
나에겐 그런 재능 자체가 없었던 건 아닐까.
그런 자조마저 들 때가 있다.
한때는 퇴직 후 시골로 내려가
나무 심고 농사지으며
조용한 삶을 꿈꾸기도 했다.
실제로 고향 인근에 작은 땅도 마련했고,
휴일마다 내려가 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 내가 좋아서 한 선택은 아니었다.
고향 가까이에 사는 가족들을
쉽게 만나기 위한 '명분'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마라톤은 20년 가까이 달려왔지만
그건 제2 인생의 중심이 되긴 어렵다.
미술에도 도전했다.
전시회를 다니고,
미술 공부 모임에도 들어갔고,
작품 해설을 꼼꼼히 읽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그림보다는 차라리 벌서는 게 편했던
학창 시절의 내가 다시 떠올랐다.
음악은 조금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중학교 때 밴드부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형들의 만류로 포기했다.
그 아쉬움을 안고
뒤늦게 색소폰, 드럼 레슨을 3년씩 받았다.
하지만 어느 날,
단란주점에서
정식 레슨 한 번 안 받은 친구가
모든 곡을 자연스럽게 드럼으로 소화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또 한 번 좌절했다.
그 길도
조용히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남은 것이 글쓰기다.
지난 10여 년간
생각날 때마다 글을 써왔다.
조회수는 낮고,
글의 품질도 부끄러울 정도지만
아직 멈추지 않고 있다.
한두 달 교육받은 이웃들이
타고난 재능을 바탕으로
전자책, 종이책을 내는 걸 보면
나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그럼에도
이 길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삶의 모토를 다시 떠올린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그 문장은
내게 이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아직 늦지 않았어.
남은 시간이 있다는 건,
아직도 찾아야 할 길이 기회가 있다는 뜻이다.
대단한 성공이나 성취가 아니더라도
글 한 줄로 누군가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주변을 돌아보며
봉사하고 나누는 삶도
충분히 의미 있을 것이다.
아직도 나는 방황 중이다.
하지만
이 방황마저도
언젠가는 나를 나답게 만들어줄 것이라 믿는다.
왜냐하면,
나는 죽음을 기억하기에
오늘 하루를 더 진심으로 살아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메멘토 모리"
이 문장은
이제 내 인생 후반기의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란 믿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