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를 그저 잠시 머물다 갈 간이역으로 생각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시곗바늘이 오후 한두 시를 가리킬 때쯤 시작되는 늦은 아침 식사 시간이면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항공권 예약 사이트를 들락거렸다. 루카는 진지하게 독일행 티켓을 알아보다가도 나와 눈이 마주치면 말한다.
"투모로우?"
"투모로우."
휴대폰을 엎었다.
루카와 나는 작정이라도 한 듯 서로의 나라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 "한국에서도 히치하이킹이 흔해?", "독일어랑 네덜란드어는 비슷하잖아. 안 배워도 다 알아들어?" 따위의 것들. 그중에서도 나의 가장 큰 의문은 한국에서는 잘 쓰지 않는 거대한 '왕수건'이었다.
"난 큰 수건 쓸 때마다 수건이랑 레슬링 하는 기분이야."
샤워 한 번에 작은 수건을 서너 장씩 쓴다는 내 말에 루카는 환경 파괴범을 보듯 가자미눈을 떴다. 헤이, 아이 해브 롱 헤어. 변명을 해야 할 것 같았지만 삼켰다.
"뭐? 패러사이트? 그거 한국 영화였어? 나 그거 봤는데! 한국은 BTS도 있고 오징어 게임도 있지만 독일은 아무것도 없어."
"그런 식으로 너희 나라를 깎아내리지 마. 독일은 좋은 나라야. 하리보가 있잖아."
"인정."
하리보의 나라에서 온 루카가 뜬금없이 말했다.
"한국도 괜찮은 옵션 같아."
루카는 네덜란드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 내년에는 다니는 대학의 자매결연 아시아 국가로 교환학생을 갈 생각이라고 했다. 일본을 고려 중이고, 나와 어울리기 전까지는 한국은 생각해 본 적도 없다고 했다. 시답잖은 문답이 오갈수록 한국은 '교환학생을 가기에 꽤 괜찮은 나라'로 야금야금 격상되고 있었다.
"모든 아시아인들은 한국인이 되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내가 한 말이 아니라 루카가 한 말이다. 나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되물으며 그건 절대 아닐 거라고 손사래를 쳤다. 한국 콘텐츠들이 많이 소비되는 건 맞지만, '한국인처럼 되고 싶어 한다'는 말은 누구나 품고 있는 자기 나라에 대한 자부심에 스크래치를 남기는 말이다. 내가 미드 시청에 푹 빠져 있다고 해서, 영국 밴드의 노래를 한곡 반복으로 듣는다고 해서 미국인이나 영국인이 되고 싶은 건 아니다.
남한과 북한을 구분하지 못했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칭찬을 내포한 그 말이 새삼스러우면서도 묘하게 당황스러웠다.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라는 말이 나오자 이야기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애국심'으로 흘렀다.
"근데 너는 전쟁 안 무서워? 북한이 공격할까 봐 무섭지는 않아?"
한국인에게는 아주 따분하고 뻔한 질문이 들어왔다.
"무섭지. 나는 매일 울면서 잠들어. 전쟁 날까 봐 태국으로 피난 온 거야."
비아냥 섞인 내 말투에 루카는 멋쩍게 웃으며 사과했다. 사실 휴전 국가 출신의 국민이 우리나라는 평화롭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내가 일상이나 신변에 위협을 느낀 적이 없다면, 그건 평화로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게 진짜 평화든, 혹은 평화를 가장한 공포가 너무 오랜 시간 지속되어 느낄 수 없게 된 것이든 말이다.
그런 나라에서 자고 나란 나로서는 오히려 전쟁의 공포를 묻는 저런 질문 자체가 더 생경하다. 상시적인 위협을 공포보다 지긋지긋함으로 받아들이는 이 기묘함을 루카는 이해하기 어려웠을 거다.
"한국에 전쟁 나면 어떻게 할 거야? 다른 나라로 도망갈 거야?"
"어차피 도망 못 가. 싸우든가, 숨어 있다가 죽겠지."
"진짜? 싸울 거야? 그 정도로 나라를 사랑해?"
루카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총이라고는 잡아 본 적도 없는 내가 싸우겠다는 건 사실 말이 안 된다. 방해나 되지 않으면 성공이다. 그래도 돌 하나쯤은 던져 볼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하고는 했다. 영웅 서사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서 한 말도, 눈물 젖은 애국심에서 한 말도 아니다. 그저 내가 태어난 곳을 향한 기본값으로 장착된 애국심 반, 어차피 도망칠 수 없음을 아는 현실 직시 반에서 나온 진심이었다. 나는 국뽕 쇼츠를 보면서 눈물을 훔치는 편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 대한 단단한 자부심이 있다.
