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 길 고양이를 돌본 지는 꽤 되었다.
대단한 일을 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다만 밥을 챙기고, 겨울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작은 집 하나를 아파트 밖 경계 쪽에 두었을 뿐이다.
사람들 동선에서 벗어난 곳, 일부러 눈에 띄지 않게 고른 자리였다.
그런데 그 집이 문제라고 했다.
노인회장이 자꾸 치우라고 했다.
노인들 건강을 해할 수 있어서 그런단다. 대화보다는 지시에 가까운 말투였다.
아이러니한 건, 같은 공간 어딘가에는
노인회에서 심어 놓은 채소들이 잘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용 공간의 빈자리를 찾아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수확까지 한다. 그 풍경은 아무 문제 되지 않는다.
채소는 되고, 고양이는 안 되는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도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결국 고양이 집을 치웠다.
분쟁을 만들고 싶지 않았고,
그저 조용히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을 치운 뒤에도 마음은 전혀 가벼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무거워졌다.
화의 정체는 고양이가 아니었다.
'왜 안 되는지'에 대한 설명조차 받지 못한 채
그저 치우라는 말을 따라야 했던 상황,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느낀 묘한 무시와 이중잣대.
그것이 마음을 오래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도시에서의 공존은 늘 이런 식일까.
힘이 센 쪽의 기준이 조용히 규칙이 되고,
말하기 어려운 존재는 쉽게 밀려난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길 고양이를 돌본다는 건
어쩌면 고양이를 위한 일이 아니라
내가 어떤 쪽에 서 있고 싶은지를 확인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불편하더라도 약한 쪽을 외면하지 않는 선택,
눈에 띄지 않아도 누군가는 지켜보고 있다는 믿음.
고양이 집은 사라졌지만,
그날 이후로 나는 자주 묻게 된다.
우리가 함께 사는 이 공간에서
도대체 무엇까지 허용되고,
무엇부터 배제되는 걸까.
채소는 되고, 고양이는 안 되는 이곳에서
나는 여전히 그 질문을 마음속에 두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