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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자린 Nov 08. 2021

풋내나는 집착

 미연이를 떠올리니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한 아이가 생각났다.

 미연이는 그래도 아주 가끔씩은 뭐하고 지낼까 궁금한 생각이 들긴 했었지만 이 아이는 그때 10살 이후 내 머릿속에서 깡그리 잊혔던 존재였기에 갑자기 그 아이가 생각나자 지금 나는 몹시 당혹스럽다.

 10살짜리 남자아이를 떠올리자 당혹스러운 기분이 드는 이유는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에 이끌려했던 내 어떤 행동이 갑자기 생각났기 때문이다.


 희상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큰 눈과 하얀 얼굴, 그리고 약간 삼각뿔처럼 튀어나온 귀여운 윗입술을 가졌던 남자아이였다. 희상이가 남자 반장이 되고 미연이가 여자 반장, 내가 여자 부반장이었는데 (남자 부반장은 누구였는지 전혀 기억이 없다.) 나는 희상이를 좋아했고 희상이는 미연이를 좋아했다.

 당시 많은 여자 아이들이 희상이를 좋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남자아이들은 미연이를 좋아했었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가 미연이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가뜩이나 외모 때문에 10살 자그마한 여자아이가 품은 열등감에 난 미연이 때문에 어떤 것도 가질 수 없겠구나 하는 좌절감까지 더해주었다.

 그때의 나는 이 짝사랑에 애가 탔고 안달이 나 있었다. 어떻게 하면 희상이와 더 얘기를 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희상이가 나를 바라봐줄지 그것만 생각했다. 하지만 절대 내 감정을 티 내고 싶지는 않았다. 미연이를 좋아하는 희상이를 내가 짝사랑하는 것을 누군가 안다면 차라리 학교를 안 다니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 정도니까.

 그래서 일부러 쌀쌀맞게도 대해 보고 시비도 걸어보고 희상이와 사사건건 부딪히며 싸웠다.


 이 짝사랑을 남몰래 키워오던 어느 날, 갑자기 나는 희상이가 사는 동네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지금 그때를 떠올리고 당혹스러워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그 당시의 행신동은 개발이 되기 전이어서 허허벌판이었고 (그때는 리였다. 행신리) 희상이가 사는 성사동까지는 (성사동 또한 성사리였다.) 그 벌판을 헤치고 한 시간을 걸어가야 하는 곳이었다.

 그렇게 나는 그곳까지 학교가 끝나고 3시경에 희상이가 사는 성사리로 걸어갔다. 희상이가 사는 집도 정확히 몰랐지만 그냥 내가 좋아하는 아이가 사는 그 동네가 궁금했다. 사실은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그 애를 우연히 만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가장 컸다.

 그때 내 옆에는 내 마음을 아는 친구가 같이 있었다. 사실 누군가 옆에 있었는지도 지금 확실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지금 확실히 기억나는 건 가을 무렵이라 해가 일찍 져서 멀리 노을이 지고 있었고 더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가야 했기에 "그래. 됐어. 그냥 궁금했어. 저기 언덕 위에 보이는 빌라가 희상이네 집일 거야. 그냥 그걸로 된 것 같아."라고 말을 하며 멀리 우뚝 보이는 그 빌라와 그 뒤로 붉게 넘어가는 해를 등지는 순간이다.

 이걸 나 혼자 내뱉은 말인지 같이 온 친구한테 말한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금 아이가 있는 엄마 입장에서 생각하면 10살짜리 여자아이가 아무런 개발도 되지 않아 벌판인 곳을 한 시간을 걸어 생판 모르는 동네를 간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 한 번의 우연한 마주침을 기대하고 그렇게 행동하게 만든 것은 10살짜리의 짝사랑에 대한 집착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어찌 생각해보면 내 작은 가슴에 넘쳐흐르는 감정을 그냥 흘려보내기만 하지 않고 어떤 행동으로 표현했다는 것은 마흔을 바라보는 한 사람의 여자가 봤을 때 그 꼬맹이는 대단했다는 생각은 든다.

 결국엔 좋아한다는 말도  꺼내고  짝사랑은 끝났고 금세 잊혀졌고 다른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생기고 아이들이 그렇듯 그렇게 반복되다가  잊혀졌다. 오로지 남은 것은  여섯, 일곱 시쯤의 어둑해짐과 노을, 멀리 보이는 빌라, 돌아서야 하는 발걸음과 아쉬움이다. 유쾌한 기억은 아니지만 그때를 기억하며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마음이 몽글거리고 있다면 이건 추억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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