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세 번 건넌 강, 그리고 마리

여정 : 쥬비리-라라소나-팜플로나

by 인생클래스

이른 아침,

쥬비리 숙소를 나와

팜플로나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득 잊고 온 일이 생각나

걸음을 멈췄다.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방금 지나온

아르가(Arga) 강을

다시 건너야 했다.


나는 그렇게,

오늘 이 다리를 두 번 더 건넜다.


어제 도착할 때 한 번,

그리고 오늘 두 번.

이제 세 번의 강 건너기가 완성되었다.


그 순간,

마음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건… 마리를 위한 거야."

예로부터 이 다리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고 한다.


전염병이 돌면

키우던 동물을 데리고

이 다리를 세 번 건너면,

병에 걸리지 않고 오래 산다는 이야기.


마리.

여섯 살 된 몰티즈.


3년 전 당뇨 진단을 받고

지금은 하루 두 번

인슐린 주사를 맞는다.


갑작스러운 체중 하락으로 입원했을 때,

병원비 앞에서 잠시 멈칫했지만…


주사를 맞을 때마다

조용히 눈을 감고 누워 있는

마리의 모습은 이제

그저 애틋하고 고맙기만 하다.


지난여름,

14년간 몸담았던 회사와의 싸움으로

나는 너무도 힘든 시간을 보냈다.

낮엔 마리와 단둘이 아파트에 있었다.


그리 억울하고, 분하고, 슬플 때, 늘 곁을 지켜주며 그날그날 나의 감정을 읽고 위로하듯 행동하는 마리를 보며…


한때 그 아이에게 혼란스러운

생각을 했던 내가 너무도 미안했다.


하물며 강아지도 그러한데,

왜 우리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살아가지 못할까.


직장생활 내내 나는 동료들을

가족처럼 생각해 왔다.


하지만 내가 어려움에 처하자,

사람들은 거미줄에 걸린

나방을 보듯 외면했다.


그동안의 인연은 새털보다

가볍게 흩어졌다.


본인에게 피해가 될까 봐 내 싸움에

등을 돌렸고,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진작, 그들을 인연에서 자유롭게

놓아주지 못한 걸 후회한다.

오늘 쥬비리에서 팜플로나 까지의 코스는

정말 아름다웠다.


특히 라라소나 도착 전, 3~4km 이어지는

덩굴 숲 터널.


너른 목장을 따라 이어진 그 길에 아침 서리꽃이 내려앉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장관을 이루었다.

앞으로 남은 카미노에서

이처럼 아름다운 길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어지는 아르가(Arga) 강변의 오솔길도

마치 시 속을 걷는 듯 평온했다.


피곤함조차 느껴지지 않는 고요한 길.


걸음이 머무는 곳마다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팜플로나가 가까워지자 멀리 성곽 도시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기가 바로, 중세와 현대가 공존한다는 팜플로나인가?


두 개의 성벽 사이를 지나 도심에 들어서자 고풍스러운 옛 도시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헤밍웨이가 사랑했다는 이 도시.


카미노 표식만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도심의 끝자락에 도달했다.


우회로를 따라 좁은 골목골목을 걷다 보면 곳곳에서 중세의 숨결이 느껴진다.


드문드문 들어선 현대식 호텔과 쇼핑센터가 이질적으로 서 있었지만,

그 대비마저 이 도시에선

하나의 풍경이었다.

밤의 팜플로나는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줬다.

작은 테라스마다 와인을 마시고,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 나는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 걸음을 멈추었다.


오늘의 숙소는 도심 입구에 위치한 공용 알베르게.


겨울이라 대부분의 숙소가 문을 닫은 시기. 스페인 정부 지정 알베르게가 열려 있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생장에서 만난 친구, 마드리드에서 합류한 이들, 오늘 새로 인연이 된 순례자까지.

그 넓은 공간에 단 7명이 머물고 있다.


아직까지 한국인을 한 번도 마주친 적은 없다.


프랑스 생장부터 여기까지, 나는 정말,

생각보다 멀리 와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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