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님, 결혼한 지 얼마나 되셨어요?"
"2014년에 했으니까 음... 7년 됐죠? 세상에나 벌써 8년 차 부부네요."
"그때 과장님 결혼식에 갔던 거 생각나네요. 과장님 아버님이 과장님 보내기 싫으셔서 신부 입장하고 신랑분 손에 안 넘겨주시고 계속 잡고 계시던 거 생각나요. 아버님이 과장님 정말 예뻐하셨구나. 그래서 보내기 싫으셨구나 싶어서 좀 슬펐어요."
직장 동료에게 그 일은 문득 생각나는 마음 아픈 기억이겠지만 나에게는 매년 아니면 항상 내 가슴을 아프게 하는 추억이다.
아빠의 치매가 시작됐을 때 우리 가족은 그저 아빠가 귀가 안 좋아져서 우리가 하는 얘기를 잘 못 알아듣는 줄 알았다. 자연스럽게 나는 아빠와 대화를 잘하지 않게 되었고 사이좋던 부녀 사이에는 가까운 거리지만 다리가 없는 섬처럼 쉽게 갈 수 없는 거리가 생기게 되었다.
아빠가 아프지 않았을 때 나는 지금 신랑이 남자 친구였을 때 집에 데리고 가서 소개를 시켜 주었다. 아빠는 남자 친구에게 살갑게 다가가지도 그렇게 잘하던 농담도 하지 않았지만 아빠는 그냥 우리 신랑을 좋아해 주었다. 단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결혼을 준비하고 있을 때 아빠는 치매 판정을 받았다. 뇌가 많이 위축되어 작아지고 있다고 했다. 그때서야 아빠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말들이, 왜 그렇게 어릴 적 과거는 어제 일처럼 기억을 했었는지 모든 것들이 납득이 됐고 이제 우리 가족이 할 일은 아빠의 병을 받아들이고 최대한 아빠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뿐이었다. 사실 이 상황에서 가장 힘든 것은 아빠였기에.
이 상황에서 결혼을 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아직은 심한 단계는 아니어서 결혼은 진행하기로 했다. 결혼을 준비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난 아빠의 병세가 눈에 띄게 나빠져 가고 있는 걸 모르고 있었다.
결혼식 당일 신부 입장을 하러 아빠와 들어가는 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길을 걸어가는 내내 아빠는 내 손을 꼭 잡고 있었고 신랑에게 내 손을 넘겨줘야 하는 그 순간에도 내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아빠를 본 순간, 나는 알았다.
아빠의 초점 없는 눈.
아빠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거다. 30년 전 외할아버지로부터 엄마 손을 건네받은 그 순간만 알뿐 하나뿐인 딸의 손을 다른 사람에게 줘야 하는지 몰랐던 것이다.
"아빠... 아빠.... 손 놔줘야지" 조그맣게 말했지만 아빠는 미동도 없이 멍하니 내 면사포를 바라보며 손을 그대로 잡고 있었다. 상황을 눈치챈 신랑이 자연스럽게 손을 아빠 손 위에 얹어 내 손을 잡았다. 그제야 아빠는 내 손을 놓았다.
결혼식이 끝나고 회사로 돌아갔을 때 사람들은 아빠가 정말 딸을 사랑했나 보다고, 손을 안 놓아주는 것을 봤을 때 슬프더라는 얘기들을 했다.
그리고 우리 신랑은 이 상황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아빠의 흔들리는 눈빛이 너무 슬펐다고 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는 좋은 딸이었나 계속 자문하면서 괴로워했었다. 그 가까운 섬 사이에 다리가 없다고 섬은 섬이라며 그저 바라만 봤던 나 자신이 미웠었다. 난 그때 헤엄이라도 쳐서 건넜어야 했다. 나에겐 시간이 많으니 언젠가는 다리도 생기고 배도 생길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많았던 것은 나뿐이었고 겨우 아빠에게 갔을 때는 항상 있던 자리에 아빠는 없었다.
결혼식을 생각하면 면사포 사이로 봤던 아빠의 멍한 눈이 생각난다. 이제 더 이상 아빠에겐 나를 기다려 줄 시간이 없음을 알려주는 신호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