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놀림 손놀림

대나무의 고백

by 수필천편

문인화 수업시간에 대나무를 그려본다. 검고 푸른색으로 붓을 놀리며 마디마디를 표현해 본다. 그림에는 소질 없는 손으로 붓놀림을 하려니 대나무가 울퉁불퉁하다. 못 그리는 그림 붓 놀리며 계속하다 보니 그래도 그럴듯하게 보인다. 자기 그림은 다 좋게 보인다는데 실감이 간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볼 필요는 없다. 내 그림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어렸을 기억에 형들과 누나들은 그림을 잘 그렸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별종이었나 보다. 그림 그려본 일도 그다지 없었지만 그렸던 그림 가물가물 떠올리니 그 그림도 참 무참할 지경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다시 그림 수업을 듣고 있으니 그 실력 어디가랴! 다른 사람들 쉽게 그려가는 것 같은데 나는 땀만 뻘뻘 흘리며 안절부절못한다. 붓과 물감을 꺼내 붓을 적셔 그려본다. 선생님의 손놀림을 따라 해 보지만 결과는 무참하다. 전혀 비슷하지 않은 낙서 같은 모양새다. 그럴 때면 붓놀림 연습을 한다. 남들 그림 그릴 때에 나는 붓에 먹을 묻혀 선을 그려보거나 풀포기 그림을 그려본다. 그냥 붓놀림하는 연습이다. 다른 사람들 돌아보니 똑같은 연습이지만 그들은 그림들을 그려가는 연습이다. 나는? 그냥 손으로 붓놀림만 하고 있다. 굵게 선을 그려보고, 가늘게도 그려보고, 때로는 난초를 그리듯 해본다.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면 또 다른 사람들의 그림들을 슬쩍 엿본다. 사람들 나름대로 그리고 있다. 쉬운 그림이든 어려운 그림이든 말이다. 나는 그림을 그려나간다기보다는 환 획 한 획을 그어가는 사람처럼 초보 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어쩌랴. 치매에 핑계를 돌리고 싶진 않지만 이 것도 치매의 영향인가 싶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나만 빼고 그림을 다 잘 그렸던 것 같다. 나만 별종이 되어버린 기분이다. 하지만 기죽지 않고 꿋꿋하게 그림 아닌 그림을 그려본다. 매, 난, 국, 죽을 떠올리며 화선지에 끄적거리고 있다. 붓놀림이 아니라 글씨를 쓰는 것처럼 어색해 보인다.


글을 쓰다 보니 책상 한편에 독서 중인 책이 눈에 띈다. "허송세월". 책 제목이다. 내용은 의미가 다르지만 제목만으로도 나에게는 적절한 지적처럼 따끔한 제목이다. 큰 숨 한번 들이쉬고 정신을 차린다. 벌써 아홉 시가 되어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읽던 책을 이어서 읽으며 오늘 하루를 마감해야 할 때다. 괜히 책에 있는 그림을 따라 그려 본다. 그려놓고 보니 하필 똥바가지다. 스탠드 조명만이 거실을 은은하게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