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아름답다

by 마달그

게으름과 쉼 사이를 오가는 몇 년 동안에도 그림을 그리고 미술 수업을 이어왔다. 글 쓰는 것은 마음이 심드렁해질 때 가끔 끄적이는 정도였다. 네 식구가 사는 작은 아파트에서 비슷한 것 같지만 날마다 다른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비슷한 반찬을 먹고 비슷한 일과가 반복되는 것 같아도 그 안에서 변화하는 작은 것들을 들여다보면 그리 지루하지만은 않다.

2025 개인전

계절의 변화를 음미하는 것도 즐거웠다. 산책할 때는 다리를 움직이는 것뿐만 아니라 소리, 냄새, 피부, 눈으로 하려고 애썼다. 전처럼 수십 장씩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그 순간의 온도와 바람을 몸에 맞으며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바깥에서부터 심장까지 무언가 스몄다. 풍경의 색깔, 바람의 냄새, 새들의 소리. 날마다 그 조화가 달랐다. 그래서 날마다 같은 날은 없었다.


나는 가끔 산책하며 다가오는 것들이 좋았다. 장 보러 나갔다가 햇살에 비쳐 보송 거리는 갈대를 보는 일, 어슬렁거리는 고양이를 보는 일, 길에서 마주한 사람과의 어색함, 목을 빼며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 튼실한 배추들 사이로 보이는 경고 팻말......


보송보송 너

일상을 천천히 보며 아름다움 찾기를 좋아하는 나는 정말 빡빡한 세상에서 살기 힘든 유형일까. 과거에 누군가 그랬다. 내가 한량 같고 현실감이 떨어진다고. 너무나 이상을 바라보며 산다며 걱정하는 말을 했다. 현실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사람은 일말에 아주 작은 것이라도 지키고 싶은 게 있기 마련이다. 내가 지키고 싶었던 건 마주한 세상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었다. 좋아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예민하고 겁 많은 내가 세상을 살아가려면 세상을 달리 바라보는 방법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림은 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자신에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그것이 이상이라고 말한다면 세상 수많은 사람들이 다 똑같이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종종 노을 진 하늘을 감상한다. 저녁 시간에 태권도 학원에서 돌아오는 딸아이를 마중 나갔는데 이미 해는 사라져 있었다. 겨울이 오면서 노을이 머무는 시간도 짧아졌다. 일상의 패턴은 나를 그 속에 자주 파묻는다. 나쁘진 않아도 중요한 걸 잊히게 만들기도 한다. 그중 하나가 노을 진 하늘을 보며 감탄하는 것이다. 감탄은 저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그 순간을 놓치면 맛있는 저녁 식사에 집중한다. 맛이 별로 없는 져녁이었다면 아이들이 잠든 시간을 기다린다. 드디어 집안 공기가 가라앉았을 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만족감을 느낀다.


매우 붉었다

하루에 모든 것을 다 이룰 필요는 없다. 지치고 걱정이 많았던 하루지만 나는 나름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기뻐한다. 오늘도 눈물 나게 고마운 하루였다는 건 조용한 공간에 눈은 감고 있어 보면 알게 된다. 조용함은 식구들이 잠들었을 때뿐이라 아주 귀하다. 아이들이 학교 갔다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것. 남편이 드렁드렁 코를 고는 것. 부모님이 주신 먹을거리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주는 이웃. 그리기 재료가 가득 쌓인 책상. 이 모든 걸 내가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래도 통장의 잔고가 남아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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