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쇠의 기억
가난한 시대였지만 정신만은 풍요로운 시대였다.
오래 전의 기억이 떠오른다.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이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선배의 손에 끌려갔다.
막 대학생이 되어 첫날 설명회에서 분과별로 설명이 있었는데,
이마 한 편에 검은 점이 있는 선배가 단상에 올라 말을 꺼낸다.
"우리 민속연구회 분과는 민속 조사를 다니면서 풍물도 배웁니다.
그리고 직접 몸으로 부딪히는 봉산탈춤도 배울 수 있어요!"
그 설명 한마디에 분과별 교실에 들어섰는데 여학생들이 몇몇 앉아있고, 앞에는 선배인듯한 두 사람이 앞에 서 있다. 산도적같이 생긴 선배와 푸근한 웃음을 떠올리고 있는 선배다. 그리고 신입생인듯한 남녀가 강의실 책상에 앉아있다.
선배의 간단한 설명이 뒤를 따르고, 우리들은 모였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막걸리 집으로 끌려갔다. 술이라고는 한 번도 마셔본 적 없다. 그런데 여자 신입생들이 제법 술을 잘 들이켠다. 선배들은 웃는 얼굴로 함께 잔을 부딪힌다. 나는 잔만 든 채 그냥 내려놓는다.
그때 난 장구를 배워보고 싶었다. 선배의 장구 치는 모습이 멋져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산도적같이 생긴 턱수염이 새파랗게 보이는 선배가 와서는 내 손을 잡고 끌다시피 데려간다.
나중에 알고 보니 풍물놀이를 할 때 리더 격인 상쇠였다.
"거기 가면 어떡해? 풍물은 상쇠가 최고여!"
그 말 한마디에 호기심 반, 억지 반 마음으로 끌려갔다. 그리고는 대학 졸업 때까지 쇠놀이만 했다.
물론 장구나 북도 배웠지만 첫 번의 쇠를 잡은 기분이 제법 마음에 들었던지 주로 상쇠를 맡았다.
연습을 하거나 공연 같은 것을 끝내고 나면 인문대 뒤편 막걸리 집을 아지트 삼아 모였다.
식사와 술을 함께 했다. 술은 체질이 아니라 입술만 축이는 정도다.
축제가 벌어질 때면 늘 풍물놀이가 뒤따랐고, 상쇠의 역할은 일정 부분 내가 하기도 했다.
물론 다른 동료들도 쇠를 배워 쳐보지만 선배의 품평은 다섯 글자였다.
"가락이 달라."
나중에야 알았다. 귀가 트이니 가락이 다르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가락이 달랐다.
나는 오늘 오랜만에 장구를 쳐봤다.
알츠하이머인 나를 위해 아내가 사준 것이다.
오래전 장구를 칠 때는 부드러운 봄바람처럼 흘러나오던 가락이
오늘 장구를 앞에 두고 있자니 몸이 굳어지고 손가락마저 풀리지
않는다. 쳐보는 내가 고개를 젓는다.
'이 가락이 아닌데...'
옛날 가락 '안'나오네...
소리 명창 있고, 귀 명창 있듯이 오랜 세월을 소환해 본다.
가락 듣는 귀는 살아있는데, 장구 소리는 딴판이다.
옛날과 전혀 다르다. 마치 굳은 손으로 치는 울림 같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다.
길을 텄으니 길이 날 것이다.
몸은 기억해 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