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를 세우는 법을 배우다, 다시 허무는 순례길에서
조직을 떠났을 때
나는 무엇을 잃었는지보다
무엇으로 불렸는지를 먼저 잃었다.
직함도,
역할도,
보고할 사람도 사라졌다.
그때부터였다.
아무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갑자기 많아진 거다.
걷는 동안
나는 더 이상
누군가의 기대에 맞춰 말할 필요가 없었고
어떤 평가도 의식하지 않아도 됐다.
조직 안에서는
늘 속도가 중요했고
결과가 말보다 앞섰다.
하지만 이 길 위에서는
속도가 아무 의미가 없었다.
하루를 얼마나 걸었는지보다
어떤 생각을 품고 걸었는지가 남았다.
돌아보면
나는 밀려난 것이 아니라
비워진 자리로 나왔는지도 모른다.
그 빈자리에
처음으로
나 자신의 목소리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어쩌면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한 여정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었지만
조직 안에서 잃어버렸던
나를 다시 만나는 길인지도 모른다.
콤포스텔라(별의 벌판)에 가까워질수록
500미터마다 세워진 표지석이
나에게 묻는 것 같았다.
“이제, 너는 어디까지 왔니.”
최종 목적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에 가까워질수록
순례길 옆에는 500미터마다 표지석이 서 있다.
콤포는 벌판,
스텔라는 별.
이름만으로도 오래된 신화처럼 느껴지는 도시가
이제 정말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그렇게 오래 걸어왔는데도
목적지에 가까워진다는 기쁨보다
이상하게 아쉬움이 먼저 밀려온다.
끝이 보인다는 사실이
안도보다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이 성당에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
야고보의 무덤이 있다.
그가 복음을 전하며 걸었던 길,
그리고 그를 기리기 위해 사람들이
시신이 안치된 이곳을 향해 걷기 시작한 길.
그 길이 오늘날의 산티아고 순례길이 되었다고 한다.
30여 일을 걸으며
다리 근육은 걷기에 가장 좋은 형태로 변했다.
그렇다면
내 정신은 어디까지 왔을까.
나는 과연
얼마나 성숙해진 상태로
이 길의 끝에 서게 될까.
학창 시절,
시내에는 유명한 음악다방이 하나 있었다.
이미 다녀온 친구들로부터
그곳의 분위기를 전해 들을 때마다
‘나도 한번은 가봐야지’ 하면서도
결국 발걸음을 옮기지는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차라리 가지 않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해 들은 이야기만으로
그 낭만을 상상 속에 간직하는 것이
더 아름답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석양에 물든 창가,
잔잔하게 흐르는 팝송,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모습.
내가 그려온 그 풍경이
실제와 다르면
얼마나 실망할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끝내 그 다방에는 가지 않았다.
진한 커피 향,
젊은이들의 신청곡에 맞춰
낮은 목소리로 음악 해설을 이어갔을 DJ,
끊이지 않았을 대화와 웃음들.
삼 년 뒤,
그 다방은 문을 닫았고
나는 영영 가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지금까지도 그 음악다방을 떠올리면
가슴이 설렌다.
가보지 않았지만,
전해 들은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하나의 추억이 되었다.
내 삶에서
산티아고 순례길 역시
그 음악다방처럼
가슴속에만 담아두고 살아갔어야 했던 건 아닐까.
지금의 나는
걷는 기계처럼 변해버린 채
아직 이 길의 의미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것 같아서
종착지가 가까워질수록 두려움이 앞선다.
뽀르토마린에 들어서기 전,
강과 마을이 조화를 이루는 풍경이 펼쳐진다.
두 번의 언덕길을 지나며
일반 도로와 전통 순례자의 길이
번갈아 나타난다.
비교할수록 분명해진다.
사람의 손이 적게 닿은
전통 순례자의 숲길이
얼마나 더 아름다운지.
작은 마을을 가로지르는 물길,
들판을 나누는 돌담.
나는 휴대폰에 풍경을 담고
한동안 돌담에 기대어 서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흘러왔을 물길을 바라보며
내 삶의 길을 되돌아본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주변에 고통을 준 시간보다
위로를 준 시간이 더 길었기를 바란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수 있기를.
마음에 남아 있는 먼지들마저
졸졸 흐르는 맑고 청아한 물길을 따라
조용히 씻겨 내려가기를
나는 그 앞에서 오래 빌어본다.
다음화.
"이야기는 2부에서 계속됩니다"
2부,1화- 끝에 닿기 전, 나는 일부러 늦게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