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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자린 Mar 30. 2022

7살에게 팩트폭력은 범죄인가

 동갑내기 친한 직장동료가 얘기했다.

"나 우리 딸내미 피아노 사줬어요. 나처럼 취미없는 재미없는 삶을 살까봐 이제부터라도 이것저것 하게 해주려고."

"어머 그 비싼 피아노를요?"

"요즘 그렇게 안비싸던데? 설마 그 우리 때 있던 나무로 된 피아노 얘기하는거에요?? 아냐아냐, 요즘엔 다 전자 피아노 써요. 아파트에서 그런 피아노 두들기면 층간소음으로 난리 난다고."

"어머 그렇지..그런데 요즘 그런 피아노 팔라나?"

"그럼 있죠. 중고장터같은데 보면 200만원 막 이렇게 올라오던데?"

"200만원이요??? 나 30년 전에 샀을 때 200만원 주고 샀던거 같은데???"

"맞아맞아. 그때도 그정도 가격이었던거 같아요. 지금도 비싼데 그때는 정말 엄청 비쌌지. 근데 과장님은 피아노 배웠었나봐? 피아노가 있었다는 거 보면. 오래 했어요?? 피아노가 있을 정도면 피아노 좀 쳤나본데?"


 동료의 추측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나는 피아노를 배웠었고 피아노가 있었지만 그다지 오래 하진 않았고 잘 치지도 못했다. 

 그래도 7살때부터인가 시작해서 언제 그만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그 당시 태권도 2일, 미술학원 1달을 생각해보면 이것들과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오래한 것은 확실하다. 도레미파솔라시도부터 시작해서 체르니 50번 들어가기 직전 그만뒀으니 족히 2,3년은 하지 않았을까. 

 피아노 학원을 생각하면 우리 가족이 자주 가던, 산오징어가 산에서 나는 오징어가 아니라는 걸 알려준 횟집의 위층에 있었다는 것과 손목이 내려가면 미친듯이 손을 때렸던 지금이었으면 선생으로 어디든 발을 못붙였을 무서운 선생님이 있었다는 것, 그 선생님의 레슨이 끝나고 연습시간에 가방안에서 몰래 꺼내먹던 러스크(빵귀퉁이를 튀긴 과자), 그리고 학원을 들어간 지 얼마 안되서 원장선생님의 신랄한 팩트폭력이 기억에 남는다. 

 학원도 피아노를 너무 치고 싶다기 보다는 친구들이 모두 다니기 때문에 엄마가 보내줬었다. 하지만 다니다보니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한정적인 시간말고 언제든지 피아노가 치고 싶었다. 

 그리고 어디서 본 건 있었는지 7살 아이의 머릿속은 이미 예쁜 드레스를 입고 피아노 콩쿨에 나가 세계를 휩쓸고 다니는 피아노 천재소녀인 내가 있었다. 

 피아노 천재소녀의 집에는 그랜드 피아노가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집은 거실에도 그랜드 피아노가 안들어가는 좁은 집이었기에 그랜드 피아노는 나중에 사기로 하고 우선은 작은 거라도 사고 싶었다. 

 그래서 엄마 아빠에게 미친듯이 조르기 시작했다. 피아노 사줘, 피아노 사줘. 집에서도 연습하고 싶단 말이야. 피아노 사줘, 피아노 사줘. 난 그냥 피아노가 갖고 싶었던 걸까. 

 그 당시에도 피아노는 어마어마하게 비쌌지만 철없는 7살은 금액이 얼마인지 알지도 못했거니와 알 필요도 없었다. 엄마 아빠는 항상 말하면 사줬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아빠의 월급보다 비쌌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도 인형 나부랭이나 책 전집 정도가 아니었기에 당장 사준다는 말은 못하고 형편 상 사줄 수 없다는 말은 더더욱 못했다. 

 차라리 지금 피아노를 사줄 형편이 안된다고 말해줬으면 좋았을 것을..

 엄마는 그럼 우선 피아노 학원 선생님한테 가서 피아노를 사줘도 되는지 한번 물어보자. 그리고 선생님이 사줘도 된다고 하면 그때 사주마 하고 내 손을 잡고 선생님을 만나러 갔다. 

 내 기억의 원장선생님은 피아노 선생님보다는 발레 선생님이 더 어울릴만큼 가녀린 몸과 작은 얼굴, 긴 목을 가진, 항상 우아한 블라우스를 입고 있던 사람이었다. 난 이 선생님이 이 아이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피아노라고 말해 줄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 가녀린 목과 작은 얼굴에 있는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 밖이었다. 

 "어머님, ㅇㅇ이는 사실 그렇게 피아노에 재능이 있는 아이는 아닙니다. 피아노를 굳이 살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학원에 다니면서 연습하는 것으로 됩니다."

 그렇게 나의 손안에 들어왔던 피아노와, 예쁜 드레스를 입고 콩쿨에 나가 온갖 상을 휩쓰는 나의 모습은 건반에 흩날리는 음계처럼 허공에 떠올랐다가 사라져버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엇보다도 잘하고 싶은 것이 생긴 7살에게 재능이 없다는 말은 사망선고나 다름 없었다. 자존심이 상한 나는 아무말도 안하고 엄마 손을 잡고 집으로 와서 침대에서 혼자 몰래 울었다. 아마 엄마는 지출할 뻔한 목돈을 아껴서 기분이 좋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7살 그때의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나에게 콩쿨 근처라도 갈만한 재능은 사실 없었다는 걸. 그래서 원장선생님의 말은 사망선고라기보다는 확인사살이었다. 이미 아픈 곳을 또 찔렸다는 말이다. 그래서 아팠고 난 30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피아노를 좋아했다. 그런 말을 듣고서도 피아노 학원은 빼먹지 않고 꼬박꼬박 다녔고 그 이듬해인지 피아노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재능이 없던 게 맞았는지 올라갈수록 어려워지자 흥미를 급격히 잃었다. 

 하지만 원장선생님이 재능은 없지만 피아노는 훈련으로도 어느정도는 가능하다는 얘길 했었다면 어땠을까. 아니면 피아노가 갖고 싶어 초롱초롱한 눈으로 선생님 입만 바라보고 있던 아이를 배려해서 거짓말이라도 그 비싼 피아노를 당장 사줄 만큼 이 아이는 재능이 있습니다 라는 사탕발린 말을 했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 지금 의문인건 피아노를 사는 것과 재능의 유무가 무슨 관계가 있냐는 것이다. 그러기에 다른 합리적인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엄마와 선생님이 사전에 입을 맞춘 것이다. 내가 더이상 피아노를 사달라고 조르지 않도록. 

하지만 내가 재능이 없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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