"나는 절대로 독일을 위해서 싸우지 않을 거야. 절대로."
루카는 단호하게 말했다. 장담하건대 대부분의 독일인이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고,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독일을 위해 싸우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독일이 과거의 죄를 참회하고 있다는 말은 익히 들었지만, 루카의 말을 들으니 무게가 실감이 났다.
독일 국기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였다. 독일 국기를 자랑스럽게 드러내는 행위가 때로는 과거의 망령을 불러내는 위험한 신호인가 싶을 정도였다. 나에게 태극기는 그저 내가 속한 공동체의 당연한 상징일 뿐이다.
치앙마이의 한 마켓에서 불교의 '만(卍)'자가 그려진 패브릭 포스터를 보며 나눴던 대화가 생각났다.
"내가 이걸 가지고 독일에 돌아가면 입국도 거부당할 거야."
"이건 하켄크로이츠가 아니야. 불교의 상징이야."
"나도 알아. 그래도 이런 건 피하는 게 나아."
"사실 억울한 면도 있어. 물론 독일이 엄청난 잘못을 하기는 했지. 그렇지만 내가 한 건 아니잖아. 그 사람들은 거의 다 죽었고."
나는 루카의 말에 생각이 깊어졌다. 그런 과거가 있었기에 지금의 독일이, 또 네가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거라고 맞받아치고 싶었다. 언어의 장벽으로 튀어나오지 못한 날카로운 진심이 혀끝에 맴돌다가 사라졌다.
동시에 그 화실은 나에게로 향했다. 루카가 조상의 과오로부터 선을 긋고 싶어 하듯, 나 역시 조상들의 피와 희생으로 일군 평화를 너무나 당연한 기본값으로 여기는 건 아닌지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수많은 희생이 쌓여 만들어진 땅 위에서 그 무게를 잊은 채 평화만을 공기처럼 마시고 있었다.
루카는 내가 살아있는 동안 한국이 통일될 것 같냐고 물었다. 나는 기약 없는 미래에 대해 쥐어짤 상상조차 없었다. 역으로 내가 질문했다.
"모르겠어. 통일하면 어떤데?"
독일은 통일 선배다. 나는 우리나라가 언젠가는 통일이 될 거라고 믿지만, 그게 어떤 모습일지는 잘 그려지지 않았다. 실제로 경험해 보지 않아서 남들이 이럴 거야, 저럴 거야 말하는 통일 후의 모습이 잘 와닿지는 않는다. 독일 통일 후에 태어난 루카는 내 질문에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말을 고르는 눈치였다.
"나도 잘 모르겠지만 쉽지는 않았던 것 같아."
루카와 나는 그런 세대다. 쪼개진 나라의 갈등을 실감하기에는 이미 너무 익숙한 평화 속에 태어난 세대. 분단과 전쟁, 또는 내 나라가 저지른 과오를 교과서 속의 활자로 먼저 배운 세대. 비극은 분명히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 비극은 공기처럼 당연한 일상 같은 것이다.
치앙마이에서의 일주일은 그렇게 흘렀다. 루카는 방콕으로 가는 야간열차를 타기 위해 치앙마이 기차역으로 가는 그랩을 불렀고, 나는 다음 날 치앙라이로 가서 이 방향 없는 여행을 며칠이나마 끌어보겠노라 결심했다.
루카의 택시가 호스텔 앞에 도착했다.
나는 루카에게 니 지갑을 훔칠 수 있는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농담이었다. 나는 먹는 것 말고는 잘 안 훔친다. 루카는 자기도 도둑질을 참느라 일주일 동안 힘들었다고 했다. 농담이었다. 타지에서 만나 일주일을 어울렸던 우리에게 적당히 무례하고 충분히 가벼운 작별 인사였다.
"내가 말했지. 우리나라에서는 인사할 때 포옹은 잘 안 한다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나는 팔을 벌렸다.
"나는 특별하니까 괜찮아."
마지막 인사를 위해서 다가오는 루카의 손목에 내가 여행 내내 차고 다니던 염주가 걸려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등을 돌렸다. 루카는 가끔 사진을 보내왔다. 치앙마이 마켓에서 산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유니폼을 입은 루카의 어린 남동생 사진. 치앙마이의 마켓에서 팔던 엽서에 그려진 귀여운 강아지 일러스트를 타투로 새긴 사진. 나는 먹고 있던 맥도널드 세트의 사진을 찍어 보내며 미국 자본주의를 즐기는 중이라고 답했다.
아, 루카는 말레이시아로 교환학생을 다녀왔다.
INSTANT FRIENDS 1. 루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