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과 길 위에서 배운 사람의 진짜 모습
갑자기 동요 한 구절이 떠오르는 새벽이다.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머리가 하늘까지 닿겠네."
이 노래의 작사가가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분명한 건,
그 사람 역시 새 신을 갖기 전에는
낡은 신발을 신고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다.
어제는 오 세브레이로를 오르느라
눈 속을 헤매는 바람에
등산화가 축축이 젖어
걷는 것조차 버거웠다.
하지만 오늘 아침,
난로 옆에서 밤새 말린 등산화를 신으니
끝도 없이 걸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정말로, 새 신을 신은 아이처럼.
출발에 앞서
영국 친구가 저녁에 마시려고 사두었던 캔맥주가 남았단다.
우리는 맥주 캔을 세 개씩 나누어
배낭 뒤에 거꾸로 매달았다.
혹시 걷는 도중 캔이 터지더라도
로봇 태권보이처럼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을 것 같아서다.
트리아카스텔라에서 사모스로 이어지는 길은
말 그대로 눈꽃축제다.
어느 장면을 담아도 그림이다.
어제는 안개에 가려 보지 못했던
갈라시아 지방의 첫 인사를
눈꽃으로 보상받는 기분이다.
이 아름다움을
제한된 표현력으로 다 담아내지 못함이 아쉽다.
현대식 건물들이 도심 입구를 장식한
사리아 마을에 도착했다.
어제처럼 이른 시간이다.
도심에 머물기보다는
조금 더 걷기로 했다.
폭설로 인해 전통 순례길 대신
자동차 도로를 따라 걸어왔는데,
도심을 벗어나자마자
오래된 떡갈나무 숲이 나타난다.
차 한 대 다니지 않는
시골 깊은 마을로 향하는 숲길이다.
너무나 평온하다.
바르바델로(Barbadelo)까지만 걷자고 했지만
미로 같은 시골길의 매력과
가끔 들려오는 계곡물 흐르는 소리에 이끌려
패레이로스(Ferreiros)까지
13km를 더 걸었다.
한 번이라도 한적한 시골길을 걸어본 사람이라면,
아니 그런 그리움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이 길의 매력에 빠져
한없이 걷게 될 것같다.
그래서 안내서는
사리아에 머물기를 권하나 보다.
시간을 보니
뽀르토마린(Portomarín)까지도
여유롭게 도착할 수 있었지만
이 작은 마을의 기억을
마음속에 남기고 싶어 멈췄다.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할머님 한 분이
숙소에서 홀로 나를 맞아준다.
머무는 이 하나 없는
조용한 산속의 알베르게다.
사모스까지 이어진
눈꽃 장관을 보며
온 가족이 함께하지 못한 것이
문득 아쉽다.
돌아보니
눈꽃 구경을 제대로
같이한 기억이 없다.
숙소에서 짐을 풀고 나갈 준비를 하다
공항에서 건네받은
가족들의 손편지를 다시 읽는다.
공항에서 읽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그때는 보이지 않던 문장들이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내가 어느 날 무너져 내릴 때
그들도 나만큼 아파했고,
아니 어쩌면
나보다 더 아팠을지도 모른다.
그저 말없이,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가슴으로 소리 없이 아파할 때
나는 내가 가장 아픈 사람인 것처럼
소리 지르며 억울함을 토해내고 있었다.
이제는
소리 없이 아파했던 그들에게
여름날 소나기 지나간 뒤
머리 위에 일곱 빛깔 무지개를 걸어주듯,
다시 딛고 일어서는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다음화
30화. 다가갈수록 두려운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