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하게 잘랐다
이발소도 아니다.
미용실도 아니다.
집이다.
그것도 작은 방 쪽이다.
옆에서 아내가 눈을 크게 뜨며 날 쳐다본다.
손가락으로 오라는 듯 까딱거린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작은 방 쪽으로 간다.
손에 가위가 들려있다.
내 머리카락이 길었는지 깎을 생각인 것 같다.
네모난 딱딱한 쿠션에 앉아 머리를 들이민다.
머리카락이 잘리는 소리, 그리고 그 머리카락이
등 쪽 목을 타고 미끄러지며 내려간다.
'머리카락을 잘 자르고 있을까?' 하는 생각보다
시원한 기분이 먼저 다가온다. 오랜만에 자른다.
언제 머리를 잘랐지? 기억이 가물거린다.
그것도 작은 방 쪽에서 앉아있고 아내가 깎아주는.
목덜미를 타고 머리카락들이 미끄럼을 타며
우수수 기분 좋은 느낌으로 시원하게 떨어진다.
손가락빗으로 머리를 쓸어내리며 잔머리카락을
말끔히 정리한다.
머리를 감고, 닦고, 말리고, 다시 뒷정리를 한다.
끝났다. 기분이 좋다. 머리가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새로 태어난 기분이랄까?
머리가 길어지면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처럼
일도 잘 되어가지 않으면 중간중간 잘라내고 싶다.
오래된 일, 잘 되지 않는 일에 너무 마음 쓰지 말자.
오늘 하루도 많은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한꺼번에 할 수 없는 것들 하나씩 들여다본다.
마음을 한 타래 한 타래 풀어가듯 정리해 본다.
옆의 긴 쿠션 의자가 침대처럼 눕혀져 있는데,
텅 비어있는데도 아내의 마음이, 머리를 자르는
손길처럼 따뜻함으로 남아있다.